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쁘다는데 노동자·기술력에 제동 걸리는 항만자동화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1.12.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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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포함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평가해야

[인더스트리뉴스 최정훈 기자] 스마트항만을 의욕적으로 키우겠다는 정책에 대한 항만종사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각국이 앞다퉈 항만자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어 눈뜨고 경쟁력을 추월당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항만종사자들은 선례를 봐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들을 낳고 있다며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항만자동화는 모든 기계·제어 기능을 디지털화 해 스마트게이트, 선적계획, 차량운송, 해상운송 스케쥴링 등 작업들이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항만이다. 1993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터미널(ECT Delta)에 자동이송차량(AGV, Automated Guided Vehicle) 도입을 시작으로 각국 항만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세계운송포럼(ITF, International Transport Forum)에 따르면 최근까지 전세계 53개 컨테이너 터미널이 자동화에 착수하거나 구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터미널 중 4% 수준으로 많진 않다.

국산 기술로 만든 AGV를 테스트해보고 상용화 한 레퍼런스가 없어, 단기간 내 AGV 적용을 위해 외산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사진은 로테르담항만 AGV. [사진=utoimage]
국산 기술로 만든 AGV를 테스트해보고 상용화 한 레퍼런스가 없어, 단기간 내 AGV 적용을 위해 외산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사진은 로테르담항만 AGV. [사진=utoimage]

항만자동화가 주는 가장 큰 이점으로 생산성이 대두된다. 안벽크레인, 야드크레인, AGV 등 사람의 개입 없이 작동되고 빅데이터 기반으로 유휴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동화로 수동 개입을 배제하면 안전사고의 여지를 줄여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시아 최초로 자동화 터미널을 구축한 중국 칭다오의 크레인은 지난해 기준 시간당 컨테이너 43.23개를 처리한다며, 평균 41개인 기존 유인 항만 생산성을 넘어섰다고 공표한 바 있다. 

생산성 진위 따져보자는 노동자

두말할 나위없이 좋다는 항만자동화에서 풀어야할 과제는 노동자 문제이다. 최근 부산항운노조가 단단히 뿔이 났다. 내년 상반기 개장 예정인 부산항 신항 2-4단계에 AGV 도입설이 나오고 있어서다. 부산항운노조 관계자는 “항만자동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적법한 절차에 의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노사정협의체에서 일언반구도 없던 2-4단계 AGV도입은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안벽크레인, 야드크레인, AGV 등 모두 자동화에 방점을 찍은 2023년 개장할 2-5, 2-6단계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2-4단계에서는 스트래들캐리어(S/C, Straddle Carrier)로 인력 투입을 소폭 줄이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줄 알았다고 했다. S/C, 유인 AGV, 무인 AGV로 갈수록 항만종사자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 

AGV 도입을 완강하게 저지하고 있는 노조는 앞으로도 일자리 사수를 위해 어떤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실제로 프리즘경제분석(Prism Economics & Analysis 2019)에 따르면 일찍 자동화를 추진했던 LA(TraPac)는 40~50%, 시드니(Patrick) 50%, 칭다오는 85% 각각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전문가는 “갈수록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항만종사자나 재래식 장비 기술자의 실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ICT, 유지보수 등 부수적으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빅데이터, 예지보전 등 고도화 기술이 발전 할수록 일자리는 결국 0으로 수렴한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해외도 노동자 달래지 못해

항만종사자들은 생산성 여부에 반문하고 있다. 컨테이너항만 물동량은 정형화되지 않고 줄었다 늘었다 하는 비정형 상태인데 제조현장의 다축 모션컨트롤 같은 유연성을 기대할 수 없는 크레인으로는 되레 생산성이 떨어질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휘발성 등 위험 화물을 다루기도 사람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맥킨지(McKinsey survey 2017)는 자동화항만 생산성이 기존 유인 항만보다 7~15% 낮다고 평가했다. 맥킨지는 항만자동화가 창고업, 광산 및 화학공장 보다 수익을 내는데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했다. 홍콩항 터미널 운영사인 에이치아이티(HIT)는 애초에 자동화의 ROI가 불확실해 투자를 유치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외신(NIKKEI)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생산성을 호소해봤자 노동자들의 반감만 살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대목이다.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행하다가 노조 반발로 무인화 계획이 무산된 네덜란드 사례가 부각된다. 로테르담 항만은 2019년부터 터미널과 터미널, 터미널과 창고 간 이동의 자동화를 목표로 하는 CER(Container Exchange Route)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당국은 컨테이너 10~20만개 이동 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인 CER가 아닌 무인 CER를 낙점했다. 

