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로봇학회 창립 30주년 참관기
  • 월간 FA저널
  • 승인 2012.10.09 1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T리서치 김경환 대표
 

로봇분야의 에디슨을 기다리며

일본은 자타공인 로봇 강국으로서 제조업용 로봇 10대 중에서 2대 가량은 일본에서 가동 중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72년에 업계 중심의 일본로봇공업회(JARA), 1983년에 학계 중심의 일본로봇학회(RSJ)가 설립돼 일본 로봇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 9월 17일부터 20일에는 삿포로 컨벤션센터에서 RSJ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강연회(RSJ2012)가 개최돼 필자 역시 큰 기대를 안고 참석했다. 일본 로봇기술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상용화에 따른 고민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출장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03년에야 비로소 한국로봇학회(KROS)가 창립돼 일본보다 학회 창립이 20년이나 늦었으며, 회원 수도 일본 RSJ 보다 10배가량 적다.

원자력 로봇의 시사점
RSJ2012는 ‘원자력 로봇 기술과 가능성’ 세션으로 막을 열었다. 지난해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현의 원전 참사는 일본의 로보티스트들에게도 깊은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됐다. 일본은 1980년대에 이미 극한 환경에서 원격조종할 수 있는 보행 로봇을 국가적으로 개발했다고 선전했으나, 정작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능 오염 지역에 투입돼 원전 내부 영상을 보내온 로봇은 미국 iRobot사의 군용로봇 팩봇(Packbot)이었다.

일본의 치바 공업대학에서 개발한 재난구조 로봇 Quince가 개량을 거친 후 원전에 투입된 것은 사고로부터 4개월이 흐른 뒤였고 투입되자마자 기능이 고장나 미션 수행을 할 수 없었다. 이번 RSJ2012에서는 원전 사고 후 신속하게 자국 로봇을 투입하지 못한 원인 분석과 반성이 이어졌다. 로봇의 요소기술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실용화를 목표로 하지 않고 시제작만 해서는 대형 재난 사고에는 무력하다는 것이 교훈이었다. 한편, 다양한 재난구조 로봇이 투입돼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모니터링과 원격조종으로 오염 제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원전 사고가 이 정도라도 수습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 재난은 예상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해 상황을 가정하고 로봇을 개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가 있었다. 원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여전하고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로는 마찬가지인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국산 로봇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고 재난구조 로봇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한국에서도 국가 프로젝트로 개발은 됐지만 과연 사고 현장에서 유용한지는 매우 의문이다).

사실 원자력 로봇은 재난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된 특수 용도의 로봇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세대 로봇의 개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잘 정비된 공장 환경에서 사용하는 제조업용 로봇은 첨단 기술 개발보다는 응용과 시장의 확대가 더욱 시급한 상황이다. 한편, 현재의 로봇기술로는 로봇 청소기의 기능을 능가하는 지능적인 가사 도우미 로봇의 상용화란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상용화 측면에서 제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의 중간적인 성격을 띤 원자력 로봇이나 의료 로봇 등의 ‘전문 서비스 로봇’은 가까운 시일 내에 상용화될 수 있을까? 원자력 로봇은 방사능 오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로봇 투입의 정당성이 분명하고,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능/성능 사양의 구현이 우선한다. 계단이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로봇의 이동 능력, 원전 내 다양한 형태의 밸브 조작 능력, 외부로 영상 전송과 원격조종을 하기 위한 무선통신의 신뢰성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종류의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재해 현장은 물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무인시공이나 극한 지역의 무인탐사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림 1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시 투입된 일본제 로봇 Quince인데,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1층과 5층 간을 넘나드는 성능을 발휘하다가 통신 두절로 인해 3층에서 동작 중지, 미션 중지 상태에 있다. 연구 현장에서 언뜻 완벽하게 보이는 로봇이라도 적용 현장에서는 치명적인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고령화 사회의 대안
원자력 로봇과 더불어 이번 RSJ2012에서 큰 관심을 부른 세션은 고령자를 위한 로봇기술이었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병 타입 서비스 로봇의 대표적인 사례로 근력지원 로봇이다. 지난 2008년부터 리스/렌탈 서비스하고 있는 HAL 로봇이 대표적이다.

