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역행하는 美 환경정책이 국내 대기오염 가속화 우려
  • 박관희 기자
  • 승인 2018.03.3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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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기오염 물질의 절반 이상이 ‘이동성 오염원’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동 오염원에는 자동차와 트럭, 버스와 오토바이, 스쿠터와 도로건설장비, 해양 엔진, 발전기와 소형 엔진 등이 포함된다.

청정공기법 완화, 나비효과에 주목해야

[인더스트리뉴스 박관희 기자] 미국의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다시 한 번 후퇴할 조짐이다. 미국 환경청(EPA)이 미국에서 판매 또는 유통되는 자동차 등의 엔진과 장비가 배출 요구사항을 규정한 청정공기법(Clean Air Act)을 다소 완화한 새로운 규정 발표가 임박했다고 미국의 한 언론이 전했다.

미국 청정공기법은 공중보건과 환경을 대기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관련 법률과 시행 규정은 시험과 보고, 보증, 라벨링, 변조, 차량 엔진 유지보수와 변경 등에 관한 다양한 요구사항을 포함한다.

트럼프의 집권 이후 청정전력계획 폐지, 석탄 시대로의 회귀 등 다소 낯선 모습을 보이고 있는 미국은 자동차 배기가스 완화조치로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와 관련해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산업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따르면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우리나라는 철강분야 관세 폭탄을 막아냈다. 이번 재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산업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협상의 가장 큰 성과는 철강 협상을 신속히 타결해 제일 먼저 국가 면제를 받고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자동차 분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 안전기준을 만족한다면 한국에서 별도의 안전점검을 면제하는 이른바 '프리패스'가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어난다.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자동차 환경과 안전규제 완화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미국차는 인증절차 간소화로 비용절감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또 미국 포드, GM 등 미국 경유차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 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환경규제 해석에 대한 여지가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로6 배기가스 규제로 미국산 SUV와 픽업트럭의 진출이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국내 인증절차가 다소 까다롭기 때문인데, 이번 재협상으로 연비와 온실가스 등 환경규제의 경우 현행기준(2016~2020년)을 유지하되,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차기 기준에 대해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하기로 했다.

협정에서 밝힌 ‘세계적인 추세’가 배출 규제가 엄격해지는 유럽 기준이 될지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완화된 배출기준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한미 FTA가 이런 미국의 반(反)환경정책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일차적으로 우리나라가 ‘쇼케이스’가 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미국산 디젤차, 국내 시장 대거 진입 초읽기

당장 미국의 픽업트럭 등 디젤차 수입이 많아지면 유해 배기가스 물질도 증가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또 전기트럭 양산 등 세계적인 친환경차 개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 EPA는 자국 내에서 제조, 유통되는 차량 등에서 “스모그를 형성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과 질소 산화물을, 또 암을 유발하는 벤젠과 일산화탄소, 미립자 물질 또는 그을음과 온실 가스와 같은 다양한 유독성 대기 오염 물질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특히 ‘환경에 대한 악영향 이외에, 이러한 오염 물질은 천식과 심장 질환, 기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청정공기법의 배출기준 완화 조정 방침과 맞물려 한미FTA로 미국 픽업트럭과 SUV의 국내 시장 진출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pixabay]
미국 청정공기법의 배출기준 완화 조정 방침과 맞물려 한미FTA로 미국 픽업트럭과 SUV의 국내 시장 진출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pixabay]

국내 배출규제로 인해 제약을 받았던 국내 자동차 제작사들도 발끈하고 나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안전과 환경 분야는 우리나라 자동차제작사에도 부담이 되고 있는 정부 규제다”라며 (한미 FTA를 계기로) “향후 우리의 산업경쟁력 정책과 규제 정책과의 조화를 함께 고려해 우리나라 제작사에 대한 규제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재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환경규제로 많은 시설투자를 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형평성 지적, 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유로6 등 환경규제로 인해 국내 제조, 유통 자동차들은 연비개선은 물론 대기오염물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유로6가 탄화수소 0.13g/㎾h, 질소산화물 0.4g/㎾h, 입자상물질 0.01g/㎾h라는 기준이고, 대형 경유차의 경우 질소산화물을 기존대비 5분의1 수준까지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 환경 연구자는 “국내 소비자들의 미국산 픽업트럭과 SUV에 대한 수요를 짐작할 수 없지만 ‘과거로의 회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미국 환경정책이 나비효과가 돼 국내 대기환경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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