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최근 한국의 지연된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미래 핵심산업인 반도체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부문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채원(Michelle Chaewon Kim) 한국담당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실태는 해외 선진국 및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심각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공급망의 ESG(△환경 △사회적 책무 △기업 지배구조)를 강조하는 글로벌 트렌드와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향후 늘어나는 반도체 클러스터 및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한국이 지난해 COP28에서 국제사회와 약속한 ‘신재생에너지 3배’ 공약을 지킬 경우, 2030년에 2023 년 대비 11만3,434GWh에 달하는 발전 순 증가분을 기록한다”며, “이는 산업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등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안해 제시한 수요 증가분 5만3,168GWh를 충분히 상회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김 연구원은 “글로벌 반도체 바이어들은 공급망 내 기업들의 탄소집약도를 매우 중시하고 있어 탄소배출이 낮은 반도체 생산업체를 점점 더 선호할 것”이라며,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 산업인 만큼,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통한 탄소절감은 향후 전후방 산업의 공급 및 구매 업체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국가 경제 및 산업 경쟁력을 사수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5년 이상 뒤처진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18~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석탄, 20세기 1, 2차 세계대전 및 중동전쟁 시기의 오일에 이은 21세기 새로운 ‘에너지 헤게모니 전쟁터’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경쟁력을 급속 강화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과 ‘넷제로 산업 특별법(NZIA)’ 등을 잇따라 내놓는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촉진하고 이를 국가 및 산업 경쟁력과 연계하는 정책을 도입해 ‘포모’에 대응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국제회계기준 기후 관련 공시제도(IFRS S2) △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RE100) △녹색 금융 확산 등 탄소 관련 규제 및 운동이 강화됨에 따라 한국의 고탄소 에너지 집약 기업과 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점차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전체 전력믹스의 불과 9.64%에 그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30.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49% 및 심지어 아시아 평균 26.73%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지난 5월 산업부에서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전력믹스의 21.6%, 2038년까지 32.9%로 늘린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는 한국이 ‘신재생에너지 30%’를 이미 달성한 전 세계 국가들에 비해 15년이나 뒤쳐졌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비록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점차 줄여나간다는 기존의 방향을 유지하고 있지만, 11차 전기본은 여전히 화석연료인 LNG와 소형모듈원자로(SMR) 발전을 통해 늘어나는 반도체 및 인공지능 부문의 전력 수요를 충당한다는 계획을 명시했다.
10차 전기본에서 LNG 발전 비중을 2036년까지 전력믹스의 9.3%로 줄인다고 한 데 반해,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11.1%로 줄인다고 발표해 기존의 LNG 발전 감축 기조에서도 한발짝 물러섰다.
보고서는 한국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LNG 발전을 지양하고 신재생 발전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 최근 SK E&S, 한화에너지, 포스코인터내셔널, GS E&R, 한양 등은 자가소비를 위한 LNG 발전 신규 허가를 신청했다. 이는 총 4,700MW에 달하는 대규모 전력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AI 데이터 센터 및 각종 산업 공단의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는 2027년 준공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규 전력을 자회사인 SK E&S의 LNG 발전을 통해 공급받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 연구원은 “화석연료 기반 전력을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하는 것은 SK하이닉스의 RE100 목표 달성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위험한 전략”이라며, “특히 RE100 가입 회원사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팹리스(Fabless) 업체들이 미국의 탄소관련 규제 강화로 신재생 전력을 사용하는 팹(Fab) 업체를 선호할 경우 문제는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신재생 전력을 사용하지 않아 탄소집약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며, 향후 LNG에 부과될 탄소세는 LNG 기반 전력 생산 및 구매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LNG 발전을 통한 전력을 사용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2, 3) 등 향후 도입될 지속가능한 회계기준(IFRS S2)의 영향으로 더 큰 국제사회의 압박에 봉착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화석연료 기반 전력을 사용하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큰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공급망 및 가치사슬 전반의 탄소배출을 공시해야 하는 Scope 3가 확대될 경우, 다운스트림 반도체 구매업체는 물론 업스트림 원료 공급업체들까지 고탄소배출 한국 반도체 기업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반도체 클러스터 및 AI 데이터 센터의 늘어나는 전력을 구실로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을 고수하고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COP28에서 선언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3배’ 공약을 신속히 이행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미국의 IRA나 유럽연합의 NZIA처럼 에너지 안보 및 산업 경쟁력 확보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는 정책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조속한 전환을 통해 지정학적 영향력과 국가 에너지 안보, 글로벌 산업 경쟁력, 금융 접근성을 지키는 한편, 공공의 이익을 증대해야 한다”며, “극심한 신재생에너지 결핍을 해소해 글로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포모’를 해소하는 해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