HAL은 처음에 인간의 자연 근력을 보조해주는 착용형 로봇으로서 개발됐으나, 적당한 애플리케이션을 찾지 못해서 몇 년 전부터 하체 근력지원과 재활을 용도로 ‘HAL 복지용’을 제품화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하체에 로봇 기구를 착용한 후 움직이면 내장된 생체 전위 센서(근전도 센서)와 발바닥에 있는 반력 센서가 착용자의 운동 의도를 알아내고는 내장된 모터를 움직여 인공적인 근력을 발생시킨다. 보행/기립 동작시에 경험적으로 근력 지원 효과가 입증되고 있어서 일본 국내외 시설에서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경험적인 재활 효과일 뿐 재활 프로그램으로 의학적 성능까지 입증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 재활 시장의 반응은 더딘 편이라고 한다. 더욱이 착용하는 로봇 기구는 모두 회전관절로 구성돼 있는데, 원래 인간의 관절은 회전 운동뿐 아니라, 회전 중심이 움직이는 병진 운동도 겸하기 때문에 현재의 회전 기구만으로는 편한 착용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러나 상업자본과 결합해 병원과 노양시설에서 임상 중이어서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이 밖에도 그림 2(b)와 같이, 우울증 치유와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바다표범 형태의 로봇인 파로(PARO)가 있다. 표면에 촉각 센서가 있어서 쓰다듬는 동작에 반응한다거나 제한적이지만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서 정신적/생리적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격은 300만원대로 아직 비싼 편이지만, 지난번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에 보급하는 등 시범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RSJ2012에는 이러한 간병 타입 서비스 로봇의 적용기술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휴대전화가 적당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정착되고 나서야 급성장했듯이, 로봇기술의 급성장과 시장 확대 또한 ‘적당한’ 플랫폼의 정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적당한 플랫폼은 학계의 요소 기술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시험대(테스트 베드)이기도 하다.

RSJ2012 세션의 트랜드 RSJ2012에서는 133세션에 걸쳐 총 853편의 논문 발표가 이뤄졌다. 세션 이름만 보더라도 일본의 로봇 연구 경향을 알 수 있는데, 세션을 필자 나름대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 응용 분야 : 산업용 로봇, 작업용 로봇, 원자력 로봇, 재난구조 로봇, 인간 지원/근력 지원 로봇, 의료재활 로봇, 내시경 수술 로봇, 바이오 조작/미세 작업 로봇, 우주 로봇, 비행 로봇, 옥외작업/건축 로봇, 교육용 로봇, 안심 로보틱스, 카 로보틱스 등.

• 이동 로봇 분야 : 로봇 제어, 경로/행동 계획, 이동 지능, 차륜 도립 진자형 로봇, 멀티 로봇 시스템, 공간계측과 지도 관리 등.

• 인간형 로봇 분야 : 휴머노이드, 보행 로봇, 인공근육 액추에이터, 생체모방 로봇, 생체 신호 인터페이스, 운동 계측 등.

• 휴먼 인터페이스 & 소프트웨어 분야 : 인간-로봇 상호작용, 협조제어, 인간과 로봇의 공생학, 공간 지능, 로봇 소프트웨어, 디지털 휴먼, 데이터 공학 로보틱스, 행동 학습을 위한 확률 로보틱스, 클라우드 시대의 인터넷 로봇, 햅틱 장치, 원격조작용 인터페이스 등.

• 요소 기술 : 액추에이터, 로봇 메커니즘, 로봇 팔, 로봇 핸드, 유연물의 조작기술, 로봇 청각, 로봇 촉각, 학습제어, 로봇비전, 인지발달 로보틱스, 마이크로-나노 로봇 등.

이동 로봇 분야의 권위자인 유타 신이치 교수는 ‘로봇학, 100년의 계획’이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로봇기술은 미래 사회의 변혁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논문만을 양산하는 연구 대신 사회가 바라는 사양을 반영한 로봇 개발에 임해주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몇 년 전부터 일본 츠쿠바 시에서 개최하고 있는 실제 야외 환경에서 이동 로봇의 자율 주행을 경합하는 ‘츠쿠바 챌린지’ 행사를 소개했다.


