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제품 여권’의 글로벌 동향과 대응정책
  • 최종윤 기자
  • 승인 2022.11.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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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성공적인 정책’ 수립으로 대응해야..

[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박한구 단장] 지나온 50년은 정부가 대기업 중심 경제체제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많은 대기업을 지원해왔다. 그 결과 질 좋은 제품을 대량생산하고 글로벌 시장에 판매해 많은 수익을 창출하면서 국민 삶의 질을 높여왔다. 그 결과, 대기업은 자생력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와중에도 중소기업은 원가 절감의 압박에 마른 수건도 짜야 하는 힘든 시기를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이제 앞으로 50년은 정부가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디지털 경제 체제를 구축해 벤처·스타트업이 중소기업으로, 또한 중견기업을 넘어 ‘글로벌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성장 발전하도록 정책을 수립·실행해야 한다. 이번 칼럼은 18회째 정책으로 ‘디지털 제품 여권의 글로벌 동향 및 대응 정책’을 제안한다. 민간 주도로 정책을 수립해 정부에 건의·실행하는 모습으로 사업을 만들어 민간이 이끌고, 정부가 밀어주는 민간 주도형 정부 정책 문화를 만들어 가자.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박한구 단장이 18번째 정책제안으로 ‘디지털 제품 여권의 글로벌 동향 및 대응 정책’을 제언한다. [사진=utoimage]

유럽의 ‘디지털 제품 여권’ 추진 배경 및 현황

유렵연합(EU)이 2015년 발표한 순환경제실행계획 CEAP(Circular Economic Action Plan)은 단순히 환경 유해제품 금지나 친환경적인 제품 사용을 권장할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체질을 새롭게 설계 및 재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EU는 자원 투입, 생산, 사용을 거쳐 폐기에 이르는 기존 선형 경제 모델을 재활용이 포함된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생산 단계 전반에 대한 규제를 수립하고 있다.

특히 제품이 환경에 주는 영향 중 80%가 생산 초기단계에 결정된다고 판단해 2022년 3월 에코디자인 규정 ESPR(Eco 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을 발표하고, 물리적 상품에 대한 ‘디지털 제품 여권’을 2024년 이후 도입할 예정이다. 에코 디자인 규제는 자원 집약적이고 환경 영향이 큰 산업을 지정해 수리 및 재활용 등 지속가능한 제품 생산표준을 마련하는 지침이다. 현재 순환경제실행계획에서 핵심 제품 그룹으로 선별된 산업은 전자 및 ICT장비, 섬유, 가구, 철강, 시멘트 같은 고영향 중간재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이와 함께 추진되는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DPP)은 EU에 수출될 제품에 제품 ID와 매칭되는 디지털 정보(원산지, 탄소발자국, 재활용 비율 등)를 탑재한 것이다. EU 집행위가 추진 중인 디지털 제품 여권은 스마트폰,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청소기 등 유럽 내 판매되는 모든 전자제품에 발급될 예정이다. 디지털 제품 여권에는 해당 전자제품의 부품 원산지와 구성, 수리 및 해체 가능 여부, 수명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다. EU 집행위는 제품 정보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알려 제품의 재사용·재활용률은 높이고, 소비자 자가수리권도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일차적으로 △배터리 △섬유 △건설 등 4개 산업에 대해 2024년까지 준비해 섬유·건설은 2025년부터, 배터리는 별도의 규제안을 통해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을 추진할 계획이다.

공급망 투명성 높이는 ‘배터리 여권’

EU는 2026년 1월 1일부터 유럽 내 유통되는 배터리는 각각의 제품 정보 및 처리·재활용 정보를 담은 ‘고유전자기록’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 세계 70여개 기관이 모여 설립한 글로벌 배터리 연합(GBA)도 ‘배터리 여권’을 도입해 폐배터리 수거 및 재활용을 수월하게 만들 계획이다. EU도 유럽 단일 시장 내 ‘배터리 여권’을 통해 배터리를 구성하는 셀(Cell)의 원료인 코발트와 리튬 원산지를 추적하는 등 공급망 투명성을 높일 예정이다.

