REC5.0 종료 초읽기... 방향 잃은 ESS 산업 운명은?
  • 정형우 기자
  • 승인 2020.05.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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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친 정부의 조사 발표에도 나아지지 않는 ESS 산업의 현주소 파악

[인더스트리뉴스 정형우 기자] ESS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주요 솔루션이자, 국내 태양광 계통 한계를 넘어설 수단으로 주목 받았다. 아울러 REC 가중치 및 요금제 등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17년부터 급격히 확대돼 2018년 기준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약 3.6GWh로 세계시장의 약 1/3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국내 태양광 시장 활성화에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ESS 산업이 도리어 화재 이슈로 태양광 시장 전체를 굳게 만들었다. 정부는 조사위를 꾸려 오랜 시간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대응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우선, 신규 설비 중 일반인이 출입 가능한 건물 내 설치되는 ‘옥내 ESS 설비’의 충전율은 80%로, 일반인이 출입하지 않는 별도 전용건물 내 설치되는 ‘옥외 ESS 설비’의 충전율은 90%로 제한하기로 했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충전율 제한 조치는 ESS 설비 ‘사용전검사기준’에 반영해 시행하고, 제한조치 시행 1년 후 충전율 운영범위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기존 ESS 설비에 대해서는 신규 설비와 동일한 충전율로 하향토록 권고했으며, 재생에너지 연계용 ESS 운영기준 및 특례요금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충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업계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함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피크저감용 설비는 충전율 하향 권고를 이행하는 경우 전기요금 할인이 적용되도록 하는 등 한전 할인특례 개선방안을 검토 및 재생에너지 연계용 설비에 대해서도 REC 발급기준을 개정해 ESS 운영방식을 개선하고 충전율 하향권고를 이행토록 유도하고 있다.

더불어 2019년 6월 ‘ESS 안전관리 강화대책’ 이후 설치되는 ESS에 대해서는 운영 데이터 별도 보관조치를 의무화(전기설비기술기준 개정) 한 바 있다. 그 이전에 설치된 ESS 설비에 대해서도 이번 조사단의 평가에 따라 운영 데이터 별도 보관(블랙박스 설치)을 권고하도록 했다.

정부가 발표한 ‘ESS 추가 안전대책’ 내용 [자료=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 주요 제조사들의 안전성 대책

2019년 6월, 2020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산업부에서 내놓은 ESS 화재 대응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정부는 배터리가 발화원인이라 발표했지만 주요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와 LG화학은 저마다의 근거를 제시하며 정부 발표를 부정했다. 아울러 제조사들은 배터리 자체 발화가 아닌, 다른 발화원인으로 배터리에 불이 붙었을 경우 확산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적용키로 하고 사업주들의 불안감 해소, 신뢰도 회복과 더불어 안전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선 삼성SDI는 지난 2월 자사 배터리에 적용된 안전성 대책들이 작동하는 방식 시연을 통해 강제 발화 상황에서도 배터리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삼성SDI가 발표한 2차 안전 조치인 ‘특수 소화 시스템’ 시연이 핵심이었는데 셀과 셀 사이에 열 확산 차단재가 장착되며, 모듈 뚜껑에 첨단 소화 약품이 덧대지는 구성이다.

마이카(Mica)를 포함한 복합 소재로 만들어지는 열 확산 차단재가 셀과 비슷한 크기로 셀 사이사이 장착돼 셀 간 열 확산을 막아준다. 더불어 모듈 뚜껑 후면에 주황색 판이 붙는데 이 안에 첨단 소화 약품이 담긴 캡슐이 도포되고 특정 온도가 되면 캡슐이 터져 약품과 불이 만나 소화된다.

삼성SDI는 시연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특수 소화 시스템이 탑재된 모듈은 발화된 셀만 온도가 상승하다 소화됐지만 탑재되지 않은 모듈은 발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발화된 셀 주변 온도는 금세 300℃ 이상 상승했다.

삼성SDI의 중대형 시스템 개발 팀장인 허은기 전무(오른쪽)가 ESS용 특수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모듈케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삼성SDI]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의 특수 소화 시스템은 실효성이 있다”며, “정부 대처가 늦긴 했지만 ESS의 핵심인 배터리 제조사에서 납득할 만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LG화학 역시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한 특수 소화시스템을 국내 400여곳의 LG화학 배터리가 사용된 ESS 사이트 및 2020년부터 신규로 설치되는 국내 모든 사이트에 대해 필수적으로 적용한다.

