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용 로봇의 보급이 정점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은 서비스용 로봇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일어났던 이른바 서비스용 로봇 붐이다. 당시는 제조업용 로봇 시장의 성장이 둔화될 것이며 공공장소, 가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 로봇, 퍼스널 로봇이 사용될 것이라고 예측들을 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 로봇, 교육용 로봇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은 열리지 않았고 제조업용 로봇은 용도 확대를 꾀하며 여전히 확대 중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예측에 대한 충분한 온고지신 없이 여전히 장밋빛 전망만으론 서비스 로봇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서비스 로봇 사업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필자의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제자리걸음 서비스용 로봇 시장
많은 전문가들은 서비스용 로봇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를 관련 기술과 킬러 앱(Killer App)의 부족 등을 꼽는다. 관련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의견은 수긍이 가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더 기술이 있어야 시장이 열리는가하고 반문해보면 참 모호하기 짝이 없다.
본질적으로 로봇기술이란 인조인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완성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그래서 대부분의 미래 예측이 2035년이니 2050년으로 돼 있는지 모른다).
기술 타령으로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논리라면 제조업용 로봇의 보급과 확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로봇 팔 하나로 용접, 핸들링, 조립 등 다양한 용도를 개척하며 거대 시장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가. 서비스용 로봇은 공장보다 더 까다로운 가정이나 공공장소에서 사용돼야 하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까다로운 환경에서 잘 사용되고 있는 수많은 가전제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재의 서비스용 로봇 기술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시장 형성을 방해할 정도로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킬러 앱 부재
서비스용 로봇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로 종종 킬러 앱의 부족을 든다. 로봇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IT 분야의 휴대폰과 같은 ‘대박 상품’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조업용 로봇이 용접, 핸들링, 도장 등 구체적인 대박 상품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서비스용 로봇은 그렇다 할 대표상품이 없다는 점을 보면 이 의견에 수긍이 간다.
어느 산업의 견인을 위해서는 그 산업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킬러 앱이 필요한데, BT(바이오 기술), NT(나노 기술) 등 역사가 일천한 이른바 신성장 동력 산업군에는 킬러 앱이 없어서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러나 매년 열리는 지식경제부의 로봇 융합 포럼이나 통합 워크숍에 참석해보면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기술이나 제품 구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술 로봇, 자율주행 로봇, 국방 로봇 등 아직은 서비스의 콘텐츠가 충분히 다듬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가 중대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들이다. 휴대폰 같은 초대박 상품이 출현할 때까지 서비스용 로봇 시장을 기다려야하는 것은 아니다.
코스트 퍼포먼스
필자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의 개화를 가로 막는 요인으로 관련기술이나 킬러 앱의 부족보다 서비스용 로봇의 가격 대비 성능, 즉 코스트 퍼포먼스(Cost Perfor mance)를 꼽고 싶다. 로봇의 기능과 성능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 신규 시장의 생태계를 가로막는 큰 요인이라고 본다.
필자의 회사에서 취급하는 두 가지 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한 제품은 논스톱 외관검사 로봇(NTVision)이라는 자동차 엔진의 조립 상태를 고속으로 검사하는 제품인데, 가격이 1억원을 넘어서는 고가품이다. 그러나 외국제품의 1/3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가품인데다가 자동차 회사에서는 당장 육안검사나 고정 카메라 검사를 대체하는 것이니 충분한 코스트 퍼포먼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 수입 공급하는 인터랙티브 휴머노이드 NAO의 경우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저가격(?)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연구자들이 구매하는데 그치고 있다.
NAO는 25개의 고성능 서보모터, 2개의 카메라와 각종 센서들이 집적돼 있는 휴머노이드로서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인 것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코스트 퍼포먼스가 낮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서비스용 로봇은 기능/성능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속에서 갈팡질팡이다. 소비자의 기능과 성능을 만족시키려니 가격이 올라가고 가격을 내리자니 기능/성능이 변변치 않아서 이동기능이나 지능이 없는 일반 가전제품에 불과하다.
많은 로봇 회사에서는 대량 생산이 이뤄진다면 이 같은 진퇴양난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공허하게만 들린다. 회사 입장에서는 시장이 열리기 전에 이윤을 최소화하거나 적자를 보면서 저가로 팔수만은 없다는 현실도 있다.
[그림 1. 인터랙티브 휴머노이드 NAO.]
