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은 뒷짐 지고 구경만 할 것인가?
올 6월이면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보복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최근 EU 시장에서 이에 대한 찬반의 논란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에서 수입된 솔라 모듈은 해당 국가의 관세청에 등록해야 한다고 밝혔다. 빠르면 3월부터 몇몇 솔라 제조기업들이 등록절차를 밟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조치는 만약 EU가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반덤핑과 보조금 지급금지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소급해서 적용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반면 중국산 모듈의 반덤핑에 반대하는 유럽의 태양광 제품 유통기업들은 만약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60%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24만2,000개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따라서 올해는 최종 판결을 앞둔 유럽의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한 보복관세 적용 여부가 글로벌 태양광산업의 중요한 이슈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중국산 태양광 제품의 등록제 시행 대상 품목은 결정질 태양광 모듈과 태양전지, 웨이퍼 등으로 박막 태양광 모듈 제품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Solar World를 포함한 약 20여 개의 태양광 제조업체로 구성된 ProSun은 그동안 중국산 태양광 모듈과 부품에 대해 120%의 높은 덤핑률을 요구하고 나섰고, 또 반보조금 제소까지 EU 집행위원회에 공식 제출한 바가 있다. 따라서 그간 EU는 중국산 태양광 모듈이 생산비 이하로 EU에 수입되고 있다는 태양광 기업들의 주장에 따라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 오고 있었다. 이와 함께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12년 11월 중국 정부가 불공정하게 태양광 모듈 생산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반덤핑 제소를 신청한 ProSun측에서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환영을 표했지만, EU 대변인은 이번에 발표한 등록제는 반덤핑 사전 결정과는 무관한, 단지 행정적 절차라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등록제는 반덤핑 결정과 보조금 지원금지 결정이 내려지면 이것을 소급해서 적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6월까지 결정질 태양광 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지를 잠정적으로 결정하고, 올 연말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 만약, EU가 중국산에 대해 반덤핑, 반보조금 조치를 결정하게 되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보여, 한국 기업에게는 그 만큼 기회가 오지 않겠냐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반덤핑 관세부과에 찬성하는 측은 대부분 유럽 내 태양전지와 모듈 제조기업으로, 중국산 태양광 제품의 덤핑으로 유럽 내 태양광 제조기업체에서 수천개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하며, 중국 기업의 덤핑 판매를 방치할 경우,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산업을 독식하고 나아가서는 유럽 내 태양광 공급기업과 장비제조기업, 설치기업을 포함한 태양광산업에 대재앙이 불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EU의 반덤핑 최종 결정 날짜가 다가올수록 유럽 내 몇몇 유통업체나 프로젝트 개발업체들은 소급 관세 문제 때문에 유럽산 모듈을 구매하려는 수요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독일과 북유럽 또한 실제로 유럽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보다 먼저 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보복관세 부과를 결정한 미국의 경우, 지난 3월 20일로 보복관세 결정을 내린 지 만 1년이 됐다. 이미 미 상무부는 중국정부가 중국의 태양광 제조기업에게 불법 보조금을 지불했다고 판결했고, 중국의 태양광 업계가 미국 내 시장가격 이하로 제품을 공급하는 반덤핑으로 판매함으로써 공정거래를 위반했다고 발표했었다.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미국시장은 중국의 특정 태양광 모듈에 대해 24~36%의 2자릿수 관세를 부과해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보복관세 부과는 중국산 제품의 판매 가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됐고, 미국 내 소재한 태양광 기업의 부도와 정리해고의 원인이었던 중국산 저가 태양광 제품이 시장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자평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 기반한 태양광 모듈 유통업체들은 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재고를 지난해 말까지 거의 소진했고, 게다가 중국 기업 또한 EU의 조사로 인해 올해 1/4분기에는 선적량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중국산 모듈을 유럽에 화물로 선적할 경우, 1개월이 걸리므로 만약 EU 내에서 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등록제가 3월부터 시행된다면, 선적 중인 태양광 모듈은 등록제에 적용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 기반 수입업체들은 소급 관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한 주문량을 급격히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유럽 내 태양광 제조기업들에 따르면, 현재 유럽 내 중국산 모듈의 가격은 올해 구정 연휴 이전과 비교할 때 매우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이렇듯 태양광산업은 이제 해외 각국의 자국산업 보호와 무역보호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번 EU의 중국산 태양광 제품 등록제 발표를 보면서 국내 태양광 기업체의 대응에 대해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흔히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곧잘 인용하곤 한다. 이 말은 설령 ‘위기’라고 하더라도 사고를 전환하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태양광산업은 아직 국가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산업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월간 Solar Today를 발간하면서 만난 국내 태양광 제조기업들의 한결 같은 시각은 태양광 시장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보이면서도,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인 기업들은 극소수였다. 단지, 태양광 시장이 개선되기까지 관망하겠다는 소극적인 움직임만 보였을 뿐. ‘위기’를 ‘위기(?)’로만 받아들인 기업들이 대다수였다.
우리가 IMF를 조기에 탈출한 것도 전국민이 국가적 ‘위기’라는 말을 실감했고, 그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위기일수록 더욱 힘을 모으는 단단한 응집력이 발휘되곤 했었다. 국내 태양광 기업들도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기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