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행, 헌법재판관 2명만 '기습 임명'한 까닭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4.12.3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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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모두 임명 거부 또는 3명 모두 임명 사이에서 예상외 결정
용산 대통령실도 예상치 못한 최 대행 결정에 당혹감 내비쳐
향후 사법처리 등 염두에 두고 독자적 국정운영으로 '살길' 모색 관측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여야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임명안을 결재했다. 그런데 여야가 추천한 3명이 아니라 2명(정계선ㆍ조한창)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만 임명했다. 또 다른 야당 추천 재판관인 마은혁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보류했다.

최 권한대행이 아예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할 것인지, 아니면 야당 요구대로 3명을 임명하며 국정 안정화를 꾀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후보자 2명만 임명한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묘수'였다. 일각에서는 여야 합의 없는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하다던 한덕수 국무총리의 길을 최 권한대행도 따라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 또한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와 함께 최 대행은 쌍특검법(내란ㆍ김건희 특검법)은 야당의 일방적 특검 추천권 등이 위헌적이라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대행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 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 합의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온 헌정사의 관행을 강조한 전임 권한대행의 원칙을 존중해 여야 간 합의에 접근한 것으로 확인된 정계선ㆍ조한창 후보는 오늘 즉시 임명할 것”이라며 “나머지 한 분은 여야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헌법재판소는 현행 6인 체제에서 8인 체제를 갖추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와 선고 모두 가능해졌다. 최 대행이 야당이 추천한 정계선ㆍ마은혁 후보자 중 정 후보자를 임명한 이유로 정부는 마 후보자의 정치 편향 논란에 대한 여당 반발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 후보자는 2009년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해 후원금을 낸 사실이 알려져 법원장 경고를 받았다.

한편 최 대행의 결정을 앞두고 일부 언론에서 지난달 22일 야당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을 시사하자 최 대행이 한 총리를 만나 “나라와 경제가 어렵다. 불확실성을 끝내려면 헌법재판관 임명은 하셔야 한다”고 건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대행이 재판관을 전격 임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최 대행이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을 벗어나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언론은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항공기 참사 수습 뒤까지 재판관 임명을 미루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최 대행은 오히려 반대였다. 국무회의 직전까지 여러 버전의 원고를 준비했고, 최종적으로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택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최 대행은 비상계엄 선포 전 급히 열린 국무회의에서 가장 강하게 계엄에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바 있다. 여기에다 최 대행은 지난 17일 국회 현안질의에서 “계엄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사퇴를 결심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시각을 다시 내비쳤다. 

하지만 최 대행의 결정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과 여야, 그리고 국회의장까지 모두 최 대행을 비난하며 '위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윤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윤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은 3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임명한 데 대해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권한대행의 대행 직위에서 마땅히 자제돼야 할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감한 정치적 가치판단을 권한대행의 대행이 너무나 일방적으로 내림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측은 최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말 것을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일부 국무위원들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대통령실은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참모들은 6인 체제가 지속될 경우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에서 살아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계엄에 비판적인 두 명의 재판관이 추가되면서 그럴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히 최상목 대행을 '아꼈다'는 이야기가 정권 출범 때부터 나오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도 최 대행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야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야당의 탄핵 협박에 굴복해 헌법상 소추와 재판 분리라는 적법절차 원칙을 희석시킨 것으로 강한 유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 선별 임명에 대해 “삼권분립에 대한 몰이해,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우 의장은 최 대행 결정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 권한대행은 그동안 한덕수 국무총리에 가려져 그 정치적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대행의 대행'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최 대행은 '기습적인 2인 임명' 결정으로 여야 정치권을 들었다 놓은 셈이 됐다. 민주당으로서는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로 유지되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표시하면서도 최 대행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2인을 임명함으로써 앞으로도 최 대행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해나가려 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여당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이 공개적으로 최 대행을 압박했다. 하지만 최 대행이 기습적으로 2인 임명을 결정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이 앞당겨지고 여당이 미처 대통령 탄핵을 수습하기도 전에 대선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2인을 임명한 것은 여야 모두에게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역할이 제한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정치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이번에 그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앞으로도 최 대행이 굵직한 국정사안에 대해 여야의 타협이 불가능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더욱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최 대행의 이런 '마이 웨이'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여권의 '계엄동조파'들을 규합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마지막 역전극을 꿈꾸고 있었는데 최 대행이 8인 체제로 만들어 윤 대통령의 기대를 싹둑 잘라버린 효과를 낳은 셈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보수적이고 합리적 성향의 최 대행이 이번에도 헌법재판관들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또 다시 탄핵을 당할 가능성이 컸고 그렇게 될 경우 자신도 사법처리 수순으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최 대행이 급한 불부터 끄며 제 살길을 찾아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결과적으로 최 대행이 헌법재판소를 거의 '완전체'로 만들어줌으로써 정국의 큰 걸림돌 하나가 해소됐기 때문에 꽉 막힌 국정운영에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며 안도하는 모습도 보인다. 앞으로 최 대행의 또 다른 마이웨이가 어떤 국면에서 나올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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