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읽기] 선관위, 사과만 하면 뭐하나...끝없는 부패 비리 의혹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5.03.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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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근무연 등으로 얽혀 채용비리 지위고하 막론 '서로 봐주기' 의혹
검찰 조사 시작되고 직원들이 죄 뒤집어쓸 상황되자 선배 부정행위 줄줄이 증언
채용비리에 거듭 사과했지만 특혜채용 10명 여전히 정상근무...시정 가능할까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비리와 부패 의혹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감사원과 언론을 통해 드러난 선관위의 비리, 부패 사례를 보면 과연 그들이 한국의 공직기관이 맞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 정도다.

선관위 비리 가운데 가장 심각한 사례는 바로 채용 비리다.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함께 근무한 인연 등 조금이라도 '연줄'이 얽혀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고위직 자녀나 친인척들을 '사적'으로 채용해준 것이다. 

또한 선관위 고위직이 자신의 자녀나 친인척들을 '부정 채용'하도록 요구했을 때 하위직들은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하위직도 곧 직급이 높아지면 그런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공동 비리'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선관위 공무원들은 외부 감시가 시작되면 파일 조작, 문서 파쇄 등으로 조직적으로 대응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 “너도 공범”이라고 말하면서 한배를 탔다는 의식을 키워간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선관위 직원은 부정 채용 수법을 사실상 ‘매뉴얼’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박찬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고향인 광주에서 선관위 공무원 경력을 시작해 광주선관위 관리과장을 거쳐 중앙선관위에서 장관급인 사무총장에 올랐다. 박 전 총장이 사무차장이었던 2022년 1월 전남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공고했고, 광주 남구청 공무원이었던 박 전 총장 딸이 지원했다. 전남선관위는 면접 위원들에게 점수란을 비워둔 점수표를 내게 했고, 여기에 박 전 총장 딸을 비롯한 ‘내정자’들이 합격하도록 점수를 써 넣었다.

전남선관위 직원들은 이 부정 채용 수법을 “★서류전형+면접 팁.txt”라는 파일에 적어 공유하다가,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문제가 될 부분을 다른 내용으로 덮어씌웠다. 그러고는 서로 “너도 이것(파일)을 수정했으니 공범이다”라고 말했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도 고향인 인천 강화군청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강화군선관위로 소속을 옮겼고, 이후 상급 기관인 인천선관위 관리과장을 거쳤다. 김 전 총장이 사무차장이었던 2019년 10월 중앙선관위는 인천선관위에 인력 소요가 없는데도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게 했고, 김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강화군청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 전 총장 아들이 채용에 지원했다. 인천선관위는 면접 위원 전원을 김 전 총장과 함께 강화군·인천선관위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로 구성해 김 전 총장 아들을 강화군선관위에 채용했고, ‘5년간 다른 선관위로 이동 금지’라는 애초 채용 조건을 1년도 안 돼 풀어줘 인천선관위로 다시 옮길 수 있게 했다.

송봉섭 전 사무차장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충청 지역 선관위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선관위 고위직으로 진출했고, 2018년 충북선관위가 경력 채용을 진행하자 충북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충남 보령시청에서 근무하는 딸을 “착하고 성실하다”며 ‘추천’했다. 충북선관위는 아예 송 전 차장 딸 1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非)다수인 경쟁 채용’을 진행했다.

서울선관위는 신모 전 서울선관위 상임위원의 아들인 안성시 공무원이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서울선관위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경남선관위는 당시 총무과장이었던 김모 부이사관(3급)의 딸인 의령군 공무원을 경남선관위 공무원으로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경기선관위도 2022년 산하 과천시선관위에서 사무과장을 지내고 갓 정년퇴직한 A씨의 사위가 경기선관위 채용에 지원한 것을 알고, A씨 사위를 자격이 안 되는데도 뽑아줬다. 중앙선관위 과장 B씨의 조카는 전남선관위에 채용됐는데, B씨는 과거 광주 동구 선관위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주·전남 지역 선관위 직원들과 인연이 있었다. 충북선관위, 경북선관위에서도 청주시선관위 국장 자녀, 전 경북선관위 서기관(4급) 자녀를 뽑기 위해 부정이 동원됐다.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지역 선관위의 채용 비리가 만연하자 조직 내부에서 중앙선관위로 고발 투서가 들어갔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은 상관이나 지역 선관위의 지인들이 연루된 이 사건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덮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감사원이 2023년 6월 선관위 인사 비리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고, 자녀 채용 대부분에서 비리 정황을 포착했다. 그러나 사무총장·차장 등 선관위 최고위직들은 “문의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채용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 등의 말을 하면서 혐의를 부인했고 직원들도 청탁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관위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저항하면서 의혹 자체가 덮일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감사원이 지난해 4월 중간 발표를 통해 비리 정황을 공개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기자 선관위의 대응 태도도 달라졌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부정 채용에 가담했던 지역 선관위 직원들이 감사원에 고위직들의 부정 청탁과 지시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직원들이 자기가 모든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 되자 선배의 부정행위를 줄줄이 증언했다”고 했다.

선관위는 채용 비리 문제를 둘러싸고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일부 고위직 자녀 경력 채용의 문제와 복무기강 해이 등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국회에서 통제 방안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될 경우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보도자료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관위가 행정부 소속인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의한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등의 외부적 통제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선관위가 사실상 국회가 마련하는 통제 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국회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런데 선관위가 4일 채용 비리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특혜 채용' 혜택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당사자 10명은 여전히 정상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위법·부당 채용 관련자 10명이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2023년 5월 고위직 간부 자녀 채용 비리가 불거지자 경력직 채용 실태에 대한 자체 감사를 진행했고, 감사원 감사도 받았다.

선관위는 자체 감사에서 특혜 채용 의혹이 확인된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전 제주 상임위원 등 고위직 간부 자녀 5명에 대해서만 2023년 7월 업무 배제 조치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총선을 앞두고 이들을 업무에 복귀시켰다.

선관위 관계자는 "감사원이 채용 비리와 관련해 징계를 요구한 직원들은 채용 과정에 관여한 간부 또는 인사 담당자들이고, 채용된 당사자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구하지 않았다"며 "징계 요구가 없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채용된 당사자들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감사원에서 징계와 주의 처분을 요구한 27명에 대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가 아무리 제도적 정비를 통해 채용비리 근절을 하려고 해도 수십년동안 조직에 적폐된 도덕적 해이와 근무기강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부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헌법기관임을 자임하며 그 권리와 '특혜'만 누리기에 급급했던 선관위 조직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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