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고객 협상에서 이재용 회장 중심의 그룹 차원 협상력 반드시 필요
적자 지속 파운드리 분사 여부도 이재용회장의 결단에 달려있는게 현실

[인더스트리뉴스 홍윤기 기자] 삼성전자 DS(메모리 반도체)부문은 지난 1993년부터 메모리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의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AI 칩의 핵심으로 떠오른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되레 삼성전자 위기론을 불러일으킨 주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세계 AI칩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를 필두로 SK하이닉스·TSMC가 이른 바 HBM삼각동맹을 구축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의 HBM 공급망 합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DS부문 뿐 아니라 삼성전자 전사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파운드리 분사'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핵심 사업부인 DS부문에 이같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역할론이 새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고객사와의 HBM 협상력 강화를 위한 그룹차원의 컨트롤타워 재건이나 파운드리 분사와 같은 굵직한 현안은 결국 오너십을 가진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뒷받침돼야만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의 지난해 매출액은 111조1000억원, 영업익은 15조1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DS부문은 1992년 D램 세계 1위,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30여년 넘게 왕좌를 지켜온 삼성전자의 핵심사업부다.
하지만 지난 2023년 SK하이닉스가 HBM3(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면서 삼성전자 DS부문은 HBM 시장의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주고 말았다.
결국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액 66조1930억원, 영업익 23조4673억원으로 삼성전자 DS부문을 영업익에서 뛰어넘으며 처음으로 국내 1위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 "HBM 큰손 美엔비디아의 낙점을 받아라"...이재용 회장의 그룹차원 협상력이 답이다
특히 올해는 PC·모바일 용도의 범용 메모리 시장은 하락 사이클에 진입하는 반면 HBM 등 AI용 메모리 시장은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아직도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지 못한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PC·모바일용 메모리 등 범용 제품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범용 제품 비중이 경쟁사 대비 높은 삼성전자의 경우 실적 방어에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삼성전자는 올해 실적과 주가 방어에 있어 HBM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HBM 시장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를 거래처로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의 요구와 이재용 회장의 역할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삼성전자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면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전세계 AI칩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한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를 HBM 메인 공급사, 제품 위탁생산을 TSMC에 맡기는 방식으로 이른바 HBM 삼각동맹 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AI 칩 수요 부족으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를 HBM 공급사로 삼고 싶어도 삼성의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SK하이닉스로서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합류하는 것이 달가울리 없다.
결국 삼성전자가 굳건한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 삼각동맹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을 구심점으로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업계에서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를 통한 책임경영 강화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의 재건 등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연간 보고서에서 “경영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도 지난 3일 이재용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2019년 이후 미등기임원인 이재용 회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복귀로 책임경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삼성전자 중심의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검찰이 지난 7일 이재용 회장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는 무리수를 강행하면서 이재용 회장은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채 회사의 경영위기까지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시험대 위에 다시 서게 됐다.
◆"일단 선을 그었지만" 높아지는 파운드리 분사 목소리에 커져가는 이재용 역할론
특히 파운드리 사업의 위기 국면에서는 이재용 회장의 역할론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은 “2030년에는 파운드리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현재 1위 TSMC와의 격차는 2019년 당시보다 오히려 더 벌어진 상태다.
2019년 1분기 TSMC는 48.1%, 삼성전자는 19.1%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3분기 TSMC는 64.9%로 점유율이 상승한 반면 삼성전자는 9.3%로 한자릿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의 최대 난제로 첨단 공정에서의 낮은 수율이 지적된다는 점도 고려해야할 대목이다. 삼성 파운드리 3나노 공정의 수율은 20-3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주요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부문과 경쟁관계인 경우가 많아 삼성 파운드리에 일감을 주기 꺼려한다는 점도 부진의 원인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운드리 사업부는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 2023년 2조5710억원, 2024년 5조18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바 있다. 삼성전자는 따로 파운드리 실적을 집계하지는 않지만 적자의 대부분이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분사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점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이재용 회장은 그동안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이재용 회장은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에 대한 로이터 통신의 질문에 "우리는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면서 "분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다만 매년 수조원의 적자와 업계 안팎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이재용 회장도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은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이미 3위 사업자이고, 이대로 가면 파운드리도 TSMC뿐만 아니라 인텔에도 밀려 3위 사업자가 될 수 있다”며 “독립된 회사로 분사하고, 각 회사마다 세계 최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전략적 의사결정이 가능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공기업으로 시작한 대만 TSMC를 예로들어 파운드리 사업부를 공기업화 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 소장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만 떼어내 KSMC로 독립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부담을 완화하고, 시장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며 “국가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사기업보다 쉽고, 기술 유출 걱정도 덜 수 있어 고객사 확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당장은 힘들 뿐만 아니라 AI 반도체 수요가 늘수록 메모리 보다 파운드리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다각도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