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 비추는 ESS, 분산에너지 활성화로 재비상 기틀 다진다
  • 정한교 기자
  • 승인 2021.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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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G, 소규모 그리드 등 ESS 적용분야 확대 전망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는 신재생에너지원이 점차 비중을 넓혀감에 따라 기존 발전원보다 출력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할 수단으로 중요성이 부각돼왔다.

이에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과 함께 성장이 예상되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REC 가중치, 전기요금 특례 등 국내 ESS 시장 확산을 지원할 각종 정책을 진행해왔다.

극심한 침체기에 빠진 국내 ESS 시장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업계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국내 ESS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utoimage]

이를 통해 국내 ESS 시장은 2017년부터 급격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8년 국내에 설치된 ESS 신규용량은 5.6GWh로, 글로벌 신규용량인 11.6GWh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였다.

장밋빛 전망만이 만연하던 국내 ESS 산업이지만, 2021년의 국내 ESS 산업은 방향을 잃은 채 출구 없는 암흑 속을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제출한 ‘연도별 ESS 보급 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973곳에서 2019년 476곳, 2020년 7월말 기준 405곳으로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는 이미 진행 중이던 신규 사업물량이 있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다. 수주 실적이 전무한 상황이다.

침체기 넘어 존폐위기까지 번진 국내 ESS 위기론

국내 ESS 시장을 표류하게 만든 원인은 ‘화재’였다. 무서운 속도로 보급되던 ESS는 본격적인 확산에 돌입했던 2017년부터 화재가 발생하며 불안감을 가중시키더니 2018년과 2019에는 빈번한 화재로 매섭던 기세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성장세만 멈춘 것이 아닌, 산업 자체의 시계를 완전히 멈춰버린 것이다.

몇 년간 이어진 화재에 정부는 원인파악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ESS 안전강화 대책 발표 이후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 대책으로도 ESS 화재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지 검증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ESS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ESS 확산을 위해 과도한 지원을 한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단순 확산에만 집중하다보니 꼭 필요했던 재생에너지 연계형 ESS에서 그 용도와 본질과는 동떨어진 태양광 단순 부하이동용으로 ESS가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ESS는 매우 민감한 산업”이라며, “ESS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우후죽순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단순 부하이동용으로 쉽게 ESS를 납품하다보니 품질 문제가 발생했고, 30여건의 화재 발생이라는 전세계 유례없는 오명을 안게 됐다”고 덧붙였다.

ESS 화재의 원인을 ‘과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확산을 위한 무리한 대책 추진이 오히려 작금의 사태를 불러왔고, 산업을 존폐위기로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단순히 배터리 하나로 구성된 제품이 아닌 ESS의 화재사고 원인은 복합적이다. 설비간 프로토콜이 안 맞아서, 온·습도 관리가 부족해서, 운영 중 부주의로 인한 인사사고 등 원인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물론 배터리로 인한 화재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화재 원인을 한 가지로 명확히 하고자 했던 이유는 워낙 많은 기업들이 하나의 ESS 프로젝트에 관여됐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기업들이 연관되다보니 정부 조사단 역시 기업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자 숨기기에 급급했다. 결국 명쾌한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시간만 흘렀고, 산업 전반에 ESS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자리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보상 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업계의 혼란만 부축인 꼴이다.

이에 대해 ESS 제조기업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기업, ESS 시공기업 등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발생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갔어야 하는데, 서로 눈치만 보며 책임을 피하기에만 급급해하다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화재사고 이후 업계는 다양한 화재 대응 솔루션을 선보이며, 화재에 대한 부정적 인식 걷어내기에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온도 상승시 소화약품 도포, 배터리 이상감지 소프트웨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본질에서 벗어난 대응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둘러서 마련한 안전조치 이행안들은 대부분 예방보다는 화재 발생 이후의 후행적 조치들로 점철됐고, 문제의 본질인 운영방법론은 외면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의 화재방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알람을 사용자에게 미연에 알려줄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하다”며, “지금도 물론 유사한 솔루션이 나오고 있지만, 더욱 개선돼야한다”고 조언했다.

연이은 화재사고 이후 국내 ESS기업들은 다양한 안전관리 솔루션으로 ESS의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사진=utoimage]

