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2연패 뒤 최병렬 체제 들어섰지만 탄핵으로 난국 돌파하려다 몰락
총선까지 참패한 뒤 박근혜 비대위 체제 들어서며 쇄신...국힘은 여전히 추락중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지금 국민의힘은 더 이상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만큼 지리멸렬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대선 참패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변’에 대해 국민의힘은 손톱만한 자기반성이나 참회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채 ‘이러다 적당히 일어서겠지’ 하는 ‘집단 도피성 망상’에 빠져 있다.
지난 11일에는 국민의힘에서 어이없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당 쇄신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11일 오후 개최하려던 의원총회가 40분 전 취소된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하면 당내 갈등과 분열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취소했다고 한다.
대선 패배 뒤 의총장에서 나오는 말들이 뼈아플 수 있겠지만 패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재도약을 위한 가장 기본적 과정인데 국민의힘은 ‘험한 꼴 보여주지 말자’는 권 원내대표의 일방적 한마디에 반성과 참회의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초선에 비주류인 김용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힘이 전혀 없는 건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사전 협의도 없이 의원총회가 취소됐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분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권 원내대표가 제 맘대로 의총을 취소하는 것도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이지만 ‘당 대표’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는 행태는 비록 사퇴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가 이 당의 (윤석열 다음) 2인자다’라는 ‘자뻑’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직도 권성동 원내대표를 따르며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이나 다음 총선 공천을 위해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는 영남권 의원들이다. 이들은 대선 패배 뒤 국민의힘 쇄신안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들의 기득권만 유지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국민의힘의 대선 패배 뒤 이런 무책임하고 안일한 행보는 2002년 대선의 ‘이회창 2연패’ 뒤 한나라당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가 이회창이라는 절대권력의 ‘절명’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윤석열’이라는 또 다른 권력의 붕괴 후 당이 일종의 ‘진공상태’에 빠졌다는 점에서 양쪽은 너무도 흡사한 정치역정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보수 대선후보 2연패는 단순히 선거의 패배를 넘어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득권’과 지역주의의 해체를 들고나와 민심을 사로잡았고 한나라당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기득권 보수’라는 낙인이 찍힌 채 거의 궤멸 수준으로 몰락했다.
당시 대선 직후 이회창은 형식적으로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정치 전면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당내에는 ‘친이회창계’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현재의 국민의힘도 윤석열 탄핵 이후 대선에서도 패배했지만 여전히 권성동같은 ‘친윤계’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친이회창계의 패배 뒤 수습 논리도 지금과 똑같다. 그들은 대선 2연패의 책임을 이회창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당내 특정 세력이나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며 자기반성보다 내부 권력 다툼에 몰두했다.
이번에 국민의힘도 당시 친이회창계가 보여준 행태와 똑같은 대응을 하고 있다. 권성동이 “의원총회를 하면 당내 갈등과 분열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의총을 제멋대로 취소한 것도 대선 패배가 그들 탓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환골탈태의 골든타임을 스스로 흘려보낸 한나라당과 현재의 국민의힘도 닮아 있다. 2003년 초 당 지도부는 공석이 됐고 과도기적 운영체제로 여러 중진급 인사들이 당을 공동 관리하는 형태로 시간을 허비했다.
이 시기 한나라당은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당 차원의 노선 전환, 즉 보수 이미지 탈색이나 젊은 세대 흡수 전략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보수의 자폐적 수성’ 단계에 머물렀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논의되는 쇄신도 이와 똑같다.

지난 9일 열린 국민의힘 의총은 과거 한나라당의 패배 직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9일 의총의 초점이 대선 패배의 근본적 원인 규명이나 반성, 당 쇄신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거취와 전당대회 시기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배가 난파돼 침몰 직전에 있는데 현재의 선장이 계속 키를 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장을 뽑아서 바다에 가라앉은 배의 마지막 ‘수장’이 될 것인지를 두고 그들끼리 ‘정치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기이하다 못해 참혹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전당대회를 언제, 누구의 주도로 개최해야 자기 계파가 당권을 잡거나 내년 지방선거에 더 유리한지 그것에만 온통 정신이 집중됐기 때문에 김용태의 임기 연장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이나 현재의 국민의힘은 이렇게 역사 앞에 죄인 수준의 대역죄를 저질렀으면서도 차일피일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에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물을 앉혀 일단 다시 모양새를 갖추는 '봉합의 정치'에 특화된 정치세력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후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국민들이 하도 비판을 하자 지도체제 안정화를 구실로 2003년 6월 전당대회를 통해 최병렬을 당 대표에 앉혔다. 조선일보 출신에다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며 ‘일머리’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이회창의 그림자 아래에서 ‘건물관리인’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병렬 체제가 들어섰지만 한나라당의 쇄신은 뒷전이었고 당은 여전히 ‘친이회창 vs 비이회창’ 구도로 갈려 싸우고 있었다. '이회창은 죽어도 나는 죽을 수 없다'는 친이회창계 의원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당은 보신주의와 분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최병렬 대표가 그 중간에서 나름대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결국 어느 한쪽도 확실히 정리하지 못하자, 그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최병렬 대표는 ‘친창’과 ‘반창’으로 갈라진 당의 내분을 외부 타격을 통해 해결해보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 본인의 무능한 리더십을 노무현 탄핵으로 어떻게 돌파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최병렬 대표는 2004년 3월 노무현을 탄핵하기에 이르고 그 직후 열린 4월 총선에서 대패함으로써 스스로의 임기를 단축시키고 말았다. 그 후 최병렬의 정치생명은 끝이 났다.
최병렬 대표가 등극하기 전까지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에 따른 반성과 쇄신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의 교훈을 흡수하지 못한 채 ‘쇄신’을 말하면서도 쇄신의 방향과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내부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한, 무기력한 진공 상태에 놓여 있었다.
오늘날 국민의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선 참패 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사건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윤석열을 밀어올려 대통령에 앉힌 친윤계 중에서 처절한 반성과 함께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로지 작은 금배지 하나를 더 갖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은 쇄신의 타이밍을 놓치고 노무현 탄핵이라는 엉뚱한 자충수를 두며 자멸했다. 국민의힘 또한 진정한 자기 성찰 없이 그 돌파구를 외부를 통해 뚫으려 할 경우 그 종말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공식 추대하며 비로소 당 전면 쇄신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박 비대위원장이 한나라당 현판을 들고 여의도 천막당사로 이동하는 장면은 2년 후인 2006년 지방선거 압승 드라마의 첫 번째 극본이 되었다.
지금 국민의힘을 구원해줄 ‘메시아’는 과연 누구일까. 그 전에 현재의 국민의힘은 대선보다 뼈아프고 심대한 패배를 더 겪어야 비로소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금 당이 바닥을 찍었다고 믿고 싶겠지만 현재의 지리멸렬 보신 행태를 보아서는 지하 10층 정도까지는 가야 비로소 ‘환생수’가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