LG화학이 자체 개발한 소화시스템은 ESS 시스템 내 배터리 랙 상단에 설치된 연기 감지기를 통해 화재가 감지되면 해당 배터리 모듈에 직접 물을 주입해 진압하는 주수방식이다.

LG화학의 주수 소화시스템은 화재발생 초기 단계에 해당 배터리 셀이 위치한 모듈에 물을 직접 주수해 문제가 발생한 배터리 셀의 온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주변에 위치한 배터리 셀로 전달되는 열에너지를 낮추는 ‘냉각 방식’을 통해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다.

LG화학 측은 글로벌 품질인증 및 위험관리 회사인 DNV-GL과 미국의 화재예방협회인 NFPA에서 발표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물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주수방식의 실효성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삼성SDI의 특수 소화 시스템과 더불어 LG화학의 주수 소화시스템 모두 글로벌 안전인증회사인 UL의 강화된 테스트 기준(UL9540A)을 만족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배터리가 화재원인이라는 오명을 벗고 ESS 산업을 다시 한 번 견인할 것인지에 대한 업계의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LG화학이 자체 개발한 소화시스템은 ESS 시스템 내 배터리 랙 상단에 설치된 연기 감지기를 통해 화재가 감지되면 해당 배터리 모듈에 직접 물을 주입해 진압하는 주수방식이다. [사진=LG화학]

ESS, 업계의 목소리를 듣다

정부와 배터리 제조기업의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ESS 업계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2019년은 약 3개월 정도밖에 사업 기간이 없었고 2020년 역시 예고된 REC 하락으로 인해 시장이 위축됐다. 누구보다 현 시국의 채찍을 세게 맞고 있는 ESS 공급기업 관계자들은 ESS 산업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을 생각 중이다.

ESS 산업이 내리막으로 들어선 가장 큰 이유인 화재의 경우 대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책이 제시됐다는 의견을 보였다.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건 바로 REC 가격과 REC 가중치였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9년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량은 2,802만4천 REC였으며, 실제 발급량은 3,196만7천 REC에 이르렀다. 이미 실제 공급량이 수요량을 크게 넘어선 상황이며, 그 격차는 매년 더 커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REC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REC 거래가격은 5만원으로 지난해 1월 7만원과 비교해 2만원이나 떨어졌다. 관계자들이 더욱 문제 삼는 건 REC 가중치 하락이다. 태양광 발전소에 설치된 ESS로 생산한 전기에 대한 현재 REC 가중치는 5배인 5.0이지만 오는 6월 종료를 예고했으며, 7월부터는 REC4.0이 적용될 예정이다.

비에이에너지 강태영 대표는 “ESS 안전 문제로 인해 최근 약 1년 정도 ESS 설치 계획을 실행에 못 옮겼던 사업자들이 많은데 이들의 ESS 사업에 대한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 REC5.0 연장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REC 가격 상승 또는 원자재 가격 감소가 이뤄져야 손익 보장이 가능하지만 현재 소방 관련 조치 강화와 각종 안전조치 강화로 인해 오히려 원가가 상승하고 있다. 더욱이 대다수 RPS 사업자인 100kW급 사업자는 오히려 큰 용량에 비해 kW당 단가가 더 높은 상황이다.

비에스에너지 강대찬 대표는 이 문제의 해결 방법에 대해 “REC 지원 일정을 연장하거나 원자재 가격이 감소하지 않는 상황에서 ESS 시장의 활성화는 있을 수 없다”며, “정부차원 REC5.0 연장 또는 소규모 100kW급에 대한 한국형 FIT 확대와 같은 제도를 통해 ESS 시장의 재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맥스파워 배성용 대표는 “올해 말 일몰 예정인 피크저감용 ESS 할인제도를 비롯해 REC 가중치 하락, 옥외형 ESS의 SOC 90%로 하향 조정 등 ESS 시장에 극심한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다른 요소들도 있다”며, “정부의 1, 2차 안전강화 대책은 사실상 ESS 시장 부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배터리 제조사들이 화재 대응 및 소화 대책으로 진행하고 있는 방안들이 그나마 ESS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된다”고 덧붙였다.