불난 집에 부채질, REC 가중치 종료

이처럼 위기를 맞은 국내 ESS 산업에 REC 가중치 하락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전기요금 할인특례도 소멸됐다. 그야말로 ESS 사업을 진행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ESS에는 기존의 REC 가중치 5.0이 축소되며, REC 4.0이 적용됐다. 이마저도 올해부터는 ‘0’이었다. 여기에 지난 7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올해 말 기본요금 특례할인과 REC가중치 우대가 만료될 예정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과 가동률 저하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온 기업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업계에서는 그나마 남아있던 기업들도 사업을 철수하고, 노선 변경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ESS 제조기업 관계자는 “신규 사업이 거의 없다보니 전기공사 등으로 사업방향을 바꾼 ESS 기업들이 많다”며, “화재로 위기를 맞은 ESS 산업이 REC 가중치 종료로 사업을 진행해야하는 이유가 없어지면서 더욱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산에 있어 ESS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여기에 희망을 품고 ESS 사업만을 진행하던 중소규모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이 국내 ESS 산업의 부활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호소한다. 본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들 역시 REC 부활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업의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제도적 지원과 안전성 강화 대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REC 부여가 오히려 국내 ESS 시장 활성화에 독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REC 가중치를 받기 위한 ESS 설치가 자행됐다는 지적이다. REC 지원방식이 kWh당 인센티브로 지급하다보니 무리하게 충·방전을 진행했고,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ESS 시장은 너무 REC에 집중하고 있는데, 해외의 경우 ESS와 REC를 연결하지는 않는다”며, “피크저감용처럼 기본요금을 줄여 요금 차별을 주거나 지원제나 페널티를 더 세분화하는 등 무조건적인 REC 부여가 아닌 지원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전략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분산에너지 활성화 전략의 V2G 활용 예시. 산업부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계통과 연계해 충·방전할 수 있도록 활용, 전기차가 이동하는 발전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분산에너지 활성화, 침몰하는 ESS의 선장 될까?

점차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 인해 재생에너지 확산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 또한, 이러한 재생에너지 확산에서 ESS는 꼭 필요한 존재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19년 13억 달러(약 1조5,400억원)에서 2030년 243억 달러(약 28조7,900억원)로 연평균 30.3% 성장이 전망된다. 전세계적인 재생에너지 확산 아래 ESS도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릴 것이란 예상이다.

결국 국내도 재생에너지 확산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ESS 시장을 다시 회생시켜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도 이러한 ESS 회생의 일환이다. 재생에너지가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로는 한계에 부딪힌 정부는 대규모 전력 수요의 지역 분산 유도, 지역단위 마이크로그리드 기반 구축 등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분산화를 추진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에서 언급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통합관제 시스템 기반 구축, 공공 주도 ESS 구축, 열/수소/전기차 등의 에너지 변환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분산에너지가 많이 설치됨에 따라 계통안정화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ESS의 필요성도 증대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에 업계 역시 긍정적인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국내 ESS 산업에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며, “산업부는 변동성 대응과 재생에너지 수용 ESS사업에 내년부터 1.7GWh 규모, 1조원이 넘는 공공ESS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의 기대가 아주 크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V2G와 같은 곳에 ESS가 활용되고, 마이크로그리드 기반의 소규모 그리드에 대한 전략이 포함됨에 따라 ESS의 새로운 적용분야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와 같은 ESS의 필요성 증대 및 활용분야 증가로 ESS 산업이 다시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국내 ESS 시장은 V2G, 마이크로그리드 등 적용분야가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ESS 사고방식이 아닌,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utoimage]

ESS 표준 정립할 컨트롤타워 필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화재사고로 침체된 국내 ESS 시장의 한줄기 서광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기존의 ESS 시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업계 역시 이를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ESS 산업은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정작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라며, “EPC업계에서는 몸에 배어버린 후행적 안전조치들로 인해 오히려 글로벌 시장 입찰에서도 고가를 차지하며 필패하고 있고, 배터리 제조사들은 언제든 중국 제조사에게 시장 패권을 넘겨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배터리만 수출하면 된다는 사고와 낙수효과 정책에서 벗어나 숙련된 EPC와 서비스를 동반 공급해야 부가가치를 올리며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SS 업계는 오래 전부터 ‘ESS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동안 ESS와 관련된 재생에너지, 전력수급, 안전대책, 보급정책, 부품소재, 표준 및 인증, 소방 등 유관부서가 전문화돼 왔으나 이를 통합해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부족했다. 기준이 없다보니 수많은 ESS 프로젝트가 제각각 건설됐고,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관부서가 없으니 화재 발생 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바빴다”며, “ESS 시장의 침체는 리더십과 주관부서 부재의 문재다. 컨트롤타워를 통해 ESS기반 수요관리나 밸런싱에 대한 종합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용 분야가 확대되는 ESS 시장변화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기존의 ESS 시장이 크게 태양광, 풍력 연계용에 그쳤다면, 앞으로의 ESS 시장은 전기차충전소용 ESS, 마이크로그리드용 ESS 등 적용 범위가 상당히 넓어질 전망이다. 이에 발맞춘 정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태양광 연계 ESS뿐만 아니라 다양한 ESS가 시장에 출시되고 있지만, 기존 ESS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며, “단기적인 확산 목표가 아닌 지속성 있는 ESS사업이 계획돼야 한다. ESS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REC 가중치 정책과 같은 비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전력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것을 정책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ESS 산업에 서광을 비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연내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다. 정부 역시 이에 발맞춰 관련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SS 업계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의 통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2022년 국내 ESS 시장이 다시 생기를 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발전제약부터 증가하는 분산자원으로부터 계통의 안정성과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또 탄소국경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ESS는 더없이 필요해지는 자원”이라며, “이러한 자원의 경쟁력을 해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제조기반의 일차원적인 정책보다는 버릴 것은 버리고, 참신한 응용기술과 서비스 제공에 역량을 기울일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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