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선박으로의 교체와 규모의 경제 통한 수익성 강화 의도
지난 2010년대에도 선대 확충 경쟁으로 한진해운 등 파산
[인더스트리뉴스 홍윤기 기자] 최근 선복량(화물적치 가능량) 기준 10위권 이내 컨테이너선사들의 대규모 선박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탄소 규제로 인한 친환경선박 전환 필요성 함께 선대 규모를 늘려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선사들의 전략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컨테이너선이 공급과잉 상태라는 점이다. 코로나19 특수 당시 주요 선사들이 앞다퉈 발주한 선박이 운항에 들어가면서 선박 공급량이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을 파산으로 몰고 간 2010년대 '파멸적 경쟁'을 떠올리며 HMM 등 국내 컨테이너 선사들에 대한 우려섞인 시각도 없지 않다.
당시 주요 선사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선대(船隊)를 경쟁적으로 늘렸고, 이로인해 운임이 하락한 반면 원가 절감을 위해 선대를 확충할 여력이 부족했던 중소 해운사들이 파산을 맞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선대 확충 경쟁 와중에 2017년 결국 파산한 한진해운이 대표적 피해 사례다.
30일 트레이드윈즈(TradeWinds) 등 외신에 따르면 선복량 기준 세계 5위 선사인 독일 하파그로이드(Hapag-Loyd)는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등 최대 30척의 컨테이너선을 건조하기로하고 조선소 물색에 나섰다.
현재까지 알려진 하파그로이드가 발주하려는 선박 크기는 1만5000~1만6000TEU(1TEU = 20피트 컨테이너)급 대형 컨테이너선이 10척, 8000~9000TEU급 중형 컨테이너선 10척, 여기에 2만36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세계 2위 선사인 덴마크 선사 머스크와 6위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도 각각 80만TEU, 70만TEU 규모 신규 컨테이너선 발주 계획을 내놓았다.
국내 최대, 세계 8위 선사 HMM도 지난 4월, 2030년까지 선복량을 현재의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벌크선을 제외한 컨테이너선만 따지면 92만TEU(84척)인 선복량을 2030년까지 150만TEU(130척)로 늘린다는 구상이었다.
업계에서는 세계 주요 선사들이 컨테이너선을 늘리는 이유로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선박으로의 전환 △규모의 경제를 통한 운송원가절감 등을 꼽고 있다.
문제는 현재도 컨테이너선의 공급과잉인 상황에서 신규 발주가 지속되면 결국 운임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가 우려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과잉공급은 SCFI 하락을 통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SCFI는 전세계 주요 15개 항로의 스팟운임을 반영한 운임지수로, 컨테이너선사들의 실적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손익분기점은 1000포인트로, 그 이상이면 선사들 입장에서는 이득이 된다.
한국관세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23일 SCFI가 3097.63을 기록했다. 지난해 SCFI 연평균이 1005.79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다. 지난해 말부터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감으로 운임이 급격하게 상승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난 7월 5일(3733.80)을 고점으로 SCFI는 돌연 연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코로나19 당시에는 물동량 증가에 따른 유례없는 호황으로 글로벌 선사들이 앞다퉈 발주했던 컨테이너선들이 대거 운항에 나서면서 운임이 하락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코로나19 시기부터 선박 과잉공급으로 인해 운임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
HMM관계자는 “(지난해 말)중동 이슈가 급작스레 터지기전 만해도 올해와 내년까지 운임 사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면서 “지난 코로나19 특수 시기에 선사들이 선박을 대거 발주했고, 해당 선박들이 운임에 나서면서 선박 공급과잉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010년대 해운업계에 불어닥친 ‘파멸적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마저 제기하고 있다.
머스크는 2014년 파멸적 경쟁을 선언하며 세계 최초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건조·투입해 규모의 경제 실현과 그에 따른 운송원가 절감에 나섰다. 이에 주요 선사들도 저마다 선대규모를 늘리며 이에 맞섰다.
그 결과 운임은 하락한 반면, 운송원가 절감을 위해 선대를 늘릴 여력이 부족했던 중소 선사들은 줄파산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다만 현재 해운업계 상황이 과거 파멸적 경쟁과 유사하지만 당시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해운업계 상황은 2010년대 공급과잉과 유사하면서도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HMM 등 최상위 컨테이너 선사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1개국(國), 1개 선사 구조인데 선사들의 경쟁이 곧 국가간 경쟁 양상으로 바뀌면서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2010년대 공급과잉 당시에도 주요 선사들은 선대 규모를 늘리는 방식으로 난관을 타개했는데, 현재의 HMM도 초대형·친환경 컨선 등 선박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탄소중립 등 친환경 규제로 노후선박의 퇴역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공급 과잉이 일정부분 해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