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상 최초 ‘예산안 감액’ 초강경 대응 왜?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4.12.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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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장외집회 동력과 지지층 결집 위한 강경책 해석도
국민의힘, 예상치 못한 초강수 기습 작전에 우왕좌왕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왼쪽 세번째)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여야의 예산안 대치가 또 다른 정국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김건희 특검법 등으로 갈등을 빚던 여야는 이번에는 예산안 감액을 두고 극한 정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말이면 여야가 예산을 최종 타결을 두고 대치를 하곤 했지만 이번처럼 야당이 정부의 예산안 자체를 감액하려는 시도는 사상 처음이다. 애초 야당이 검찰·감사원·경찰 등 3대 사정기관의 특정업무경비·특수활동비(특경·특활비) 678억원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전액을 삭감하려 했을 때에도 여당은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검사 3명 탄핵소추안 본회의 보고로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면서 여야에 전운이 짙게 감돌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또 다시 예산안 감액이라는 초강경 대여 압박작전을 전개하자 국민의힘은 야당의 강력한 프레싱에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특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정부 비상금 예비비(4조8000억원)를 반쪽으로 줄이며 예산안 자체에 대한 감액에 나서는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야당의 무리한 예산 증액 요구 수용을 겁박할 의도라면 그런 꼼수는 아예 접길 바란다"면서 추가 협상이 없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공세에 대해 '추가 협상이 없다'는 선언만 할 뿐 물밑 대화 등의 돌파구 마련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자칫하면 민주당의 기습공격에 손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예산안 백기를 들게 생겼다. 만약 여야 합의가 불발될 경우 헌정사상 처음으로 합의가 안 된 야당만의 감액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민의힘은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감액만 반영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을 일단 12월 2일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고 밝혀 한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이는 명분을 쌓기 위한 지연작전일 뿐 결국 우 의장이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지역화폐 예산 증액 등 이재명 대표가 강조하는 사업의 예산 증액을 카드로 벼랑 끝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지만 그와 상관없이 민주당이 사상 최초로 정부 예산안을 감액하는 강경책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한국 정치사에서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예산안 감액까지 밀어붙이는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재명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사법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소한 것이 정국 주도권 장악의 명분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매주 이어가는 장외집회의 동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뭔가 더 군불을 지필 만한 에너지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1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정 위원장이 야당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사진=연합

민주당이 지지층에게 더 자극적인 대여 투쟁 시그널을 보내 장외집회의 동력과 지지층의 결집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상 최초의 예산안 감액 시도는 지지층으로부터 ‘민주당을 다수당 만들어줬는데 이번에는 일을 좀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조사를 보면 부정평가의 항목 1위가 경제라는 점이 부각되고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서 민주당이 예산안부터 강력하게 국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점도 민주당의 ‘예산안 극한 대치’ 명분을 더 키워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소추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사정 기관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예산안 군기 잡기’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예산안 감액 대치 국면의 최초 ‘발화점’이 검찰·감사원·경찰 등 3대 사정기관의 특경·특활비 전액 삭감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사정기관의 힘빼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그동안 일종의 금도로 여겨지던 전체 예산안 감액마저 시도하는 것에 대해 선을 넘었다며 분개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에 대해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일방독주를 이어가자 협치를 당 협상전략에서 아예 삭제해버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이번 예산안 감액 맹공은 윤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은 물론 시정연설도 불참할 때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에 반성하는 시늉만 하면서 '묻지마 강공'을 계속하자 야당에 예산안 감액이라는 사상 초유의 강경대응 빌미를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협상 여지가 있다’며 강온 양면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추가 협상이 없다며 끝까지 강경대응을 고수할 경우 예산안 단독처리도 불사할 태세다. 22대 국회 원구성 때도 국민의힘은 위원장 임명 전면 거부 등의 초강경 대응을 ‘말로만’ 하다가 결국 일부 위원장을 받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협상 불가를 외치다가 막판에 정부에 최대한 실리를 주는 쪽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정국 운영이 협치와 타협으로 선회하지 않는 이상 민주당도 사상 최초의 예산안 감액을 관철시킬 명분을 앞세우며 강대강 대치로 끝장을 볼 기세다. 여야의 장기 대치는 이제 김건희 특검, 감사원장 탄핵 등의 정치영역에서 예산안이라는 경제영역까지 옮겨가며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 정치는 이제 민생의 최후 보루인 예산안 영역마저 강대강 대치에 무너져내릴 위기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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