노조는 대부분 컨테이너가 부두에 몇일씩 대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여분의 시간을 아낀다고 해서 생산성이 얼마나 개선되겠냐며 따져 물었고, 수 십명의 대량 해고로 실업급여 등 사회적 비용 증가가 되레 더 큰 피해를 불러온다며 비토를 놨다. 특히, 공공자금이 투입되는데 예상 효용, 편익, 사회적비용을 정확히 산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 5월 로테르담 항만 당국은 무인CER를 철회하고 유인 CER로 프로젝트를 수정했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연구위원은 “스마트항만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에 비해 현장은 여전히 준비가 안 됐다. 단순히 기계를 놓는다고 자동화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기계마저도 국산을 찾기 힘들다“며, “이대로 스마트항만을 추진하게 되면 외산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항만크레인 시장 70%를 장악한 중국의 ZPMC 같은 업체들이 들어와 맹위를 떨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내다봤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연구위원은 “스마트항만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에 비해 현장은 여전히 준비가 안 됐다. 단순히 기계를 놓는다고 자동화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기계마저도 국산을 찾기 힘들다“며, “이대로 스마트항만을 추진하게 되면 외산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항만크레인 시장 70%를 장악한 중국의 ZPMC 같은 업체들이 들어와 맹위를 떨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부산항 신항. [사진=부산항만공사]

미국에서도 항만자동화가 더딘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며, 항만 기반시설에 170억달러(약 19조원) 투입을 발표했다. 뚜껑을 열어보면 대부분 유지보수, 탄소저감 등에 배정됐으며 자동화는 쏙 빠져있다. 오히려 자동화 장비 투자를 금하는 규정(‘Build Back Better’ 섹션 30102)이 자리하고 있다.

항만자동화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배후를 파고들다 보면, 국제항만노동자협회(International Longshoremen's Association), 국제항만창고연합(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 등 노조가 있다. 노조가 당국, 운영사들과 2018년 맺은 협약에는 2024년까지 어떠한 자동화 장비 투입을 금하고 있다. 협약 과정에서 ILA는 6년동안 자동화 장비 보다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노조는 야라(Yara), 일본 NYK 등 자율운항선을 겨냥해 안전과 보안이 담보되지 않은 무인선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미국, 호주, 유럽 등에서는 항만자동화에 대한 노조 반대로 파업이 발생하거나 항구가 봉쇄되는 사태를 다수 겪었다. 항만자동화로 잡음이 없는 곳은 아직 자동화 수요가 없는 신흥국과 중국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공급사슬 외산에 넘겨줄 가능성 커

자동화 추진된다 해도 국내 취약한 연관산업 때문에 공급사슬에서 얻는 이익이 해외업체로 갈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파다하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연구위원은 “스마트항만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에 비해 현장은 여전히 준비가 안 됐다. 단순히 기계를 놓는다고 자동화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기계마저도 국산을 찾기 힘들다“며, “이대로 스마트항만을 추진하게 되면 외산이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항만크레인 시장 70%를 장악한 중국의 ZPMC 같은 업체들이 들어와 맹위를 떨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진단했다. 

항만자동화는 야드 내 자유롭게 이송 작업을 수행하는 AGV 기술이 관건이다. 항만 AGV는 아마존 등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물류창고 AGV와는 방식이 다르다. 유럽 항만 AGV의 경우 90년대 후반 기술개발에 나서 지금은 부두 바닥에 수만 개의 트렌스폰더(Transponder)와 통신하며 이동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표준으로 정립한 상황이다.

부산항은 그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유럽보다 최근에 시공된 항만이다 보니, 지반이 뻘이거나 바다로 확장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트렌스폰더를 견고하게 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국산 기술로 만든 AGV를 테스트해보고 상용화 한 레퍼런스가 없어, 단기간 내 AGV 적용을 위해 외산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공급사슬·산업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전략으로 항만자동화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한국항만경제학회 ‘스마트항만’ 보고서에서는 “스마트항만 구축을 위해서는 항만 공급사슬의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항만 해운 항만도시 SCM 내 어떠한 정보의 동기화가 필요하고, 동기화를 위해 필요한 요소를 미시적으로 연구하고 발굴하는 것이 항만의 스마트화를 앞당기는 길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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