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관세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이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중국 내 배터리 기업들이 해외 각지에 생산설비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에 따르면, 음극재 흑연기업 종케 일렉트릭(Zhongke Electric), 전해액기업 티앤츠소재(Tinci)와 캡켐(CAPCHEM), NCM 양극재 기업 롱바이(Ronbay) 등 다수의 중국 리튬배터리·소재 기업들이 대규모 해외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정책 환경 변화에 현지 공급망 구축 필요성 증가
종케 일렉트릭은 약 80억 위안을 들여 오만에 연간 생산능력 20만 톤 규모의 리튬이온배터리 음극재 통합 프로젝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롱바이는 약 17억500만 위안을 투입해 폴란드에 연간 생산능력 2만5,000톤의 양극재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캡켐은 말레이시아에 약 2,600만 달러를 투자해 리튬이온배터리 전해액 등 전자화학품 생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신뤄컨설팅은 현재 관련 기업들의 해외 생산설비 건설 지역은 주로 수요가 많은 유럽, 우호적인 정책과 니켈, 인 등 자원을 다량 보유한 동남아시아와 모로코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관련 기업들이 해외 생산설비 건설을 서두르는 것은 중국 내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해외시장 현지화 요구 및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승용차협회(China Passenger Car Association, CPCA)는 2024년 중국 신에너지차(New Energy Vehicle, NEV) 시장점유율이 38.9%에 달하는 반면, 주요 NEV 제조국의 시장점유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EU의 ‘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관한 규정’과 ‘핵심 원자재법(CRMA)’ 등의 정책 및 법규 시행과 관세 정책의 영향이 맞물리면서, 해외 완성차 제조기업의 상류 부문 공급기업에 대한 현지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전리연구원은 과거 일부 기업들이 해외 생산설비 건설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현재는 정책과 시장 모든 측면을 고려할 때 중국 리튬배터리 기업의 해외진출은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해외에서 공장을 건설하는 중국 리튬배터리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무조건적인 해외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 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해외진출에는 새로운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기 때문에 수주를 기반으로 종합 비용이 낮은 해외 생산기지를 모색하는 한편, 차별화된 시장 전략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 기업은 LFP 배터리 전환 가속화
산업 전반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무역전쟁에도 중국은 여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의 ‘리튬이온배터리(LIB) 4대 소재 공급망 분석 및 중장기 시장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양극재 출하량 367만 톤 가운데 LFP의 출하량은 235만7,000톤으로 약 64%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와 함께 보급형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LFP 배터리 채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또한, 전기차뿐만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의 LFP 배터리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의 LFP 시장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설립한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의 생산라인을 개편해 저비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체제를 구축한다.
얼티엄셀즈의 스프링힐 생산라인은 애초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의 삼원계 양극재 배터리 생산시설로 건립된 곳이지만, 올해 말 라인 전환 작업을 시작해 2027년 말부터 LFP 배터리를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소재사 엘앤에프와 북미 ESS 시장을 겨냥한 LFP 배터리용 양극재 공급을 추진한다. 그동안 미국 현지에서 배터리 생산에 주력해 온 SK온은 일부 생산라인을 전환해 LFP 배터리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