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로봇
  • 월간 FA저널
  • 승인 2011.07.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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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리서치 김경환 대표

생각하는 로봇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

로봇에 관한 원천적인 상상력은 생각하는 기계 또는 인조인간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2001년)에 나오는 어린아이 로봇이나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바탕으로한 아이 로봇(I. Robot, 2004년)에서도 비키(VIKI : Virtual Interactive Kinetic Intelligence)라는 극도로 진화된 로봇 제어 시스템이 도시의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 아이 로봇은 전편에 걸쳐 ‘컴퓨터가 계속 발전하다 보면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로봇기술이 인간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의 로봇기술 수준을 볼 때 이러한 질문은 영화 이상과 이하도 아닌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그러나 로봇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지능의 구현이야말로 로봇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원천기술이 될 것이고, 미래 사회는 ‘생각하는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로봇은 현재의 가전제품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예컨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혼자 사는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친근한 외모의 로봇이 “얼마나 피곤했어요. 어서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라고 말을 건넨다고 생각한다면? 단지 로봇이 기계전자 부품의 집합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즘 연애하듯 스마트폰을 감싸는 젊은이들을 보면 미래 사회에서 로봇과 인간의 교감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래의 로봇 자화상

일부 과학자들은 기계에 지능을 구현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지능적인 기계의 문제를 제시한 이후, 많은 철학자와 수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은 굼벵이가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 기계에게는 개념적 도구가 없기 때문에 지능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기계 지능의 가능성을 부인하기도 한다. 물리학에서는 고전역학, 전자기 이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 개념적인 도구가 존재하지만, 생명체의 지능법칙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최근 자동음성 안내나 웹상의 기계번역 등이 널리 이용되고 있지만, 컴퓨터가 외국어를 이해하며 번역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나 로봇도 한 언어를 문법(Syntax)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의미(Semantics)적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의 미래를 낙관하는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도 많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기계이기 때문에 기계도 생각할 수 있으며, 기계는 하드웨어로 이뤄진데 비해 인간은 웨트웨어(Wetware)로 이뤄져있을 뿐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로봇은 여전히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며 특히 형태인식(Pattern Recognition)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로봇 지능

1969년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이동 로봇 셰이키(SHAKEY)를 개발해 카메라 영상 분석을 통해 방안의 장애물을 피해가며 주행하는 모습은 로봇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지능만으로는 단순한 모양의 장애물을 피하는 것조차 몇 시간이 소요됐다. 인간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바닥, 의자, 책상 등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컴퓨터는 이 모든 것을 점(Pixel)의 집합으로 인식하기 시작해 직선, 곡선과 같은 기하학적인 특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연산을 통해 앞에 있는 물체가 책상임을 인식하지만 로봇이 책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뀌면 그 많은 연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봇이 간단하게 장애물을 피해가며 이동하거나 손으로 쓴 필기체를 인식하거나 자동차를 능수능란하게 운전하거나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컴퓨터와 카메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에도 이동 로봇의 자율 주행 성능은 장애물로 가득 찬 3차원 공간을 유유히 날아가는 파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997년에 IBM사의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분야의 세계 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이겼을 때, 수많은 경우의 수를 미리 계산해 대처하는 인공지능 가능성에 모두들 놀라면서도 아무런 지능이 없는 딥 블루에 실망했다. ‘저런! 체스가 그렇게 생각없이도 할 수 있는 놀이였단 말인가’라고 말이다.


로봇 지능의 두번째 장애는 상식(Com monsense)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랜 학습과정을 통해 수식으로 표시되지 않는 상식을 알고 있고 이를 판단에 이용하고 있다. 로봇은 사전에 프로그램된 내용만을 알고 있는데 비해 인간은 체험을 통해 상식의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지능을 수많은 상식으로 요약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더글러스 래너트(Douglas Lenat)의 CYC 프로젝트다. 그러나 현재 CYC는 5만여개의 개념과 30만개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며, 로봇의 이해력이 충분히 향상돼 스스로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몇 년 전 일본 경제산업성의 로봇 응용 시나리오를 보면 미래의 사회에서 노인들이 로봇에게 상식이나 노하우를 가르치며 이를 로봇회사에 되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재로서는 로봇이 갖춰야할 개념, 사실, 기능을 모순 없이 담는 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위와 같이 로봇에게 지능을 심어주는 방식을 형식주의 또는 하향식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향식 접근법의 한계에 실망해 어린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방법을 연상시키는 상향식 접근법이 지능 구현의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MIT의 인공지능 연구소 소장인 로드니 브룩스(Rodnet Brooks)는 상향식 접근법을 취하는 대표적인 연구자다. 그는 로봇의 행동 지능을 구현하기 위해 수학적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보다 곤충의 행동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시행착오와 경험’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상향식 접근법 중 대표적인 수법으로 신경망 로봇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1,000억개가 넘는 뉴런으로 이뤄진데 비해, 신경망 로봇은 수십에서 수백개의 뉴런을 이용한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뉴런 사이의 연결이 정적으로 돼 있는 신경망 로봇과 달리 인간은 뉴런 간의 결합 강도가 수시로 바뀌고 피드백 작용도 활발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하향식과 상향식 접근법이 결국은 통합돼 로봇에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인 인공지능이란 요리책을 통해 요리법을 배우는(하향식 접근법) 한편, 수시로 음식 맛을 보면서 중간과정을 체크하는(상향식 접근법)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MIT 교수 로드니 브룩스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로봇 Domo.]

인간과 로봇의 감정 영역

보통 ‘로봇 같은 인간’이라면 무감정한 존재를 떠올리지만 지능과 감정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인간은 정연한 논리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 논리의 방향과 깊이를 결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쇼핑할 때 사람은 그 물건의 가격과 성능만을 기계적으로 비교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감정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로봇이 인간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감정 구현 기술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감정은 인간과 로봇 사이에 생기게 될 관계성과 사회성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 유지보수, 전원 공급 등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하는 로봇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로봇은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관심을 유지하고 제 기능을 다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편, 기계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논의도 최근 로봇 학회에서 서서히 논의되고 있다. 이제까지 의식은 철학의 영역에서 다뤄져 왔지만, 인공지능의 창시자로 불리는 MIT의 마빈 민스키의 말처럼 의식은 마음의 집단(Society of Minds)에 불과하며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봇이 인간의 고유 영역처럼 여겨져 오던 지능, 감정, 의식을 갖추게 된다면 호모사피엔스에 비교되는 로보사피엔스의 시대가 열릴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기계의 통합, 탄소체(인간)와 실리콘체(기계)의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 때에는 인간성이나 기계성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이며 지능적인 로봇을 전제로 해 인류의 삶도 철학도 큰 변혁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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