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항만 생태계 살려야… 속절없이 외산에 안방 내줄 수도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1.01.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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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업체 인식 제고 시급

[인더스트리뉴스 최정훈 기자] 우리나라의 스마트항만(Smart Port) 정책이 야심차게 표명됐지만 업계의 저조한 관심과 취약한 연관산업 기반으로 앞으로 개발 호재가 외산업체에 갈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적인 컨테이너 항만은 안벽·야드 크레인 등 설비·장비 운행, 트럭 운송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 감독, 검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컨테이너를 확인·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업계의 저조한 관심과 취약한 연관산업 기반으로 앞으로 스마트항만 개발 호재가 외산업체에 갈 공산이 큰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부산항만공사]
우리나라는 업계의 저조한 관심과 취약한 연관산업 기반으로 앞으로 스마트항만 개발 호재가 외산업체에 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부산항만공사]

이러한 방식은 제각기 다른 주체들 간 정보공유 등의 협업이 쉽지 않으며, 잦은 대기 등 유휴시간이 생겨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정보 단절로 선적이 지연되거나 선박 및 트럭의 적재율도 낮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부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비효율로 수익률 하락 등 약 1조2,000억원 손실이 생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이 같은 재래식 방식으로는 앞으로 자연스럽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신흥국들도 대형선박 접안이 가능한 항만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면서 시장 경쟁은 계속해서 치열해진다. 특히, 최근 다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른 전자상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항만의 신속 정확한 처리 역량이 중요해진 가운데 생산성이 답보 상황이라면 점차 대형 얼라이언스(선사들의 동맹)들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다. 항만은 고정자산이므로 물량감소를 상쇄할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스마트항만’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모든 기계·제어 기능이 디지털화 돼 스마트 게이트, 선적계획, 차량운송, 해상운송 스케쥴링 등이 실시간으로 구현된다. 이에 충돌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공급사슬을 블록체인으로 무장하면 보안 신뢰성도 확보된다.

무엇보다도 하역설비, 부품교체, 유지보수, 설비확장 및 컨설팅 등 스마트항만 관련 시장이 열린다는 점에서 각국은 앞다퉈 기술 선점에 나서고 있다. 2019년 Statistics MRC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항만 시장은 2018년 1조8,300억원에서 23%(CAGR)로 증가해 2027년 11조8,4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자동화컨테이너터미널 시장도 2016년 2조6,000억원(20억4,000만 달러)에서 올해 6조8,000억원(62억2,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부산항은 세계 7위 경쟁력을 갖춘 항만이다. [사진=부산항만공사]
부산항은 세계 7위 경쟁력을 갖춘 항만이나 스마트항만 기술 경쟁력은 미약한 상황이다. [사진=부산항만공사]

선도국에서는 스마트항만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네델란드, 독일, 호주, 일본 등은 부분 자동화 단계를 넘어 완전 자동화 문턱까지 왔다. 미국 LBCT(Long beach Container Terminal)은 8년의간 채비를 갖추고 이후 시뮬레이션과 애플리케이션들을 포함해 6개월 간 테스트를 거쳐 자동화를 실현했다. 미국 LA/LB항은 이미 완전자동화가 구축돼 AI 기반 사전예측으로 멈춤없는 공급사슬 대응체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150여 개의 무역 항만을 보유한 중국도 지난 2017년 5월 아시아 최초로 중국 칭다오항의 QQCTN(Qingdao Qianwan Container Terminal) 항만에 완전 무인자동화터미널 운영을 시작했다. 안벽크레인, 야드크레인, 자동이송차량(AGV, Automated Guided Vehicle) 등 사람의 개입없이 작동된다.

토종 연관업체들 미비한 수혜 우려 

우리나라 대표 무역항인 부산항은 현재 원격 자동야드크레인(ATC, Automated-TC)를 운영하는 조종실을 둔 반자동화(Semi Automated) 단계이다. 일거에 완전 자동화가 아닌 항만작업자를 순차적으로 축소하며 자동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지표들은 여유부릴 때가 아니라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최고 항만 기술을 4세대로 볼 때 부산항은 2.5세대 수준으로 평가됐다. 최고 기술국 EU와 비교해 4.1년의 기술격차를 보인다. 부산항이 글로벌 컨설팅 회사 Menon이 진행한 조사에서 수년간 세계 7위 경쟁력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위상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다.

주요국 스마트항만 기술력 지표 [자료=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산연구원]
주요국 스마트항만 기술력 지표 [자료=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산연구원]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기존 재래식 또는 반자동화 컨테이너 항만의 하역장비·설비에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가미하는 식으로 고도·첨단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색채를 입힐 바탕인 관련 연관산업도 부실한 상태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연구위원은 “스마트항만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에 비해 현장은 여전히 준비가 안 됐다. 단순히 기계를 놓는다고 자동화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기계마저도 국산을 찾기 힘들다“며, “이대로 스마트항만을 추진하게 되면 외산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항만크레인 시장 70%를 장악한 중국의 ZPMC 같은 업체들이 들어와 맹위를 떨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내다봤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스마트 항만하역장비 국산화에 따라 생산유발 6,417억원, 부가가치 2,110억원, 고용 창출 2,386명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한진중공업 등 토종 업체들이 항만장비제작 노하우가 있으며, 무인장비자동 제어분야는 서호전기가 세계 2위 입지를 구축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터미널운영시스템 시장은 토탈소프트뱅크, 싸이버로지텍이 상위권에서 명성을 쌓고 있지만 대부분 관련 업체들의 경쟁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부산, 창원 등 약 3,659개 항만연관사업이 소재하고 있지만 대부분 영세하고 혁신 기술이 전무하다. 

특히, 스마트항만은 야드 내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율주행트럭 AGV 기술이 관건인데 갈 길이 멀다. 유럽의 경우 90년대 후반 기술개발에 나서 지금은 부두 바닥에 수만 개의 트렌스폰더(Transponder)와 통신하며 이동하는 AGV를 개발해 글로벌 표준으로 정립했다.

부산항은 그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유럽보다 최근에 시공된 항만 지반이 뻘이거나 바다로 확장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트렌스폰더를 견고하게 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통상적인 자율주행차량과 같이 라이다(레이저를 이용한 레이다)를 통한 신호에 따라 운행되는 방식에 천착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런 기술적 비즈니스가 생겨나지 못했다.

부산항 원격조종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부산항 원격조종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더욱이 연관업체들도 스마트항만에 시큰둥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변곡점을 마련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부산연구원이 최근 지역 항만 관련 전문가(50명)와 연관 업체(74곳)를 대상으로 ‘스마트항만’의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전문가는 48%가 스마트 항만에 대해 알고 있으나, 업체의 경우에는 불과 5.4%만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에 응답한 74개 기존 항만 연관산업은 대부분 중소일반기업(98.7%)으로 평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0.8%에 불과했다. 연구인력도 4.9%에 그쳤다. 중소규모의 업체들이 기술개발에 수천만원 투자하기도 버거운 실정인데 첨단IT 산업과 접목된 스마트항만 시장은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스마트항만 산업 생태계를 관장하는 전문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내 부서, 물류업체 산하 연구소, 민간연구소 등에서 국지적으로 기술개발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개괄하면 우리 실정을 감안해 기존 항만 연관산업의 디지털전환 추진을 도모하고 스마트항만 틈새시장 진출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장하용 연구위원은 “고도화와 융합화를 동시 추진하는 부산형 스마트 항만 연관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며, “부산지역 항만 관련 전문가와 업체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항만 인식 제고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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