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전투력 없인 자율운항선 선점 ‘공염불’… 한국판 ‘Kongsberg’ 나와야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12.1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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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학·산·연 상생협력 네트워크 형성해 시장 동반 진입해야

[인더스트리뉴스 최정훈 기자] 세계 정상의 조선업 명맥을 잇게 할 새로운 동력인 ‘자율운항선’ 경쟁력 확보에 정부와 업계가 본격 나서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핵심기술 확보를 등한시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은 선박 한 척당 100만개의 소재·부품·장비가 투입되는 대표적인 중후장대 산업이다. 고용창출 등 파급력을 고려하면 인구가 많은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제조국가들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업종이다. 

이동성이라는 선박의 핵심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경제적이고 안전한 항해는 결국 장비시스템이라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사진=utoimage]
이동성이라는 선박의 핵심가치는 불변한다. 경제적이고 안전한 항해는 결국 항해통신장비 기술이 관건이다. [사진=utoimage]

이들 국가들은 조선업의 친환경화와 스마트화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태세이다. 스마트화와 관련해서는 자율운항선이 종착지 역할을 한다. 최적의 항로를 스스로 발굴·항해해 운항경제성과 안전성을 제고하며, 이에 장비성능을 최적화하고 인적과실을 배제시킬 수 있다.

자율운항선은 선박의 상태를 원격으로 감시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탑재하는 수준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무인선박으로 전개될 것으로 점쳐진다. 인지뿐만 아니라 판단, 조치도 선박이 도맡는 단계는 요원한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기존 장비를 교체하거나 새 장비를 탑재함으로써 선원 혹은 원격으로 선박을 제어하는 수준은 비교적 빠르게 가시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Acute Market Report’ 조사에 의하면 2020년 이후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신조선·기자재·관련 서비스 등을 망라해 연간 10~21%의 성장률로 2025년께 1,55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세계 신조선 발주액의 약 2.5배(2017년 기준)에 달하는 규모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통상 40~60%대 고부가가치 선박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속도감 있는 기술개발 및 실증을 통해 자율운항선 분야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쟁국, 선사-조선소-장비업체 화력 집중 

우리나라는 업계의 흐름과 방향을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게 읽으며 현재는 탱커선, LNG선,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초점을 옮겨 자율운항선 관련 기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육상 인프라를 AWS 클라우드를 통해 운영하고 육해상 선박 관련 데이터 수집, 선주들을 위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솔루션을 구축했다. 특히, 지난해 업계 최초로 LNG운반선 형상의 모형선 EasyGo를 통해 원격자율운항 테스트에 이어 실제 선박 시연까지 선보인 삼성중공업은 지난 10월 거제조선소 인근 해상에서 예인선박에 원격 자율운항시스템을 탑재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가며 목적지까지 운항시키는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를 2022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다. 

세계 최초로 항해지원 시스템인 하이나스(HiNAS) [사진=현대중공업]
세계 최초로 항해지원 시스템인 하이나스(HiNAS) [사진=현대중공업]

지난 2011년 세계 최초 스마트선을 개발하며 출발선을 끊은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은 선박엔진 상태 모니터링, 고장 진단, 운행 특성 감시, 경제운전 기능 제공, 선박-항만 실시간 정보연계 등을 통해 운항 최적화를 구현한다는 복안이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17년 선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에너지 효율 관리 및 최적 경로 탐색 기능을 수행하는 선박용 IoT 플랫폼 ISS를 개발해 누적 150여척에 탑재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세계 최초로 항해지원 시스템인 하이나스(HiNAS)를 개발했다. SK해운 25만톤급 탱커선에 탑재한 이 솔루션은 자동으로 위험물을 인식해 충돌위험을 판단하고 AR로 항해자에게 알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대우조선해양은 모니터링, 연료 소비량 최적화, 선박 설비 관리 솔루션, 네트워크 통합시스템 등에 주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로이드 선급과 협업해 HMM이 발주한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엔진, 냉동공조시스템, 냉동컨테이너 등을 육상에서 원격 진단하고 선상에서 조치할 수 있는 솔루션을 구현해 냈다. 

