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 야 기자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이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전문위원장 등 국가 주요 정책자문역할을 해온 신임 원장께서는 지난 9월 29일 제15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어떤 각오로 임하고 있는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1977년 설립당시부터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 깨끗한 에너지, 새로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해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효율뿐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창출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임 원장으로 부임해 연구원 개개인이 자긍심을 느끼고 자랑스러운 역할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깨끗한 에너지, 새로운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연구개발을 목표로 1977년 설립된 연구원은 올해로 33년이라는 녹록치 않은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의 에너지 전문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원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이미 우리 연구원 내부에서는 다양한 연구 분야를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중점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낼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원장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기관 평가위원으로서의 역할을 2~3년간 수행했기 때문에 연구원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신재생에너지나 에너지 효율화 등이 매우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며 전 세계적인 연구개발 및 산업 투자에 힘입어 다양한 연구기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 참여를 또한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 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지난 3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에너지 연구기관으로서의 주역을 다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지금의 선택과 집중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연구원 개개인이 보다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함으로써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정부와 국가에 기여하는 연구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연구원장이 가진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제15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황주호(黃柱鎬, 54세) 원장은 경기고, 서울대를 거쳐 미국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을 거쳐 1991년부터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6년 11월부터 2년간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전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최근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세계화와 연구목표 달성을 위한 경영시스템과 제도개선을 위한 선진화 바람이 거세다. 연구원도 최근 기존의 5개 본부 36개 센터를 3개 본부, 14개 센터로 조직 개편을 단행해 조직의 슬림화를 이뤄냈다. 이러한 조직 개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인가?
조직의 슬림화는 전임 원장의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굉장한 노력의 결과다. 그 선택과 집중의 정신을 살리면서 빠른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정부출연 연구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공공성에 있다고 본다. 이윤창출을 위한 연구기관이 아닌 공공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도 매우 중요하지만 보급에 있어서의 성능검증과 평가·인증 등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강조할 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연구원은 가장 좋은 여건과 인프라를 갖췄다고 본다. 태양광, 풍력, 태양열, 지열 등의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분야의 평가와 검증, 인증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조직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서는 내년 초에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변형을 시도할 계획이다.
기타 조직은 선택과 집중의 정신에 걸맞게 잘 운용되고 있다. 거의 1/3 내지는 1/2로 축소한 조직개편의 배경에는 우리 연구원이 이제까지 개별 기술별로 운영되던 것을 융합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지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추구할 생각이다. 연구원 서로간의 전공분야와 영역을 불문한 융합적인 기술개발 노력은 우리 연구원의 강력한 파워로 표출될 것으로 믿는다.
연구원은 에너지 기술과 관련된 미래지향적인 원천기술 확보에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연구원의 중점 기술 연구 분야는 무엇이며,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사실 욕심대로라면 우리의 연구원이 차세대 에너지 기술의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쉽지만 현재의 선택과 집중의 방침은 기술영역을 보다 더 확장하고 필요한 부분을 모두 섭렵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지금 일시적으로 집중하고 성과를 낸다면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폭넓은 분야로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연구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최대한의 역량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핵심 연구과제는 여러 가지 중에서 6대 중점분야를 선정했고, 3대 핵심과제로 박막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의 기술개발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경영목표를 수립하고 산업기술연구회에 제출해야 하는 현재의 입장에서 지난 수년간의 성과와 급변하는 주변 환경과 여건을 반영해서 중점분야, 주요 추진분야에 대한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은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난 3년간 산업체나 민간의 역할과 최근 일어나는 민간의 역할 및 투자동향을 따져보면 과거 구축한 계획대로 편안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상 우리 연구원이 박막을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국내 기업은 외국 업체와 대규모 투자계약을 맺고 공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럴 때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연구원은 이제까지 택했던 전략에 가속기를 붙여야 한다.
즉,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맞춘 R&D도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보다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분야가 신재생에너지다. 연구원장이기에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원자력공학 전공자 입장에서 보면 원자력은 사실 꾸준하고 길게 가는 것이 성패의 갈림을 정하는데, 신재생에너지는 누가 더 빨리 뛰고 높이 뛰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예를 들어 풍력 관련 기술을 우리가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는데, 어느 기업에서 풍력에 큰 투자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가 정부출연연구소로서 무엇을 기여했는가, 앞으로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기관장 입장에서는 잠이 안 올 수밖에 없다. 고민이 많다. 우리 연구원들에게도 이런 고민 바이러스를 확산해서 함께 고민하고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카자흐스탄과 에너지기술 협력 추진. 자원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지난 4월 방문 이후 자국의 석유화학공정 및 화력발전소 등에 적용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는 연구원의 CCS(CO2 포집·저장) 기술과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황주호 원장(왼쪽)이 카자흐스탄 산업개발연구원 카지켄 메이람 원장과 MOU 협약서를 교환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원천기술 확보 경쟁이 치열한 ‘그린에너지기술’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국가 간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엄청난 자본력을 무기로 세계의 석학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자로 남을 수 있는 연구원의 역할과 방법을 제시한다면?
분명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 최대한으로 발휘한다고 해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그것을 다 합쳐서 더 큰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노련하고 능력있는 연구원이 최대한 노력해서 성과를 낸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 연구원 한사람의 만족감에 그치지만 국가에 기여하는 바는 다소 미비한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여러 뛰어난 연구원들이 협력해서 큰 성과를 낸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결과를 표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사업을 도모한다면 정부출연연구원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는 태양광 연구에 100~200명씩 투입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고작 분야별로 10여명이 연구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또 부족한 국제화·개방화 면에서도 개선할 점이 있다.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 연구소와의 교류뿐만 아니라 외국 석학들을 영입해 본격적인 의미의 국제적인 연구소를 운영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중국, 독일, 미국 등 세계 에너지 강국들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두고 질주하는 호랑이들이라고 표현한다. 혹자는 에너지기술연구원장이 된 나를 두고 ‘이제 황교수가 호랑이 등에 탔다’고 말한다.
국내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고 경계가 애매모호한 연구기관간의 교통정리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감히 교통정리라기보다는 상호 보완하는 협력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이를 테면 에너지의 경제효과에 대해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 기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생각하고 건의를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계속 접촉하면서 좋은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국책 연구과제 선정에 있어서 너무 최첨단 기술만 고집하다보니 대기업 위주의 연구과제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중소기업의 상용화, 범용화 기술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연구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꽤 자주 외부인들이 기술적인 문의를 해온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의 상당히 전문적인 기술문의에 대해 연구원들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들의 업무 중 대략 20~25%는 중소기업을 돕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솔라투데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지난 5년간의 에너지 R&D의 증가율과 에너지 R&D에 참여하고 있는 인력의 증가율을 비교해 보라. 이것이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 에너지 연구개발은 실적을 내기가 어렵다. 해외 한 기관의 태양광 한 팀만 하더라도 수백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수준이 되는가? 1/10의 인력도 안 된다. 1/3의 인력만 되어도 좋겠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인력확보가 시급하다.
국가 에너지 계획에 의하면 2030년까지 11%의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겠다고 되어 있는데, 전기로 환산했을 때 10GW 정도 된다. 원자력발전소 10개 정도의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수치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주 잘해야 가능하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낌없는 성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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