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외산 가리지 않는 변화무쌍한 정책에 모듈업계 ‘몸살’
  • 정한교 기자
  • 승인 2022.03.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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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제도개선으로 위축된 산업계… “기업 현실 반영한 정책 지원” 요구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탄소인증제’가 국내 태양광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탄소·친환경 제품 확대와 국산 태양광 기업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된 제도지만, 현재는 명분도 실리도 잃은 채 산업을 표류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기업 현실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정책 추진에 국내외 태양광 모듈기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탄소인증제에 대해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산업이 지향해야하는 올바른 방향”이라는 취지에는 뜻을 같이 했지만,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는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에서 찾고 있다.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상향만을 쫓는 행보에 국내외 모듈 제조기업 모두가 시린 겨울을 나고 있다.

국산 태양광 모듈기업 관계자는 “탄소인증제의 시행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며, 매우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갑작스런 제도변경, 시장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 추진 등으로 인한 혼란이 오히려 산업을 축소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비단 탄소인증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추진 중인 다양한 제도들이 태양광발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정책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시행에 멍드는 태양광 모듈업계

지난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탄소인증제’는 탄소배출량이 적은 저탄소·친환경 제품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태양광 모듈 제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계량적으로 산정 및 검증해 등급을 부여한다.

프랑스에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탄소발자국(CFP)’과 비슷한 제도로, 국내에서는 시행 초기부터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다. 이미 국내에서 폴리실리콘, 잉곳·웨이퍼 등 원자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사업을 철수한 상황에서 원활한 제도 시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리고 2년여를 맞이해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국산 태양광 모듈기업 관계자는 “국산 모듈 제조기업 중 지난해 탄소인증 1등급 모듈을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국내 전체 수요의 20% 수준이었다”며, “저탄소·친환경 제품 확대라는 첫 번째 명분이 무색해진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자국기업 보호라는 명분이 힘을 얻는 것도 아니다. 모듈 제조기업들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이후, 적극적인 투자 아래 설비 규모를 증대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국내 태양광 밸류체인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밸류체인도 최근 태양광 모듈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기술변화의 주기도 빨라지고 있지만, 국내 밸류체인 설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국산 모듈 제조기업들은 최근의 트렌드에 발맞춰 적극적인 설비투자로 고출력, 고효율 모듈 출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이끌고 있는 중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국내 밸류체인 탓에 해외 수요처 확보로 시선을 돌렸다. 탄소인증 1등급 확보를 위해 일본, 대만 등에서 물량을 공급받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가뜩이나 힘에 부치는 국내 태양광 모듈 제조기업들을 더욱 옥죄는 소식도 전해졌다. 기존의 3등급으로 분류됐던 탄소인증 등급을 4등급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기존 탄소인증제도와 변경(안) 비교

탄소인증제 개편안에 따르면, 모듈 제조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 기준은 1등급 kW당 670kgCO2 이하, 2등급 670~730kgCO2, 3등급 730∼830kgCO2, 4등급은 kW당 830kgCO2 초과, 미검증 제품으로 구분된다.

1등급 기준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2등급을 세분화해 2, 3등급으로 구분했다. 기존보다 가산점도 더욱 상향시키며, 차등을 뒀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만 해도 2등급을 받았던 모듈들이 올해부터 3등급으로 기준이 변경될 수 있다. 문제는 이미 2등급으로 판매가 된 모델이다. 개편안에 따라 올해부터는 3등급으로 구분될 수 있다. 발전사업자, 기업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발전사업자들의 탄소인증 1등급에 대한 시장 수요는 높다. 지난달 본지가 진행한 ‘2022년 국내 태양광 모듈 시장조사’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형 FIT 참여시 초기 비용, 브랜드, 가점 등을 고려해 선호하는 태양광 모듈의 탄소인증 등급은?’이라는 질문에 52.8%가 1등급 모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개정안을 고려했을 때, 한국형 FIT 참여시 초기 비용, 브랜드, 가점 등을 고려해 선호하는 태양광 모듈의 탄소인증 등급은?’

이러한 시장상황을 보면, 최근의 언론 호도처럼 국내 태양광산업의 부진을 마냥 중국산 제품의 공세로 돌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단 하나의 중국기업도 아직 탄소인증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태양광 시장에 태양광 모듈을 공급 중인 중국기업 관계자는 “탄소인증 2등급 획득을 위한 환경적 기준과 구비서류 등 모든 자격요건을 갖춘 상황이지만, 명분 없는 인증 지연만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당한 경쟁을 통해 건강한 산업발전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산지 표기 논란 아닌, 산업 육성 위한 논의 필요

국내 태양광산업의 최근 부진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원부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 이슈에서 찾을 수 있다. 태양광설비에 대한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는 반면, 전세계적 코로나19 확산으로 물류, 제조 등에서 이상이 발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년 대비 지난해 태양광 원부자재 가격 상승률만 약 300% 이상이다. 물류비 상승 역시 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코로나 확산 등의 이유로 최근 전세계 물류비가 일제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국산 태양광 모듈기업 관계자는 “그동안은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도 모듈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며, “그랬던 기업들이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원가상승분을 반영해 모두 모듈 가격을 올렸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밸류체인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급뿐만 아니라 저탄소·친환경 제품 공급 확대, 국산 태양광산업 성장을 이끌 수 있다. 올해 초 본지와 만난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정우식 상근부회장은 태양광 밸류체인 구축뿐만 아니라 태양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국내 태양광 모듈 제조기업들은 이미 기술력과 제품 품질에서 글로벌 시장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주택 지붕에 설치된 한화큐셀 모듈 [사진=한화큐셀]

정우식 상근부회장은 “세계 태양광 시장 규모에 발맞춰 유수 국가들이 자국 태양광 기업 성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반면, 국내 태양광 기업에 대한 지원은 미비하다”며, “그동안 정부는 태양광 시장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적 지원을 이어왔고,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이제 국내 태양광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태양광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이 현실적 정책 반영, 기업 지원 등을 요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산업 고도화에 따른 기술발전이 있다. 웨이퍼 사이즈 변화 등 보통 3년 주기로 커다란 기술변화가 일어났던 태양광 모듈산업의 주기가 매우 빨라졌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M6 사이즈 모듈이 시장의 대세였지만, 현재는 M10 사이즈 모듈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불과 1년여만에 기업들은 신규 설비 투자를 진행해야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도, 설비투자까지 진행해야한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던 기업들이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해를 넘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안정세를 찾은 듯 보였던 원부자재 가격이 3월부터는 다시 상승 변동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해마다 시장을 혼란에 빠트렸던 정책 개정이 올해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발전사업자들은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는 대선으로 인한 정권변화의 가능성도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사업진행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모듈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태양광기업들의 공시를 살펴보면, 전부 적자”라며, “기업 현실을 반영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현 상황은 오히려 정책이 시장을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제는 무의미한 중국산 논쟁을 멈춰야 할 때다. 국내 태양광산업은 자칫 존폐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 자국 내 태양광 시장 및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단순히 당쟁싸움으로 위한 하나의 도구로 태양광발전이 이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범지구적 목표 아래, 친환경에너지가 국가의 경제를 이끌 수 있는 주요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전세계 태양광 시장 규모는 2025년부터 연 5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이 차세대 기술 선점을 위한 R&D 투자에 적극적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더 이상 정치적인 소모품이 아닌, 국가 경제를 이끌 주요산업으로써 태양광산업에 대한 미래를 논의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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