PC 산업이 해결책
이러한 진퇴양난의 한 해결책으로서 로봇산업이 PC 산업의 발전사를 보고 온고지신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필자가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컴퓨터 강의를 접했는데 실습은 전산실에서 이뤄졌다. 거대한 컴퓨터에 천공식 카드를 수십장 입력해 고작 원주율이 계산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이 기억난다. 현재의 로봇산업은 마치 그 당시의 미니컴퓨터(메인프레임)과 같은 성능에 비해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서비스용 로봇을 예술품처럼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가 군을 마치고 복학했을 때 비로소 PC가 보급돼서 이제 거대한 미니컴퓨터를 구경할 기회가 없어졌으나 그 당시 변변치 않은 MS-DOS의 성능을 떠올리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렇게 PC 산업은 메인프레임으로 대표되는 집중형에서 PC로 대표되는 분산형으로 발전했으며, 인터넷의 등장으로 네트워크형으로 도약했다.
필자는 서비스 로봇 산업도 PC 산업과 마찬가지로 집중형, 분산형, 네트워크형으로 진화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서비스용 로봇은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팔, 다리(이동 기구), 몸통(제어기 등) 등을 갖추고 있다. 그림 1과 같은 인터랙티브 휴머노이드 NAO가 그 예다.
가격과 기술 개발의 상관관계
이와 같이 신체성을 갖추려면 부품이 많아지고 기술은 복잡해지며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현재의 기술과 시장 상황으로는 코스트 퍼포먼스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이 없다. 단순히 대량생산에 되면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것은 기술자적 발상에 불과하다.
반면, 그림 2는 최근 NT 리서치가 판매 개시한 의료검체를 무인으로 반송해주는 Sbot이다. NT 리서치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의료로봇 사업의 시장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온터라 애초부터 재사용성을 고려해 로봇을 집중형이 아닌 분산형으로 개발했다.
즉, 2개의 차륜을 가진 이동부, 레이저 센서 등을 장착한 센서부, PC 등으로 구성된 제어부, 혈액 등의 의료검체를 담는 수납부 등을 모두 간단히 분리할 수 있고 기능적으로도 독립되도록 설계돼 있다. 이동부, 제어부 등은 이미 다른 제품에서 개발된터라 수정을 거친 후 재사용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Sbot 시스템의 상용화가 곤란한 경우에는 각 모듈별로 사업화하는 것도 염두에 둔 결과였다.
[그림 2. 의료검체 무인이송 로봇 Sbot(분산형).]
로봇의 집중형과 분산형
로봇을 집중형이 아닌 분산형으로 설계하려면 그만큼 설계 노력이 들지만, 기술의 재사용성, 이식성 등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장점이 많다. 분산형의 장점은 제조사나 소비자나 필요한 기능만을 선별적으로 조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로봇에 원하는 모든 기능을 만족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로봇의 사양은 시장에서 이해당사자 간의 타협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코스트 퍼포먼스는 최적화된다.
예를 들어, 도로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신호 마네킹은 시장에서 어떻게 타협이 이뤄지는지 잘 보여주는데, 수신호 로봇을 집중형으로 설계한다면 복잡한 수신호의 구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휴머노이드에 요구하는 모든 제스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네킹은 가장 단순한 스윙 동작만을 구현함으로써 놀랄만한 염가로서 시장에 공급하고 있지 않나. 비록 로봇으로 당당히 불리지 못하고 복잡한 수신호는 사람에 다시 투입돼야하지만 굳건히 시장을 점유한 좋은 서비스 로봇의 예라고 생각한다.
분산형은 단지 하드웨어의 모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소프트웨어의 분산화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가까운 예로 스마트 폰을 들 수 있는데 기본 기능만이 공장에서 출시되면 사용자의 기호와 실력에 따라 다양한 앱이 설치되는 방식이 정착되고 있다. 개인주의화(Individualism) 경향은 로봇이 인간에게 친근한 서비스를 실시할수록 강화될 것이므로 소프트웨어 제작에 있어서도 분산화를 고려해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분산형에서 네트워크형으로의 진화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결국은 분산형과 네트워크형이 혼재하는 로봇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대중소기업 협업
끝으로 서비스 로봇 사업의 생태계를 위해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분업, 협업이 필요한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미 제조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대기업이 로봇 팔과 제어기를 만들고 이를 용도별, 고객별로 커스터마이징하는 분업이 잘 정착돼 있다. 그러나 아직 서비스용 로봇에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적고 일부 로봇 전문기업의 벤처 정신만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실이다.
휴머노이드, 파워 어시스트, 이동 로봇 등 주요 서비스용 로봇의 양산을 대기업에서 진취적으로 이끌어가고, 중소기업이 용도별, 고객별로 로봇을 커스터마이징하는 생태계의 건설이 시급하다.
서비스의 유통은 초기 단계에서는 중소기업이 역할을 하겠지만 시장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대기업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서비스용 로봇 시장의 생태계가 만들어져 아직은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이 하루 빨리 자립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