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SS 화재, 법의 기준이 아닌 사람을 위한 기준에 맞춰야
  • 정한교 기자
  • 승인 2019.11.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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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적, 화화적 안전 간과한 채 경제적 이득만 극대화한 ESS 운용이 화재사고 주요 원인… 배터리는 온도에 따라 충·방전 패턴 달리해야

[인셀 이재경 부사장]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나온다. 과학적으로는 피토우관의 등압에 의한 유체 이동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삼갈 계(戒) 찰영(盈), 가득 차게 따르지 말 것을 암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최근 들어 ESS분야에 연계된 배터리의 화재사고가 잦아지면서 관련 산업계가 침체되고, 국민들의 걱정이 가중되고 있다. 더구나 세계 ESS시장 선두그룹이라 자처하는 우리나라로서는 EV시장 수요와 함께 어물쩍 넘어 갈 수도 없는 문제라 배터리 화재에 대한 처리결과를 세계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아주 예민하고 소심한 친구이다. 비위를 잘 맞추어 주면 넉넉히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억지스러운 환경이 내외부로부터 강요된다면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주지 않으면 급기야 제 화를 못 이겨 폭발하기도 한다. [사진=dreamstime]
세계 ESS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ESS 배터리 화재사고에 대한 처리결과를 세계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dreamstime]

왜 하필 리튬이온 배터리(LiB)인가? 라는 질문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찌됐건 이미 우리생활 주변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중장비, 자동차, 소형모빌리티, 의료기기, 드론, 로봇, AGV(Auto Guided Vehicle), 군사장비, ESS 등등 가히 BoT(Battery of Thing)의 세상이다.

전기를 생산해 소모하기만 하던 세상에 ‘충전’이라고 하는 전기적 개념이 너무 빠른 속도의 기술로 발현돼 실제 우리가 배터리의 속성을 이해하는 감성과는 큰 차이를 갖게 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아주 예민하고 소심한 친구이다. 비위를 잘 맞추어 주면 넉넉히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억지스러운 환경이 내외부로부터 강요된다면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주지 않으면 급기야 제 화를 못 이겨 폭발하기도 한다.

그동안 리튬이온 배터리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아주는 등 잘 달래서 사용해 보았더니 그 편리함과 유용함, 확장 적응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에 우리는 오늘날의 BoT 세상을 향유하게 됐고, 앞으로도 무한한 문명의 세계로 인류를 안내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고가 났다.

살펴보니, 모든 리튬이온 배터리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전력계통에 연결되는 소위 B.ESS 분야에서 화재사고가 유독 많았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화재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꼽자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소에, 가장 많은 용량이 설치됐다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사이에 약 28개소가 화재로 이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단지 많이 설치했다고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 관계당국의 발표를 잘 듣기는 했지만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배터리 제조회사는 여전히 여기에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

새로운 검사방법과 기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더 만들어질 추세다. 기술에서 정한 법, 령, 규칙은 그 기술의 속성에 대한 가장 보편적 가치를 공통범위로 보고 그 공통범위에서도 최저대의 조건을 강제한 것이다.

가령 어떤 기술로 접목된 회전기계가 있을 때, 그 기계와 벽면간의 이격거리를 최소 ‘50㎝’는 유지해야 되며, 법에서는 ‘50㎝ 이상 이격할 것’이라고 한다. 벽에서 51㎝를 띄우고 시설한 그 기계는 ‘합격’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안전 측면에서 보면 51㎝ 보다 1m가 더 안전하고, 1m보다는 2m가 더욱 안전할 것이다.

충전기술은 약 100여 년 전부터 존재했던 기술이고, 리튬이온 물질은 약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던 물질이다. 기술의 세계에서는 그 태생적 약점도 다 알고 있었다. 왜 이제야 작금의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인가. 불과 4, 5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도 화재로 폭발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기론 0%에서 95%, 100%까지 충전과 방전을 가능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곳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예정된 충·방전 주기에 따라 가중치 5.0의 캐시 플로우(Cash Flow)가 엄중한데, 계획에 모자란 충·방전 폭은 사업주 자산의 감소와 부채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바닥을 모르고 낮아진 REC 가격과 함께 출구 없는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전기적, 화학적 안전을 간과한 채 ESS를 경제적 이득만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85%로 운전하면, 나머지 15%의 배터리 값과 운휴 손실은 어떻게 하나”라고 하는 질문은 최근 대두된 우문이다. 본래 배터리의 태생이 그러하므로 추가 지불이 아니라 안전을 담보하는 여유 폭이었고, 운휴 손실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운전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불과 수년전까지 그리 인식돼 왔던 점을 상기한다면, 지금이라도 기술 집단들이 계몽해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배터리는 온도에 따라 충·방전 패턴을 달리해야 하고, 이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작금의 충·방전 상태를 유지한 채 방재책을 찾았다 하더라도 몇 년 후의 건강 수명은 또 어찌 감당할 것인가.

85%니, 95%니, 100%니, 이는 State of Charge(SOC)를 일컫는데 여기서 'State'는 상태, 상황을 뜻한다. 배터리의 셀 내부에서는 전압과 전류가 온도와 조화를 이루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를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라는 감시명령체계가 맡고 있다. BMS의 감시망이 촘촘하고 감시 항목과 명령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는 이유이다.

배터리 운용에 있어 SOC, DOD의 안정화를 위한 온도와 습도, 전압과 전류, 셀 밸런스 등을 감시하고 명령하는 BMS, 그리고 관련 정보를 공유 보관하는 시스템 등 이러한 원칙을 하루 빨리 되찾아 지키면 해결될 일이다.

인셀 이재경 부사장
인셀 이재경 부사장

벗어난 상식을 일일이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의 도전과 응전이 기술발전의 동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터리에 관해서는 원칙대로 충·방전한다면, 화재 예방과 더불어 PCS와 EMS, 불예측적인 외부 요인들과의 다툼이 현저하게 줄어드리라 확신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이 지향하는 곳은 법의 테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을 위한 곳과 맞닿기 위함이리라.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이 원칙을 전제한다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까?

본디 의술은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이다. 상처가 발생한 이유를 살피어 방비하는 것은 지혜이다. 작금의 사태가 지혜롭게 해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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