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팩토리 기술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제조 경쟁력 '스피드업'
  • 최기창 기자
  • 승인 2019.08.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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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역규제, 제조 국산화 및 스마트팩토리 가속화 동력으로 활용해야

[인더스트리뉴스 최기창 기자] 한국은 그동안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했다. 한국전쟁과 군부 독재, IMF 등 굵직한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모아 국난을 이겨냈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은 이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평가와 함께 제조업 강국으로 입지를 다졌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철강 등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17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1조5,302억원에 이르는 등 선진국 반열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를 시샘이라도 하듯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관련 3개 품목(폴리이미드, 불화수소, 포토리지스트)을 개별 허가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나아가 8월 2일에는 우리나라를 수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에 그동안 다양한 이유를 앞세워 일본산 소재 및 부품, 화학 물질 등을 수입해 온 한국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제조업 생태계 강화의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사진=dreamstime]
정부가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제조업 생태계 강화의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사진=dreamstime]

제조업의 위기?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사실 제조업의 위기는 일본의 무역 규제로 인해 급작스레 발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장에서는 이전부터 누적됐던 문제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그동안 정부가 ‘창조 경제’, ‘스마트팩토리’,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키워드를 내세워 제조업 지원 정책 카드를 꺼냈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좋은 기술을 개발했고, 상품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을 신청했다. 그런데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준비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더라”고 하소연했다. 이 기업은 결국 정부가 마련한 자본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를 포기했다.

다른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제조기업 대표는 “현재 제조업들의 구조를 살펴볼 때 단순히 공장을 돌리는 데 만족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스마트팩토리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영세한 기업들이 대량의 자본을 갑작스레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 정책을 준비하면서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영세한 기업의 경우 회계나 사무를 보는 직원 없이 대표가 혼자 모든 서류를 도맡아 처리할 때가 많다. 이런 기업들에 온갖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지원받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통계로 드러난 숫자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한 기업 대표는 “정부가 스마트팩토리 등 정책을 추진할 때 단순한 통계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며, “실질적인 도움과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 역시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이 통계로 드러난 성과에 몰두한다는 지적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누적된 것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제출한 제안서 등을 바탕으로 기술을 통째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기술을 섣불리 공개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결국 그동안 우리나라가 기술과 역량이 있는 중소제조업체들조차 자립하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소재와 부품, 화학 물질 제조업체들은 대기업의 구매 외면 속에서 더욱 어렵게 성장해왔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중기부, 자금 지원과 투자 활성화에 집중

정부는 일본과의 무역 분쟁을 ‘제조업 강화’ 계기로 삼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상생 협력, 기술 개발, 데이터 경제, 신뢰성 향상, 산‧학‧연 협력, 장비 개발, 규제 개선, 금융 지원 등 전방위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금융 지원이다. 정부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 부품, 장비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본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벤처펀드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9년 상반기 개인의 벤처펀드 출자액이 1,37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기록한 1,306억원을 이미 넘은 수치다. 또한 2018년 엔젤투자액은 지난해 대비 70% 증가하는 등 개인의 벤처투자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며, “엔젤투자 및 벤처펀드의 세제지원과 소득공제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새롭게 추가된 세제지원은 지난 ‘제2벤처붐 확산 전략’에 포함되었던 내용이다. 우선 벤처캐피탈이 신주(새롭게 발행한 주식)를 매도할 때만 적용되었던 양도차익 비과세가 엔젤투자자가 3년 이상 보유한 구주(기존에 발행한 주식)를 인수·매도하는 경우까지 확대된다. 벤처캐피탈이 엔젤투자자의 주식을 매입할 유인이 커지면서 엔젤투자자의 투자금 회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개인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취득한 주식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범위가 기존 벤처기업에서 창업 3년 이내 기술우수 중소기업 등까지 확대됐다. 기술우수 중소기업에는 기술평가 우수기업과 기술신용평가 우수기업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벤처캐피탈의 주된 투자대상인 비상장기업 주식의 증권거래세도 0.5%에서 0.45%로 0.05% 인하한다.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투자를 이끌어내 산업구조 혁신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2021년까지 최종적으로 집계할 경우 2018년 엔젤투자는 약 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벤처투자는 국가 경제도 살리고, 스타트업 육성에 힘도 보탤 수 있다. 투자수익도 높아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 벤처투자는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강조했다.

박영선 장관도 “약 3,000억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투자 펀드를 조성해 소재부품장비 R&D 추진기업과 핵심기술보유 기업 M&A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후불형 R&D’ 도입으로 범용성이 낮아 수요가 적은 핵심 기술 육성에도 힘을 쏟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중소벤처기업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인 자본을 직접적으로 지원해 산업 생태계 개선에 개입하겠다는 복안이다.

더불어 “추경예산을 활용해 경영안정자금 등 총 1조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신속하게 집행할 계획”이라며 대규모 예산 투입을 예고하기도 했고, 추가연장근로에 따른 R&D 인력 등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인정, 정책금융 대출 만기 연장, 유동성 확대, 소재‧부품 분야 특별 및 정책 자금 지원 등 다양한 금융 지원책도 함께 내놓았다. 구조적인 취약점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정부의 정책이 제조업 활성화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사진=dreamstime]
정부의 정책이 제조업 활성화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사진=dreamstime]

제조업 활성화, 더욱 ‘큰 그림’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제조업 활성화 정책들에 따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부 중소기업의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기업 대표들이 주장했던 어려움 중 하나였던 ‘지원 절차 및 서류 간소화’ 등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열악한 중소벤처기업을 고려한 기술 개발 도전 실패 비용 보전 등 조금 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는 지적도 있다.

스마트팩토리와 연계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국산화 및 고품질 기술을 확보했을 때 이슈가 되는 것은 결국 대량 생산과 생산 구조의 고도화다. 당분간은 ‘국산화’ 바람을 타고 순항하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궁극적으로는 가격경쟁력 등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있다. 과거 일부 소재의 국산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 역시 바로 가격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요‧공급 기업의 협력 모델을 토대로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핵심 품목 개발에 대한 기술로드맵 공유, 공동 시설 투자 및 재고 확보, 공동 기반 구축 등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는 제조업 및 뿌리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수요 기업이 흔들리면, 공급 기업도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생 모델 속에서 부품‧소재 공급 업체들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스마트팩토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다행히 정부 역시 이러한 인식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중기부 측은 “친환경, 스마트화,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은 경량화, 융․복합화, 스마트화를 구현하는 소재·부품·장비에 좌우된다”며 스마트화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을 여전히 중요 순위로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큰 그림’을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 선보일 필 필요가 있다.

중기부 박영선 장관 역시 “이번 위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기부는 강한 중소기업과 강한 벤처기업, 강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매진하겠다.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분업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건전한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겠다. 중소기업 대표의 사명감이 실현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모든 벽은 문으로 통한다. 단결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장벽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번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산업계 체질 개선’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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