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한국의 RE100 포비아… 유일한 해법은 ‘재생에너지 확산’
  • 정한교 기자
  • 승인 2024.10.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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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RE100 압박에 패닉 빠진 국내 기업들…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이제는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역대급 폭염, 역대급 장마, 역대급 한파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기상이변이 해를 거르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이 RE100 기업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면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gettyimage]

점차 빨라지는 기후위기 시계에 발맞춰 이를 늦추기 위한 노력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이러한 노력 중 하나이자, 가장 거대한 움직임이다.

RE100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 부문을 대상으로,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2050년까지 전량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구매하거나 자가생산으로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사명 아래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2024년 8월 기준 433개 글로벌 기업이 RE100에 가입했다. 이중 국내 기업은 36개에 달한다.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기업은 △전세계 또는 국내에서 인정받고 신뢰받는 브랜드 △주요 다국적기업(포춘 선정 1,000대 기업 또는 동급) △0.1TWh를 초과하는 전력 사용량 △RE100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전 세계 또는 국내에서 확실한 영향력을 갖는 기타 특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참여 기준을 충족한 기업이 RE100 참여를 선언하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원으로부터 조달하고, 100% 달성을 위한 일정과 명확한 전략 수립하며 이니셔티브 가입 후 12개월 내 100% 재생에너지 달성을 위한 명확한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임박한 기후 무역장벽에도 여전히 미미한 재생에너지발전 비중

빨라지는 기후위기 시계에 대응하기 위해 RE100에 참여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 내 협력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기업의 수출경쟁력과 직결되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RE100뿐만 아니라 당장 내후년부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미국은 내년부터 탄소국경세(CCA)를 시행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가 지난 8월 28일 발간한 ‘CBAM 도입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 EU 철강 수출량(335만t) 기준 국내 기업들의 CBAM 인증서 부담액이 10년간 누적 3조원을 넘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무역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자칫 국가 경제가 휘청일 정도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러한 위기론이 대두되는 이유는 국내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으로 기업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임박한 기후 무역장벽에 국내 기업들의 RE100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지만, 장벽을 넘을 물량이 없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은 2023년 기준 9% 수준에 그쳤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전세계 평균 30.25%, OECD 평균 33.49%, 심지어 아시아 평균인 26.73%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도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이 27.4%에 달한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RE100 대응은 역행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기후악당(Climate Villain)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업계는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한정적인데 반해, 향후 재생에너지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REC 단가가 더욱 상승할 수도 있음을 우려했다.  

지속적인 수요 증가세에 REC 단가 ‘고공행진’ 우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수요공급의 법칙’, 자본주의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이론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RE100 이행에 애를 먹는 근본적 원인이 바로 ‘수요공급의 법칙’에 있다.

기업들이 RE100을 이행하는 수단에는 ‘녹색프리미엄’, ‘직접 PPA’, ‘제3자 PPA’, ‘REC 구매’, ‘자가발전’이 있다. 단순 경제성만 놓고 보면, ‘녹색프리미엄→REC 구매→직접 PPA→제3자 PPA→자가발전’ 순으로 투자비가 증가된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녹색프리미엄’의 경우, 기업이 기존에 내던 전기 요금에 녹색프리미엄 명목의 추가 요금을 내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기에 유럽 등 RE100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이 많다. 해당 지역에 수출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이행 수단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REC 구매와 PPA, 자가발전이다. 부지 확보가 필요하고,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자가발전’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은 REC 구매와 PPA를 검토한다. 그리고 이들이 호소하는 주요 애로사항은 부족한 재생에너지 공급량과 비싼 REC 단가이다.

재생에너지 업계는 REC 단가가 값비싼 이유를 부족한 재생에너지에서 찾는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자연스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RE100 압박이 거세질수록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REC 단가의 상승을 예고한다.

흔한 주식용어 중 하나인 ‘지금이 고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점이었다’는 상황이 높은 확률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가격이 오르면 재생에너지를 외면하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고, 이는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 경쟁력 약화를 의미한다. 결국, 현재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은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이다.

‘이격거리 규제’는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gettyimage] 

‘이격거리 규제’, ‘온사이트 PPA’ 등 RE100에 걸맞는 제도 개선 필요

부족한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는 ‘이격거리 규제’ 해소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전체 228개 기초지자체 중 129개 지자체가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두고 있다.

객관적 근거 없이 설정되다 보니 지자체별로 규제 기준도 다르고,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주민참여형 사업 등 이격거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준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업계는 이격거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상위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역특성과 주민 수용성에 기반한 상위법 개정이 우선돼야 일관성 있는 규제 완화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니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환경문제 같은 부정적 이슈가 ‘주민수용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지자체의 인허가 문제를 유발한다.

또 다른 과제는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이다. 일례로 현재 온사이트 PPA(on-site PPA, 비계통연계 직접전력거래)는 1MW 초과용량을 소유한 발전사업자에 한해 계약이 가능하다.

산업단지에 분포한 대부분의 태양광발전소가 1MW 규모 이하인 국내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기준이다. 업계는 직접 PPA 제도 참여 확대를 위해 300kW 규모 이상으로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무역협회가 2022년 이후 1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보유한 기업 6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46개 기업이 재생에너지가 저렴한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RE100이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를 구할 수 없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2022년에 발간된 ‘RE100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조달 장벽 1위 국가’이다. 시급한 전력시장과 전력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송전선로 부족을 이유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 지역은 출력을 제한당했고, 직접 PPA 등 RE100 이행을 위해 필요한 시장은 과도한 규제와 간섭으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업계는 더 이상 늦기 전에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진우삼 상임이사는 “RE100 가입 후 이행 로드맵 수립, 매년 이행보고를 통해 RE100 이행 과정을 투명하게 검증받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재생에너지 조달 불안은 기후리스크와 연결된다”며, “재생에너지 조달 걱정 없이 기업 활동에 전념하도록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고 거래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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