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강병인 초대전… ‘획의 변주, 해체로부터 문자 회화로 건너가는 첫걸음’
  • 한원석 기자
  • 승인 2025.04.02 1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17일까지 서울 남산 ‘N2 아트스페이스’서 개최… 참이슬·열라면 등 각종 제품 글씨 친숙
/사진=N2 아트스페이스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현대 한글서예를 통해 한글의 독특한 조형성과 예술성을 찾아 널리 전파해왔던 서예가 강병인이 ‘획의 변주, 해체로부터’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어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오는 3일부터 5월 17일까지 한달 보름간 서울 남산자락에 위치한 ‘N2 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강병인 작가는 영화 의형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대왕 세종, 미생 등의 글씨와 참이슬, 화요, 열라면 등 각종 제품의 글씨로 대중에게는 이름보다 글씨가 훨씬 낯익은 작가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붓을 잡은 강 작가는 중학교 시절 추사 김정희 선생을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아 ‘영묵(永墨)’이라는 호를 스스로 짓고, 형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정신을 앞에 두고 추사의 한자 서예를 한글로 취환하는 작업에 50여년간 몰두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안토니 타피에스, 자유와 생명력을 은유한 초현실주의 화가 미로, 문자 추상의 거장 이응노, ‘서예는 죽었다’라고 외친 전위예술가 이노우에 유이치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현대 한글서예를 통해 한글의 독특한 조형성과 예술성을 발굴하고 일반에 널리 알리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삼아 평생을 탐구하는 태도로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강병인글씨연구소

이번 전시는 소리를 하늘과 땅, 사람으로 나누고 합하는, 이른바 해체와 조합이라는 한글의 근원으로부터 획의 본질을 찾아 나선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획의 변주, 해체로부터’라는 전시 주제가 시사하듯 하늘과 땅, 사람으로 해체돼 독립적으로 서 있는 획들은 저마다 제 모습을 찾아 글자가 된다. 춤추고 노래하는 가운데, 해체는 자유임을 외치고 있다.

오래도록 묵혀 두었던 먹 속에 깊이 잠든 그의 생각을 붓으로 깨우는 두드림, 터짐이다. 이렇게 한지, 화선지에 침잠한 획들은 깊이를 잴 수 없는 심연의 세계를 이루며, 어둠과 밝음의 조화, 음양의 세계를 이룬다.

서예가 요구하는 서법, 일필휘지를 고집하면서도 어느새 획들은 문자회화로 건너간다. 강병인만의 시각언어, 새로운 회화 형식으로서의 문자변주를 노래한다.

이번 전시는 3가지 변주로 공간을 구성한다. ‘변주 1’에서 강병인 작가는 서예가 요구하는 일필휘지 속에 오래된 먹을 품은 획들은 농묵과 담묵으로 교차하며 저 스스로를 해체하고 시공간을 드러내고 있다.

붓을 떠난 획들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위 위에 어느새 꽃이 되고, 자유롭게 춤추며 산을 이루고 폭포가 되며,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흐른다. 자신의 이전 작업에서 다음으로 건너간 새로운 문자회화 형식이다.

한번 먹을 머금은 붓은 일필휘지로 나아가고, 획은 찰나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붓과 50년의 시간이 침잠해 있다. 삶의 근원을 질문하며, 삶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기운생동을 앞세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쓰고자’ 했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변주 2’에서는 하나하나 해체되었던 획들이 다시 모이고 글자로 승화돼 형상을 얻는다. 한자가 아닌 꽃, 봄, 춤, 웃, 꿈, 칼, 돌 등은 대상과 일대일로 대응하면서, 글씨로 쓰면 소리와 뜻이 들리고 보이는 표의성이 나타난다. 소리와 뜻, 꼴이 하나인 것이다.

오래된 먹이 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농담 그리고 담묵들의 글씨들은 인위가 개입되지 않고 무위, 즉 오직 자연스러움만이 획들 속에서 우리들에게 외친다.

‘변주 3’에서 작가는 글이 가진 뜻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한글이 가진 독특한 조형성을 극대화 해왔다.

봄, 꽃 춤. 솔 등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형상화한 글씨들은 장춘철 나전 장인의 손길로 다시금 변주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강병인의 대표적인 글씨 가운데 ‘열라면’의 ‘열’ 자를 나전으로 선보이는데 소비자가 일상에서 자주 보던 라면 포장지의 글씨가 어떤 미술작품으로 재탄생됐을 지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