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행은 스스로 사표 재가…2일 0시부로 이주호 사회부총리가 권한대행
'대대대행' 체제 현실화…국무회의 성립 논란에 정부 "헌법상 문제없다"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한국 정치에 사상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가 들어서 국가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5월 1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5월 2일 0시부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최 부총리는 1일 오후 10시 30분쯤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한 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한 대행은 최 부총리의 사의를 재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대행도 사의를 재가할 때 자신이 이미 사퇴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한 대행은 정부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퇴를 발표했다. 한 대행의 임기가 5월 1일 자정까지였기 때문에 사퇴 발표 후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최 부총리의 사의를 재가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임기 종료를 불과 1시간여 앞두고, 그것도 이미 사퇴를 표명한 대통령 권한대행이 부총리의 사의를 재가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위다. 아무리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정운영을 마치 손수건 돌리기 게임을 하듯 일신상의 편의를 위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잇달아 직위를 내팽개치는 것은 국가 운영 주체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절차에 들어가자 임기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최 부총리가 야당에 물을 먹이기 위해 '그냥' 사퇴해버린 것에 대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 '대행'을 맡고 있는 두 명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야당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국가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의무를 몇 시간 사이에 저버린 것은 국제적 조롱거리다.
이렇게 대대대행 체제가 갑자기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근근히 유지돼온 국정운영도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애초 한덕수 대행의 사임에 따라 최상목 부총리가 2일 0시부터 권한대행직을 이어받을 예정이었으나 최 부총리가 사임하면서 이주호 부총리가 '대대대행직'을 맡게 된다.

국무위원 서열 4위인 이 부총리는 6·3 대선까지 약 5주간 국정 운영을 책임지게 된다.
먼저 사상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가 현실화한 가운데 국무회의 성립에 대한 논란부터 불거질 여지가 있다.
최 부총리의 사임으로 현재 국무위원은 14명이다. 헌법은 국무회의에 대해 '15인 이상 30인 이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고 정하고 있고, 대통령령은 '구성원(현재 21명)의 과반(11명) 출석으로 개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국무회의 개의에 문제가 없고, 정부조직법상 15명 이상의 국무위원 정원이 있는 경우 자연인이 공석이더라도 국무회의는 구성된다는 법제처 해석을 인용해 헌법상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정부조직법상 국무위원 정원은 19명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구성원을 직위가 아니라 자연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무위원 구성 요건은 '국내' 문제로 그렇다 해도 당장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의 외교문제는 국제 신인도 자체에 큰 흠결이 있을 전망이다.
최상목 대행이 1일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갑자기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사령탑이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한덕수 최상목 대행 모두 경제 통상 전문가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한창 진행돼 마무리만 남은 시점에서 비전문가가 최종 결재를 하게 생겼다.
또한 한미 통상협의 대응 등을 주도했던 최 대행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당장 대외 신인도에 큰 여파가 미칠 수 있다.
최 대행의 사임은 경제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지면서 정책 연속성이 단절될 위험도 있다. '차관 등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관료들 생리상 주요 이슈와 협상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몸을 사리는 관행이 만연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렵게 진행된 관세 협상이 완전히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결과 미국의 관세 압박과 내수 부진 등 국내외 경제 문제에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 대행이 사임하는 과정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꺼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됐다는 점도 악재다. 최 대행은 민주당의 탄핵안 표결 직전에 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12월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 등을 거치는 과정에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겨우 안정시켰는데 이번 사태로 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 최 대행 등 경제팀은 대외 신인도 관리에 전방위로 총력을 기울였다.
비상계엄에 놀란 주요국 재무장관, 국제기구 총재, 글로벌 신용평가사 등에 한국의 정치·경제를 포함한 모든 국가 시스템은 종전과 다름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설득했다.

특히 정치 리스크가 헌법 체계에 따라 적절히 관리되면서 경제 부문으로 전이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15일 한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종전과 같은 'AA'로 유지했다. 등급 전망도 기존과 같은 '안정적'(stable)을 부여했다.
특히 신용평가사들이 정치적 안정성을 중요 요소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최상목 대행 사퇴로 관세 폐지를 목표로 한 미국과의 '7월 패키지'(July Package) 협의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 대행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함께 2+2 통상협의에서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환율정책 등 기본 틀을 고안했다. 특히 환율에 관해선 기재부와 미 재무부가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통상 관련 협의는 주로 맡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의 주요 인물이 사라진 점은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 대행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대형 악재에서 시장 연착륙을 끌어내던 F4 회의체 운영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행을 맡게 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대신 참석하겠지만, 무게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 대행은 사퇴 직후 언론에 "대내외 경제 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게 돼 사퇴하게 된 점을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최 대행이 갑자기 사퇴를 함으로써 그동안 그가 대외 신인도 제고에 기울였던 모든 노력도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쇼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덕수 대행은 내란혐의로 얽혀 있는 자신의 사법 족쇄를 풀기 위해 6.3 조기 대선 관리의 최종 책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후 최상목 대행마저 민주당의 탄핵 표결 직전 사표를 던짐으로써 '될대로 대라'식의, 최악의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국민들은 간밤에 2명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잇따라 사라지는 사상 초유의 코미디같은 정치적 사변을 목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인과 관료들의 공적 사명감 부재와 사적 편의주의로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