배터리 여권은 배터리에 부착되는 QR코드를 기반으로 작동해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관련된 모든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전자시스템이다. GBA가 제안한 배터리 여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ESG 성과 △배터리 제조이력 △성능 업그레이드 이력 △배터리 수명연장 및 재활용 데이터 등을 포함해 향후 배터리 수요자가 여권에 기재된 정보를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이다. EU 집행위는 GBA가 제안한 ‘배터리 여권’의 개념과 필요성에 동의하며, 해당 내용의 시행을 명시한 것이다.

EU가 준비 중인 배터리 여권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상은 배터리 용량이 2kWh이상인 모든 산업용·자동차용 배터리로 여권에 포함될 데이터로는 △재료 원산지 △탄소 발자국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 △배터리 내구성 △용도 변경 및 재활용 이력 등을 기재해야 하며, EU가 요구하는 안전사항 및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도 충족해야 한다. 또, 형태적으로는 상호 접근이 가능한 ‘개방형 전자시스템’을 운영해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배터리 이해 당사자가 실시간으로 정보에 접근·공유·관리·탐색·게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EU가 요구하는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도 충족해야 한다. 2025년까지 코발트·구리· 납·니켈 90%, 리튬 35% 이상의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 EU는 2030년까지 코발트 등을 95%, 리튬의 75% 이상으로 목표를 상향할 계획이다.

EU는 2015년 순환경제실행계획을 발표하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utoimage]

각국에서 추진 중인 ‘배터리 여권’ 동향

각국은 배터리 여권을 주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선, 독일은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정부지원 하에 ‘배터리 여권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배터리 여권은 독일정부로부터 820만 유로(약 110억원)를 지원받은 자동차 업체와 BMW, 유미코어, 바스프 등 총 11개 배터리 관련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EU 배터리 여권 플랫폼 구현을 목표로 하는 ‘배터리 패스(Battery Pass)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컨소시엄은 배터리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통 적용할 수 있도록 분류와 표준을 이미 개발한 상태다. 독일의 컨소시엄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하려는 프로젝트라고 독일 경제부는 밝혔다.

아울러 중국 EVMAM-TBRAT은 신에너지차 배터리 재활용 관리 잠정방법에 의거, 2018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관련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중국 정부의 ‘이력 추적관리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 판매, 사용, 폐기, 회수, 재사용 전 과정에서 요구되는 재활용 책임 이행 여부를 감독하기 위해 구축하고 있다. 신에너지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는 보조금 수령을 위해 관련 정보를 ‘EVMAM-TBRAT’에 기입해야 하며, 배터리 재사용 관련기업은 EVMAM-TBRAT에 배터리 정보를 의무적으로 입력해야 한다.

일본 또한 EU 시스템과 호환성을 갖춘 ‘일본식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 배터리·부품업체 30여개사로 구성된 민간 주도 배터리 공급망 협의회(BASC)를 2022년 4월 제안한 바 있다. BASC는 EU가 Gaia-X 클라우드에서 Catena-X 시스템을 이용해 배터리 여권을 구현할 것이라는 전제로 ‘일본식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EU가 배터리 여권을 도입해 공급망 관리에 문턱을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으로 전기차 배터리 관련 공급망 장악에 나섰다. IRA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한다는 내용으로 전기차 구매시 신차는 최대 7,500달러(약 1,016만원), 중고차는 최대 4,000달러(약 542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있다. 전기차 시장을 파격 지원해 널리 보급하겠다는 계획인데, 이 말은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수요도 함께 증가함을 의미한다.

