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러시아 싱크탱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다른 나라들 사이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완전한 해체를 추진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최근 러시아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3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의 휴전 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작전을 감독하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제5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모스크바의 한 싱크탱크가 지난달 작성해 크렘린궁에 전달한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유럽 정보기관이 입수하고 WP가 검토한 이 문서는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 간의 회담을 1주일 앞두고 작성됐다.
해당 보고서는 러시아가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국가들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해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협상 위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럽 국가들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평화 유지군 파견 계획을 거부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브랸스크와 벨고로드 등 러시아와 인접한 지역에 완충지대를 만들고, 2014년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병합한 크림반도 인근 우크라이나 남부에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등 추가적인 분할을 요구하라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등 러시아 점령지에 대한 미국의 개발 참여를 제안함으로써 러시아가 협상 위치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자국 관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희토류 개발을 위해 미국 기업을 초청할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보고서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이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체결한 ‘광물 협정’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WP는 분석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유럽연합(EU)과 맞닿은 벨라루스에 오레시니크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대가로 미국은 유럽에 새로운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할 것도 권고했다. 또한 미국에 ‘비우호적(unfriendly)’인 국가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고 그 대가로 미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다만 러시아 동맹국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은 “실현하기 어려울 것(difficult to realize)”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양국 대사관의 외교 인력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고 알렉산드르 다르치예프를 주미 러시아 대사로 임명하는 등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거부와 친러시아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는 선거 실시와 같은 잠재적인 정치적 양보가 충분히 광범위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보고서는 “현실적으로 현 우크라이나 정권은 국내에서 바뀔 수 없고, 완전한 해체가 필요하다(Its complete dismantling is needed)”라고 적었다.
이 문서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 것 역시 ‘심각한 서방의 영향(serious Western influence)’ 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필요한(absolutely unnecessary)’ 것이라고 일축하며, 평화 협정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를 계속 무장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absolutely unnecessary)”고 밝혔다.
부분적인 대러 제제 해제안으로 러시아를 평화 협정으로 유인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대해서도 “러시아에 어떤 이익이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요소의 중요성이 분명히 과장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고위급 외교관들과 가까운 한 학자는 “이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러시아의 광범위한 합의를 반영한다”면서 “크렘린궁 지도부가 준비 중인 내용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WP에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크렘린궁이) 그러한 권고를 알지 못했다”며 “(해당 내용은) 극히 모순적이고, 우리는 더 신중하게 고려된 옵션들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측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우크라이나에서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비서실장, 안드리 시비하 외무장관, 루스템 우메로우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9시간에 걸쳐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와 정보 공유를 재개했다.
양국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안한 즉각적인 30일간의 임시 휴전을 수락할 준비가 됐으며, 이는 당사자들의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의 수락과 이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