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오려나” 외면받는 태양광에 길잃은 모듈산업
  • 정한교 기자
  • 승인 2024.05.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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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된 시장 규모에 가격 ‘치킨 게임’ 심화… 국산 제조기업, 유통업 전락 우려 이어져

[인더스트리뉴스 정한교 기자] 국내 태양광산업이 위기를 넘어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인기 시리즈 ‘해리포터’ 속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처럼 모두가 알지만 언급해서는 안 되는 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국내 태양광 모듈산업이 국내시장 규모 축소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전쟁, 환율 등 여러 외부 요인까지 겹치며 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사진=gettyimage] 

한때 전력산업의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산업을 이끌 선발투수로 평가받았던 태양광은 온갖 억측과 일부의 잘못을 산업 전체의 범죄처럼 매도한 여론으로 인해 불과 2년여 만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청정에너지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범국가적 목표 달성이라는 신념 아래 야심 찬 투자를 이어왔던 기업들은 제대로 역풍을 맞았다. 특히, 모듈기업들의 타격이 크다. 규모적, 역할적으로 모듈이 태양광발전소의 핵심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 3월 27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28개였던 국내 태양광 모듈 기업기업은 2022년 24개로 줄었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그나마 생산시설을 축소하거나 제조공장 가동 중단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단기적인 자구책일 뿐 해답은 아니다.

태양광이라는 산업에 등을 돌려버린 정부의 행보와 일부의 잘못을 태양광산업 전체의 잘못으로 매도하고 있는 여론은 국내 태양광산업의 붕괴에 대한 우려를 점차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역주행하는 국내 태양광 시장… 2∼2.5GW 규모로 수요 정체 전망

영원할 줄 알았던 태양광산업의 뜨거운 여름은 가고, 어느새 시리도록 매서운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020년 4.6GW로 정점을 찍은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량을 기록하며, 시장 규모를 키워가던 국내 태양광 시장은 지난해 절반에 가까운 신규 설치량을 기록한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지난 2월 5일 발간한 ‘2023년 하반기 태양광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2.5∼3GW로 추정된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 조정,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 폐지 및 경매제도 도입 등 정책을 변경함에 따라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앞으로도 2∼2.5GW 규모로 시장이 형성되며, 수요가 정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역시 암울한 전망은 마찬가지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는 업계 종사자들은 올해 신규 설치량을 2~2.5GW 규모로 전망하지만, 다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업계 종사자들은 올해 설치량을 1.5GW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모듈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만 해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토로했던 국산 모듈산업의 붕괴가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며, “시장 규모 축소로 제조 경쟁력을 잃어가던 국산 태양광 모듈 제조기업들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모듈 가격 하락까지 겹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살아남기 위한 일부 기업의 선택은 해외 제조기업 제품의 국내 공급”이라며, “자칫 국산 제조기업들이 유통사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한화큐셀이 지난 2월 출시한 고효율 N타입 탑콘(TOPCon) 모듈 신제품 ‘큐트론 G2’ [사진=한화큐셀]
한화큐셀이 지난 2월 출시한 고효율 N타입 탑콘(TOPCon) 모듈 신제품 ‘큐트론 G2’ [사진=한화큐셀]

“향후 2년여간 N타입 탑콘, HJT가 시장 이끌 것”

혹독한 한파에 몸살을 앓는 국내 태양광 시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기술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나 홀로 역행하는 국내 시장과는 달리,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여전히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블룸버그NEF가 발표한 ‘글로벌 태양광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444GW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장세는 지속돼 올해 574GW, 내년에는 627GW의 신규 설치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이러한 성장세에 발맞춰 모듈에 대한 기술개발은 여전히 뜨겁다. 현재 태양광 모듈산업의 주류는 N타입이다. 한때 시장을 지배했던 P타입 퍼크(PERC) 셀이 실험실 한계 효율에 도달하면서 더욱 높은 효율과 출력을 찾던 기업들은 차기 기술로 주목받던 N타입으로 눈을 돌렸다.

최근 시장에 선보이는 모듈기업의 제품 또한 N타입 탑콘(TOPCon)과 HJT 모듈이다. 태양광산업 초기에만 해도 15%에 불과했던 태양광 모듈의 효율은 최근 20%를 넘어 20% 초중반대의 효율을 기록하며,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지속된 기술개발 끝에 기업간 제품 성능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N타입 탑콘, HJT 모듈의 양산에 성공한 기업들은 또 다른 차세대 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탠덤 셀이다.

기존 실리콘 셀보다 높은 이론한계효율을 가진 탠덤 셀은 양산에만 성공한다면, 향후 시장을 주도할 키(Key)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기업들은 적은 면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초고효율 탠덤 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산업에 당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시장을 바라보는 이마다 약간의 기간 차이는 있지만, 약 2년여간은 N타입 모듈이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주류를 형성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태양광, 시스템화 통한 다변화된 애플리케이션 구조로 탈피 필요

국내 태양광 모듈산업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국 산업 보호와 건강한 시장 경쟁 조성을 부르짖던 태양광 모듈 시장의 현재는 얼마 남지 않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치킨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태양광 모듈업계 관계자는 “연간 신규 설치량 4.6GW를 기록하던 시장이 2.5GW 규모까지 하락했다”며, “제조기업의 생산 규모, 국내 태양광 시장에 진출한 유통기업은 그대로인데 시장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 안에서 경쟁하다 보니 처절한 치킨 게임이 발생했고, 현재는 모두가 고통받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태양광 모듈업계는 “국내 태양광 모듈산업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시장 규모 확대를 필수적으로 태양광 애플리케이션이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gettyimage]

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첫 해결책으로 국내 태양광 시장 케파(Capacity)를 다시금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은 시장에 어떤 변동성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사전에 이를 예측해 시장의 동향을 파악해 왔다면, 현재 국내 태양광 시장은 동향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경직되고 냉각됐다. 이는 결국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업계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케파 확대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해결책은 국내 태양광산업의 구조 변경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태양광을 미래 에너지원보다는 수익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유틸리티 규모 프로젝트에만 메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땅을 보러 다니고, 땅이 없으면 산에 들어가 나무를 깎았다. 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이런 태양광의 과거에 회의감을 표했다. 가장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보유한 에너지원인 태양광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규모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어느 에너지원보다 쉽게 설치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의 매력이 바르게 알려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필수 전제조건으로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활성화를 꼽았다. ESS와 결합한 태양광발전의 시스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태양광 모듈업계 관계자는 “건물에서 불이 난다고 건물을 안 짓는 것도 아니고, 건물을 짓는 사람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건설업계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며, “하지만 유독 태양광에만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일부의 일탈을 마치 산업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매도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벌하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해 더 좋은 건물을 짓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태양광은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분명한 미래 에너지원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며, “더군다나 기업들의 RE100 동참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중심국가에서 태양광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산업으로, 하루 빨리 태양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퍼져 한국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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