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향(向) HBM 납품' 마이크론의 호실적과 정반대 구도
엔비디아 등 기업, 삼성을 경쟁사로 인식해 고객사 확보 어려움 토로
[인더스트리뉴스 홍윤기 기자] 삼성전자가 3분기 스마트폰과 메모리 반도체 부진으로 예상치를 밑도는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최근 글로벌 3위 반도체 기업이자 ‘반도체 풍향계’로 통하는 미국 마이크론이 어닝서프라이즈를 거둔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3분기 실적 부진과 관련해 삼성전자가 풀어야할 난제로 지목돼온 ‘고객사 = 경쟁사’ 딜레마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AI용 반도체 업계의 큰손인 엔비디아가 삼성전자를 납품업체로 선뜻 지정하지 않는 이유도 결국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삼성전자가 협력사인 동시에 경쟁사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경우에도 삼성전자가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이유로 애플 등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를 경쟁사로 인식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8일 삼성전자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3분기 영업익 9조1000억원으로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거뒀다. 다만 3분기 매출은 79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영업익이 예상치를 밑돈데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DS부문)의 실적 저조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각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전망치를 지속적으로 하향조정해 왔다. 하반기 스마트폰·PC 탑재 범용 D램 시장이 불황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반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세계 3위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4분기(6∼8월) 매출 77억5000만달러를 기록해, 월스트리트 전망치 76억6000만달러를 상회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거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메모리 한파’ 우려가 불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이번 3분기 실적을 통해 삼성전자는 이미 메모리 한파를 겪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실적 향방은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납품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마이크론은 호실적에 더해 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용 칩 수요가 폭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으며 이미 올해와 내년 생산 예정 제품은 이미 '솔드아웃'(매진) 됐다고 부연했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와 함께 현재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납품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배경으로 양사가 잠재적 경쟁관계라는 점을 지목하기도 한다.
한 예로 경계현 전 DS부문장은 지난 3월 20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체 AI 가속기 칩인 '마하(Mach)-1'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 초 출시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하-1은 AI 추론에 필요한 가속기인데 기존 AI 가속기가 연산장치인 그래픽칩(GPU)과 메모리 사이 정보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병목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AI칩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에 사실상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문제는 DS부문이 한편으로는 엔비디아에 자사 HBM을 납품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중에 나온 발표였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모시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업체에 선전포고를 동시에 한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된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자랑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부문도 유사한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위탁생산)·메모리 생산까지 포괄하는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회사(IDM)다. 하지만 파운드리 1위 대만의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슈퍼을’ 입장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순수 사업 파트너'로 남는다는 뜻이다.
TSMC는 엔비디아, SK하이닉스와 HBM삼각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1990년대부터 TSMC와의 인연을 다지면서 양사간 친밀도는 업계에서도 유명할 정도다.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는 “1997년에는 엔비디아가 직원 100명 정도의 작은 회사라 위탁 생산이 어려웠다”며 “그런데도 (TSMC 창업자)모리스 창은 우리 기술을 설명할 기회를 줬고 여러 차례 회사로 찾아와 최적의 공정을 찾아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젠슨 황은 자신의 우상이 모리스 창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사업을 별도의 회사로 분사하는 것이 TSMC를 따라잡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분석이 나돌기도 했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사업부는 독립된 법인으로 분리하면 반도체 위탁생산에만 집중하는 TSMC와 같은 사업구조를 갖추게 돼 고객사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로이터 통신은 필리핀을 방문 중인 이 회장이 파운드리 분사 계획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으며 분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고 7일 보도했다. 이 회장이 파운드리 사업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