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스트리뉴스 성기노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62.8%(당원투표·국민여론조사 합산)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이다.
한 대표는 4·10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검찰 재직시부터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윤석열 대통령의 '픽업'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대표는 윤석열 정권 출범 때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한직에 있다가 법무부 장관에 전격 발탁돼 '황태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녔고 그 후 집권여당의 당 대표에까지 오르는 관운을 보여주었다.
이는 윤 대통령의 후광과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유독 야당에 공격적으로 맞서며 자신의 대권주자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이런 '전투력'과 대중적 지지 때문에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은 전무한 한 대표를 지난해 12월 집권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까지 밀어올려 주었다.
이는 웬만한 정치인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관운이었다. 한 대표로서는 그의 정치적 지위를 수직상승시켜준 윤 대통령에게 보은의 정치를 할 법도 했지만 여당 대표직을 꿰찬 다음부터 줄곧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자기정치를 이어나갔다.
한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여당 속 야당' 전략을 추구할 때만 희망이 보인다고 믿었던 것인지, 총선과 비상계엄-탄핵 정국을 거치면서도 끊임없이 윤 대통령과 대립하고 맞서며 갈등을 노정했다.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거취, 의대 증원 문제 등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를 앞세우며 친윤계 및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한 대표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등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친윤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원팀'이 돼야 할 시점에 한 대표가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했다고 비판했지만 일각에서는 여권 악재가 쏟아진 데도 불구하고 '개헌 저지선'을 지켜냈다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과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그는 김 여사 의혹에 대해 이른바 '3대 해법'(대외 활동 중단·대통령실 인적 쇄신·의혹 규명 협조)을 공개 건의하고 나섰고 당정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이를 두고도 친윤계는 한 대표가 '자기 정치'에만 골몰한다고 비난했지만 친한계는 한 대표의 '차별화' 전략으로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자평하며 맞섰다.
이렇게 당 대표 취임 직후부터 끊임없이 윤 대통령과 마찰을 빚던 한 대표는 계엄 및 탄핵 정국을 맞아 용산과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탄핵 대응 등을 두고 윤 대통령 및 친윤 세력과 완전히 갈라선 것이다. 한 대표는 계엄 선포 직후 "위헌·위법한 계엄"이라며 비판 입장을 냈다.
만약 한 대표가 이때 비상계엄 선포에 유보적 반응을 보이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에도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었다. 한 대표는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 직무 정지'와 탄핵 찬성 등을 공개 주장하며 용산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한 대표가 '검사'에서 장관과 여당 대표까지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뒷배에 윤 대통령이 있었기에 최소한의 '동지의식'을 보여줬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윤 대통령이 끊임없이 민심을 거르스며 '반역의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한 대표가 그 '역류'를 되돌리기 위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이제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한 대표는 오늘의 '한동훈'을 있게해 준 윤석열 대통령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한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쏠린다. 지금으로선 그의 대선출마는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당 대표직에 미련을 보이고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것도 다음 대선 도전을 위한 명분쌓기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대표의 뜻대로 그가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될 지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한 대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가 추경호 의원이 물러난 직후 즉각 당 원내사령탑을 '이어받은' 것은 향후 당권을 친윤계가 장악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였다. 이는 곧 당권 접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배신자' 한동훈을 내쫓고 새로운 대선주자를 내세우려는 친윤계의 대권 전략 일환일 수 있다.
한 대표는 비상계엄-탄핵 정국에서 친윤계와 완전히 결별하는 모험을 택했다. 그로서는 탄핵에 머뭇거리거나 주저할 경우 그나마 쌓아온 '국민'과 중도층의 지지마저 떠내려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수층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불명예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탄핵 표결 때 찬성표가 12표 정도 나왔는데 일반적으로 친한계가 20여명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동원할 수 있는 '계파'의 최대치가 20여명에 턱없이 모자랄 경우 향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친윤계로서는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당권만은 지켜야 당의 미래가 있기 때문에 한동훈 대선주자보다 친윤계 후보를 내세워 독자적인 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향후 윤 대통령을 향한 내란죄 수사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면서 한 대표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이 한동훈의 비상계엄 사태 대처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 그의 지지율은 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현재로서는 보수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에 그가 현재의 여당을 등에 업지 않고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탄핵 후 정국이 '이재명 대세론'으로 굳어져가는 상황에서 보수가 국민의힘-한동훈당으로 분당까지 된다면 대선 승리는 더욱 요원하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의 대권도전은 보수의 통합을 위해 그가 어떤 역량과 정치력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