하지만 해외 경쟁국과 비교하면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자율운항선박’ 분석자료를 통해 Kongsberg, NYK, MOL 등 해운업체가 조선업과 협력해 자동운항선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형 조선 3사들이 주연이며, 실운항선에 시스템 탑재를 통한 데이터 확보 단계까지는 진전됐지만 실선 건조에는 미치지 못해 경쟁국들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는 부품·장비기업,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및 개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선박 자동화, 항해시스템, 자동위치제어시스템(DPS) 분야 선도기업인 Kongsberg는 노르웨이 비료기업 Yara와 조선소 Vard와 함께 120TEU급 연료전지 자율운항선인 Yara Birkeland를 상용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Kongsberg는 지난 2018년 유용한 스마트선 기술들을 확보한 Rolls-Royce의 해양사업부문을 인수해 선도적인 입지를 더욱 굳혔다. Rolls-Royce는 Inmarsat 등 다양한 IT 기업과 협업으로 단시간 내 원격제어 기술을 상용화하고, 2025년까지 내항·근해선박의 무인화를 표방하고 있다.  

일본도 견고한 해사클러스터를 포석으로 기술개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대 선사 NYK, MOL 등이 주도로 자율운항선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며 조선사 Mitsubishi가 기술적 서비스 원격제어, 자동항해, 추진기 등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지난 2019년 2만톤급 자동차운반선 아이리스리더호가 자동피항운항 시운전에 성공한데 이어 지난 11월에는 Kanko Kisen Kogyo 선사의 여객선이 토쿄 연안에서 자동 충돌예방 실증시험을 마쳤다. 일본은 각종 레이더, 통신설비 업체들과 협업체계를 구축해 2025년까지 AI 기반 자율운항선 250척을 건조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놓았다.  

Kongsberg의 자율운항선 조감도 [사진=Kongsberg]
Kongsberg의 자율운항선 조감도 [사진=Kongsberg]

한국판 ‘Kongsberg’ 육성해야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기자재 업체가 턱없이 부족하고 자율운항선 기술의 정수로 대두되는 센서 및 제어, 통신, 데이터 관리 및 처리 등의 SW 신뢰도도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허청의 ‘조선분야 기술 특허트랜드 2020’에 따르면 조선업은 전자, 자동차 산업 등에 비해 특허 수가 현저히 적은 수준이며, 이에 특허분쟁사례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의 특허출원 21건을 제외하면 한국조선해양은 특허 출원이 전무했으며 삼성중공업도 4건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 3사는 R&D 원천기술 개발보다 상품 개발을 위한 응용기술 개발에 무게가 쏠려 있다. 아직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기술적 개념이나 기준이 불투명하고, 더욱이 선박 수주에 직결되지 않아 장기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조선사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기는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노르웨이는 선박용 항해장비, 통신장비 등 기존 기업이 보유한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자율운항선 분야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주도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앞으로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응용분야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방향을 재정립한 정부의 '소부장 정책'과도 동떨어져 있다. 

기술은 직전 기술을 토대로 발전하는데 자율운항선 분야라해서 수 십년 다져온 경쟁국의 기술력을 단기간에 뛰어넘을 리 만무하다. 앞으로 자율운항선도 외산 기자재를 도입해야 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 조선소가 건조하는 가장 고부가가치 선박인 해양플랜트의 위치제어시스템도 거의 대부분 노르웨이 장비만 탑재된다. 핵심 항통장비인 레이더 장비도 국산은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나 있다”고 밝혔다. 

이동성이라는 선박의 핵심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앞으로도 경제적이고 안전한 항해는 결국 장비가 관건이라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이 그저 데이터만 잘 모은다고 능사는 아니다. 뒤쳐진 기자재 및 SW 경쟁력은 장기전이 요구되는 자율운항선 산업에 약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국적 선사들과 대형조선 3사가 상생협력 네트워크 운영을 통해 국내 기자재, ICT, 빅데이터 관련 강소업체와 공동으로 기술 개발하고 시장 진입도 합심해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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