해당 법안에 미국은 자국 중심 세부 조항까지 덧붙였다.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서 생산한 배터리와 핵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세제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며, 미국에서 조립과 생산과정을 거쳐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 핵심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하며,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의 50% 이상이 북미에서 ‘최종 제조 또는 조립’돼야 한다. 또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은 미국 혹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것이어야 된다. 미국은 IRA와 더불어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IIJA)’의 통과로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인센티브 제공을 단행하며, 공급망 재편과 자국 제조업 육성을 연계한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박한구 단장은 디지털 제품 여권 규제에 대한 대응으로 가치사슬 플랫폼을 강력히 제안했다. [사진=utoimage]

한국, ‘디지털 제품 여권’ 대응 정책 및 실행 방안

현재 한국은 배터리 수거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하고 있어, 기업들이 배터리를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또, 배터리와 자동차는 일체형이라 배터리 이력만을 관리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분리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기점 삼아 기업에서 배터리를 적극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완화’로 이어져야 된다고 보고 있다.

국내 배터리기업은 중국 원재료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에 미국 IRA, 유럽 배터리 여권 대응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산업은 음극재⋅양극재 부문에서 70% 이상, 분리막은 50% 이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중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양극재를 만드는 것에 필요한 ‘전구체’는 경우 92% 정도를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도 디지털 제품 여권 관련 규정이 수립되면 자금과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은 스스로 대응할 능력이 되지만, 중소기업들은 관련 데이터 제공을 위해 △측정기 설치 △데이터 수집 △저장 및 활용 인프라 구축 등 정부의 지원 없이는 기업 자체 대응이 불가하다.

이에 디지털 제품 여권은 민간주도로 이끌고, 정부가 미는 정책으로 추진해야 성공한다. 먼저 시범적으로 ‘배터리 3사’를 중심으로 원료 채굴부터 제련, 가공처리 등 가치사슬 상에 있는 기업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운영한다. 특수목적법인은 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디지털 제품 여권 관련 솔루션과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제공하는 ‘가치사슬 플랫폼’을 설계·개발·운영하며,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 관련된 모든 가치사슬기업이 다함께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 및 확산토록 한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박한구 단장 [사진=인더스트리뉴스]

한편 지난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관 공동 대응을 위한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출범했다.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정부-관련기관-기업’이 지속협력하기 위한 협의 수단으로 △공급망 △배터리 규범 △산업경쟁력 등 3개 분과로 구성했다. 앞으로 산업부와 관계부처는 배터리 제작, 등록, 운행·탈거, 재사용·재활용 등 전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이력정보를 축적하는 DB를 2024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 ‘스마트공장 구축’으로 대응하자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에 참여하는 중견·중소 제조기업 대부분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협력사이며, 자체 전산실에 모든 전산자원을 구축 및 운영해왔다. 그러나 2021년부터 ‘선도형 디지털 클러스터 사업’은 이러한 공급사슬에 있는 모든 기업들이 클라우드 기반 ‘공동 활용 디지털 플랫폼 구축’과 더불어 3년간 기업별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 스마트공장은 클라우드 기반의 △ERP △MES △PLM △SCM △AI △FEMS △Safety4.0 △Big Data △Metaverse △Digital Twin 솔루션뿐만 아니라 원산지 추적, 탄소배출량 계산 등 기업에 필수적인 솔루션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가치사슬 플랫폼이다.

한편, 다음해 신규 사업으로 기획중인 클라우드 기반 ‘One Package SaaS’ 사업은 지금까지 중소기업 자체 전산실에 구축해오던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ver) 구조’의 ERP, MES, PLM, SCM 같은 솔루션을 클라우드 기반 ‘SaaS 솔루션’으로 마이그레이션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 사업 추진 과정에서 탄소발자국 등을 포함한다면, 디지털 제품 여권 규제에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으로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가치사슬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QCD 향상뿐만 아니라, 에너지 손실 및 재해 사고를 혁신적으로 줄이면서 디지털 제품 여권까지 대응하는 둥 1석 2조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사업을 적극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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