발명왕 에디슨의 교훈
학회에 가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학자가 아무리 실용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늘 여러 제약 조건 하에서만 유효한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가의 관점에서는 탁상공론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공허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학자의 최종 목표는 논문의 양과 질인데 비해, 회사의 최종 미션은 사랑 받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학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삿포로 시내의 서점에서 1930년에 자동차왕 포드가 발명왕 에디슨을 추억하며 쓴 책의 일본어판을 발견했다(내가 아는 에디슨, ‘Edison, as I know him’ Henry Ford & Samuel Crowther 지음).

자동차왕 포드(1863~1947년)가 불세출의 발명왕 에디슨(1847~1931년)의 회사에 주임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기술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대목이 1~2군데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간추려본다.

• 정규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3개월이 전부인 에디슨은 당시로서 최첨단 기술인 전기 이론의 본질을 심오하게 이해해 20대에 백열전구 발명을 시작으로 발전기, 축음기, 배터리 등 수많은 기술 관련의 업적을 남겼다. 로봇 분야에서도 이렇게 광범위하고 심오하게 로봇 이론을 이해하고 제대로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인가?

• 나이 50대의 에디슨은 말단 주임연구원이었던 포드가 가솔린 자동차의 개발 내용을 이야기하자 경청하며 격려했다. 이미 가솔린 자동차 1호기를 개발했지만 기술적 확신이 부족했던 젊은 포드는 에디슨의 격려에 힘입어 자동차 2호기의 개발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에디슨은 1890년 당시 한참 전기자동차의 발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경쟁 기술인 가솔린 자동차의 장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던 것이다. 자신의 지식 영역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다른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처음 제품화했을 때 1개에 1.5달러가 들었지만 40센트에 팔았는데, 2년째에는 원가절감을 해 70센트에 만들고 역시 40센트에 팔았다. 그러나 판매량이 늘었기 때문에 손실액은 첫해보다 더욱 늘었다. 3년째에는 기술개량을 통해 50센트에 만들 수 있었으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서 여전히 손실을 보았다. 4년째에는 37센트에 만들 수 있어서 40센트에 팔고도 1년 사이에 몇 년간의 손실액을 매울 수가 있었다. 마침내 5년째에 22센트까지 코스트 다운을 해 역시 40센트에 판매한 결과,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초창기에 이미 대량생산과 코스트다운에 의한 이윤 추구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기술과 경제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로봇 기업가가 몇이나 될까?

• 백열전구는 단지 재미있는 발명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도 상용화에 크게 성공한 것은 에디슨이 발전 시설, 송전 시설, 배급 체계가 전무한 19세기에 불굴의 의지와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해 백열전구에 필요한 일련의 체계를 모두 발명하고 개량하고 보급했기 때문이다. 로봇기술의 개발뿐 아니라 제대로 보급될 수 있도록 인프라의 정비와 확충을 이뤄내는 산학연관 통합형 인간은 이 시대에 가능한 것일까?

• 에디슨은 21세(1868년)에 전기투표 기록기로 생애 최초의 특허를 획득한 이래, 84세(1931년)로 타계할 때까지 1,000건이 넘는 특허를 획득하고 그 중 많은 수를 상용화한 역사상 최고의 과학기술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비즈니스 프로모터였다. 상품 기획과 연구개발은 물론,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 관리, 재정 마련에 이르는 사업화의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기술 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로봇 분야에서 에디슨과 같은 종합적인 능력의 인물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 에디슨에 대한 설명이 장황해졌지만, 이러한 점 외에도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사명감을 가지고 인류에 과학적 성과를 보급하고자 하는 숭고한 파이오니아 정신이 책을 읽는 내내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꼭 한국어로도 번역돼 로보티스트는 물론 과학기술자들이 정독했으면 좋겠다. 로봇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에는 기술도 인프라도 부족한 21세기 초반를 살아가며, 이런 척박한 환경을 불굴의 의지와 혜안으로 개척해 나갈 에디슨 같은 위인을 상상하며 필자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