“급격한 시장 변화는 시장의 혼란과 혼탁을 야기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변화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에타솔라 최병운 이사는 “이를 위해 REC 등락폭에 대해 일정기간 제한을 두는 등 양방향의 완충재 역할이 필요하고 중기적인 정책으로 특정한 자격을 지닌 기업에 한해 ESS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자격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벽산파워 박현기 상무는 “ESS가 지속적으로 보급되고 전력 계통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피크컷 및 PV ESS 인센티브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한 걸로 보여진다”며, “선진국처럼 전력시장 수급상황에 따른 지령을 잘 준수해 계통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가치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로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하나의 ESS가 Peak Cut 및 FR 등의 시장보조서비스를 같이 운영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 6월 이승우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은 김정훈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장, 최윤석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와 함께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가 실시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원인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ESS 산업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전반이 정부 정책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선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국내보다 사정이 나은 해외 사례를 들어보면 국내 정책에 아쉬운 부분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지금처럼 산업이 침체돼 있는 경우, 몇 가지 정책 또는 환경 개선을 통해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에스피엠 이명숙 이사는 “해외 사례를 보면, 유럽의 제도적 지원과 미국의 ESS 투자세액 30% 공제의 ESS 보조금(ITC)이 입법 통과 등 확실한 제도적 발판이 마련되는 가운데 미국이 세계최대 ESS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해외의 사례를 근거로 국내시장 경쟁력이 곧 국제 경쟁력이라는 전제 하에 국내시장 확대 및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한 발 빠른 정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에타솔라 최병운 이사는 국내 ESS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연계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았다. 그는 “정부의 주관부처는 시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관계부처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이는 시장의 혼란만을 야기할 뿐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단기적인 정부의 추진력과 중·장기적인 정부의 시장 논리에 의한 정책으로 재편되어야 함이 최대의 과제라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에스제이 강봉종 대표는 “해외 사례처럼 PV가 100MW라면 ESS 20MW를 연계하는 등의 정책 개발을 통해 야간발전으로 인한 심야전기 부족현상도 해결하고 ESS 생태계를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REC도 마찬가지다. 현재 PV 가중치와 ESS가 별도로 돼 있는데 둘을 연계했을 때 5.0 또는 그 이상을 준다면 고객 수익도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OCI파워 최인선 연구소장은 “해외의 경우는 다양한 전력요금체계를 활용한 멀티-펑션(Multi-function) ESS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단순 태양광연계, 수요절감용이 아닌 여러 가지 기능이 복합적으로 적용돼 전력시스템의 애로점을 개선하면서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도모하는 것이 중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ESS가 전력거래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개선과 다양한 ESS 기능이 전력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적 개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인증에 대한 내용도 언급됐다. 배터리는 기본 모델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조금만 사양이 수정돼도, 새롭게 시험과 인증을 취득하게 돼있다. 인셀 이재경 부사장은 배터리 시험 및 인증 비용의 불합리함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라진 사양에 따른 재시험 및 인증 취득은 당연하나, 문제는 비용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고 시험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제인증(IEC62619)을 취득해 국내인증(KC IEC62619)으로 시험도 진행하지 않고 서류 전환만 진행하는데도 신규 취득 비용을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는 이 부사장은 “이러한 인증 비용은 ESS 시장의 축소와 매출 감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부담되며 ESS 발전에도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으므로, 정부 및 관련 기관에서는 인증 취득 관련 규정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현 정책 유지에 대한 대응도 필요해

종합하자면 업계에서는 ESS 화재사고에 대한 조사단의 원인결과 발표와 더불어 6월까지 적용되는 ESS REC 가중치 5.0의 복합적 영향으로 올해 ESS 시장이 큰 성장을 이뤄갈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그러나 늦어지는 화재 대응 정부 가이드, REC 가격 폭락, 배터리 수급 불안정, 금융 투자 부재 등이 ESS 시장을 얼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는 시장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업계 현역들의 정책 제언대로 변해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특히 가까운 미래에 있을 REC4.0에 대해선 미리 대응책을 세워놔야 할 것이다. 정부보조금 성격을 띠고 있는 REC는 결국은 계속 하락세를 보일 것이며, 가중치 역시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해 시장 논리에 의한 수익구조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시공사들은 이러한 변화요인을 잘 파악하고, 투자자들에게 좀 더 정확한 투자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를 분석하고 제공하여 고객과의 신뢰도를 형성한다면 침체된 ESS 산업 전반에 돌파구가 마련될 지도 모른다.

정부는 사업할 기업이 없어지면 의도한 시장 환경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합리적인 정책 개선 및 기업 참여를 통해 ESS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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