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읽기] ‘커피 120원’의 역습...원가 말다툼 속에 묻힌 진짜 위기
  • 성기노 기자
  • 승인 2025.05.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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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불법 계곡 영업 '이전' 설득하면서 커피 원가 '부분' 인용하다 논란 시작
임차료, 인건비 등 고려하면 총 원가는 4000원대 육박...원두 원가만은 120원대 맞아
윤석열 집권 후 자영업 몰락 가속화...서민, 약자 중심의 '동반 성장' 정책 전환점 돼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0일 경기 의정부 로데오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0일 경기 의정부 로데오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잔잔하던 대선 판에 난데없이 커피 원가 파동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커피 원가 120원’ 발언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6일 군산 유세 현장에서 2019년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불법 영업’을 없애기 위해 상인들을 설득했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닭은 5만원 받으면서 땀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동아 고아서 팔아봐야 3만 원밖에 안 남지 않느냐”며 “커피는 한 잔 팔면 8000원~1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커피) 원가가 120원이더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 후보가 말한 ‘원가’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업계에서 통칭하는 커피의 ‘원가’는 매장 임차료, 재료비, 인건비, 매장 운영비 등을 모두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커피 원두’의 원가였다.

최근 기준으로 임차료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일반 커피숍의 커피 가격의 총 원가는 3000원 이상이다. 하지만 이 후보는 연설을 할 때 ‘커피 가격의 원가에는 임차료 인건비 매장운영비 등이 포함돼 있고 이것을 모두 계산하면 3000~4000원 이상이다’라는 ‘상세한 설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두 원가만 예를 들면서 설명을 했던 것이다.

사실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120원이 ‘커피 원두’ 가격이라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커피 한 잔에 통상적으로 15g의 원두가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잔당 커피 원두 가격은 174원 정도라는 통계도 있다. 이 후보가 6년 전인 2019년의 원두 원가가 120원이라고 한 것은 맥락을 고려해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후보로서는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는 16일 TV토론에서 “하나의 예인데 말에는 맥락이라는 게 있다”고 말하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제가 말한 건 커피 원재료값은 2019년 봄경 정도에는 120원 하는 게 맞다. 거기에는 인건비, 시설비는 감안되지 않았다"면서 “닭죽 파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영업을 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의) 말을 떼내서 왜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어떤 분이 커피를 8천원에서 1만원 받는데 원가가 120원이더라 했다. 커피 관련 소상공인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들린다"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어떤 분이 커피를 8천원에서 1만원 받는데 원가가 120원이더라 했다. 커피 관련 소상공인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들린다"라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후보는 계곡 불법 영업을 하던 닭집 자영업자들에게 원가 대비 수익성이 더 높은 쪽으로 ‘업종 변경’을 해보라는 취지로 설득을 하면서 원가 대비 이익률이 높은 사례를 예로 들었던 것이다.

연설 특성상 상징적이고 축약적인 표현을 할 수밖에 없고 이 후보는 커피의 총 원가 가운데 원두의 원가만 언급하며 그것을 ‘커피 원가’의 하나로 예를 든 것일 뿐 전체적인 의미에 커피 가격 총 가격의 원가가 ‘120원’이라는 억지 주장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 후보의 ‘부분적 원가 인용’은 결과적으로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해진 시간에 빨리 마쳐야 하는 유세 연설을 감안하더라도 오해를 살 만한 ‘부분 인용’으로 ‘설화’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전국 커피점 업주 연대는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 커피점 사장들의 땀과 노력을 가볍게 보는 처사”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또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허위사실 공표 혐의, 무고죄 등으로 서로 고발 ‘난투극’에 나서고 있다.

‘커피(원두) 원가’에 관한 발언 하나가 대선 선거운동을 관통하는 소송전이 돼 버린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가 50%대의 안정적 지지율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유세 과정에서 ‘말조심’을 가장 중요한 경계 요소로 꼽으며 돌다리 두드리기 작전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커피 원가 발언으로 자영업자들과의 ‘전면전’ 모양새로 확전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또한 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때부터 자영업자 살리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고 국민의힘이 깎으려 했던 지역화폐 예산도 복원하거나 늘리는 등 ‘친 자영업’ 행보를 보여왔는데 오해를 살 만한 ‘단어’ 하나로 억울하게 정치 공세를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윤호중 총괄본부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제5차 총괄본부장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윤호중 총괄본부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제5차 총괄본부장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래서 적극 해명을 하며 정면돌파를 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조현삼 민주당 선대위 부대변인은 18일 ‘TV조선 시사쇼 정치다’에 출연해 이재명 후보 발언을 두고 “커피 한잔에 대한 원두 가격만 말한 것”이라며 “120원 정도라고 한다면 합리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현재 민주당은 이 후보의 120원 발언을 문제 삼거나 지적하는 것을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적극 대응하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과 이 후보가 더 이상 확전을 하며 강경대응하기보다 이번 기회에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공감하고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수습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자영업은 전 세계 사업 가운데 가장 열악한 분야에 속한다. 한국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24.6%로, 미국(6.3%), 독일(9.6%), 영국(15.3%), 일본(10.0%)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이 수익률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먹고 살 것’이 없기 때문에 너도나도 자영업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국가 경제정책이 ‘가진 자’ 중심으로만 추진돼 온 후유증의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 경제 정책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임금과 근로환경은 좋지 않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직장보다는 자영업을 선택하게 된다.

정부의 자영업 지원 대책이 ‘돈만 주면 끝’이라는 무책임한 정책도 문제다. 정부는 연간 약 4조 원 이상의 창업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만 실질적인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창업 후 3년 내 생존율은 38%에 불과한 반면, 미국(50%), 독일(55%)보다 낮은 수준이다. 정부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자영업 인큐베이팅’ 대책도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3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3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령층의 자영업 ‘진입’도 문제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고령층의 비중이 지난해 기준 37.1%로 커졌다. 고령 자영업자 증가가 우려되는 이유는 이들이 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에 진입해 과도한 경쟁에 노출된 데다가 준비 부족과 낮은 생산성 등으로 수익성이 낮고 반대로 부채 비율은 높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서민과 약자를 위한 ‘동반 성장’ 정책으로 바꾸는 전환점에 서 있다. 노령층의 자영업 진입 증가는 인구소멸, 노인 대책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이재명 후보의 원두 원가 파문이 ‘자영업자와 민주당 간의 감정싸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경제정책이 대기업 중심에서 자영업 육성과 보호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지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금 자영업자들이 상당히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그런데 2022년 윤석열 정권이 집권한 뒤 자영업이 더 힘들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영업 쇠퇴에 대한 대책보다 대기업 위주의 감세 정책 등으로만 일관하다 실물 경제를 폭망시킨 장본인이다”라며 “윤 전 대통령은 자영업자들의 경제생활이 너무도 피폐해졌음에도 사실상 방치하다가 지난해 비상계엄으로 국가경제를 완전히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런데 그 책임을 이재명 후보의 ‘설화’ 하나로 민주당이 엉뚱하게 뒤집어쓰는 꼴이 돼 버렸다. 민주당이 이 후보 발언은 발언대로 사과하고 수습하되 몰락하는 자영업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대책을 신속하게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22년 3분기부터 2024년 4분기까지 내수상태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11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당연히, 자영업 폐업률은 최고치를 찍을 수 밖에 없었다.

2024년 자영업 폐업자수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IMF 때에도 경험하지 못한 역대 최장의 불황이고 위기다.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그 답을 먼저 내놓고 커피 원가가 120원이든 4000원이든 싸워도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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