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팩토리는 제조업에 ‘낭만’을 입히는 것이다
  • 이건오 기자
  • 승인 2019.11.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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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진우 명예교수, “스마트팩토리는 노사가 함께, 멀리 갈 수 있는 대안”

[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붉은 단풍이 잘 물든 가을날, 서울대를 찾아 공학전문대학원 스마트매뉴팩처링트랙 주임교수로 있는 박진우 전 민관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장을 만났다. 1970년대 우리나라 제조업 태동기부터 격변의 성장기를 지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을 경험한 박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 가면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구겠지만 내년 봄 새 순이 돋는 새로운 기회가 도래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제조업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이야기 했다.

스마트매뉴팩처링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을 묻자 제조업을 전공한 입장에서 본인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언급한 박 교수는 “과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 쪽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2013년 이후 독일 등 제조 선진국에서 ‘스마트 제조’를 리딩하면서 ‘제조’가 주목되고 있고 학생들의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스마트 제조에 있어 대기업은 잘하고 있는 편이지만 중견·중소기업은 매우 취약하다”며,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나온 유럽을 50년이라는 단기간에 좇으면서 중간에 놓친 것이 많은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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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박진우 공과대학 공학전문대학원 스마트매뉴팩처링트랙 주임교수는 ‘스마트 제조’가 주목받고 있으며 학생들의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을 돌아볼 시기

박 교수가 말하는 ‘놓친 것’은 대량생산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생산과 노동의 관계, 혹은 갈등이다. 그가 언급한 것은 우리보다 먼저 대량생산 시대를 지나온 미국의 테일러리즘(Taylorism)과 포디즘(Fordism)이다.

경영 컨설팅을 세계 최초로 시작한 사람으로 알려진 테일러는 테일러리즘이라고도 불리는 과학적 관리 기법, 즉 노동자의 동선, 작업 범위 등 노동 표준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체계를 창안하고 실천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1900년대 대량생산 시대에 미국의 산업생산력이 세계를 앞서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후대 사회학자들은 1880년대 황금시대(Gilded Age) 당시 공장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망각한 채 테일러리즘은 노동을 단순화, 기계화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포디즘은 미국의 기업가인 포드가 대규모 시장을 필요로 하는 산업 사회에서 대량생산 체계를 만들어 낸 것에 기인한다. 포드 자동차 생산을 위해 작업 속도, 정밀도 및 조작의 간편화에 맞춰 설계된 전문 작업 도구와 기계가 사용됐으며 노동자는 단순화된 특정 업무만을 맡게 됐다. 노동자들이 자가용을 보유한다는 생산 극대화를 이뤘지만 풍요로운 생활과 함께 결근과 이직의 증가라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박 교수는 “노사갈등이 아직도 큰 사회문제로 남아있는 지금의 우리 제조업이 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한계도 드러냈지만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은 생산성을 올리고 노동자를 대우해서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체계로 진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주5일 근무를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됐는데, 이는 대량생산 시대에 미국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급속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과정을 급속도로 진행하는 바람에 생산력은 향상됐으나, 공유하고 나누는 것은 배제되고 단절과 갈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스마트팩토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량생산 패러다임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은 여전히 노사갈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조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힘을 잃고 있다. 박 교수는 스마트팩토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속적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과 합리적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언급한 박 교수는 “급속 성장과정에서 합리적인 관리를 위한 내부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고 업무일지조차 수기로 작성하는 현장이 비일비재하다”며, “수기로 작성된 기록은 정확도 측면에서나, 업무개선을 위한 분석 자료로 활용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합리적 노사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동화 및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화 하고, 문제 파악과 해결을 이뤄나가면 우리 기업들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관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의 출발이 여기에 있었다. 경기 침체와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직면한 국내 제조업 문제를 해결할 구원투수로 2015년 중반부터 ‘스마트공장’ 도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 교수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기존 공장의 자동화, 디지털화, 스마트화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며, “실질적으로 2017년까지 보급된 3,000여개의 스마트공장은 저마다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전했다.

실제 중견·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기업의 목표에 예민한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 박 교수는 “이는 생산성을 높여 기업이 성장하면 기업의 덩치는 커지지만, 생산 현장의 노동자를 높아진 생산성의 파트너로 대우하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직이라도 안 되면 다행이라는 인식도 있다”며, “같이 간다, 함께 한다라는 인식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고 스마트팩토리도 이러한 기조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추진단을 운영하면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간다’는 말을 구호로 삼을 정도로 이러한 부분에 중점을 뒀다”며,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히든챔피언으로까지 성장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명심할 것이 있다. 초기 스마트공장 도입을 통해 생산성이 올라가면 현장의 노동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이러한 여유시간을 이용해 현장 직원들에게 한 단계 높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기정원 부설기관으로 있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에 대해서도 언급한 박 교수는 “현재 스마트팩토리 보급을 위한 핵심기관으로서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주관기관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힘을 실어주면 좀 더 추진력 있게 스마트팩토리 보급과 고도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명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고 모럴헤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요지도 많다”고 설명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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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명예교수는 “스마트팩토리의 목표는 무인자동화가 아니고 사람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적정자동화”라고 말했다. [사진=인더스트리뉴스]

중소기업에서 보고 들은 현장의 목소리

업계에서 한동안 회자됐던 이야기 중에는 스마트팩토리 도입에 있어 정부는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기초단계의 스마트팩토리만 있다, MES·ERP와 같은 운영 솔루션만 적용하는 수준이다 등의 내용이 있다. 이러한 업계의 목소리에 박 교수는 조금 다른 생각을 전했다.

박 교수는 “과거 공장 컨설팅이나 심사부터 2015년부터 3년 간 스마트공장 추진단장을 맡는 동안 수백 곳 이상의 중견·중소기업을 방문했다”며, “국내 중견·중소기업은 기초단계도 되어 있지 않은 사이트가 굉장히 많다. 대기업에 하청 받는 구조로 오너가 영업, 마케팅, 계획 등을 이끌고 가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너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는 투명한 관리나 노동자와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기 어려웠다”며, “지금의 대한민국 제조업은 맷집도 많이 세졌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기에 정직하고 투명하게 세금 내고, 기술을 개발해도 충분히 운영해 나아갈 수 있다. 일단 기초단계에 돌입한 이후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독일의 제조 공장을 다녀왔던 기억을 소개했다. 그는 독일 제조 공장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낭만’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 존중받고 있고, 실제로 그 기술자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한 공장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의 격차다. 스마트팩토리 도입을 통해 단순하게 생산량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키우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공장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가 연신 강조하는 스마트팩토리의 목표는 무인자동화가 아니고 사람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적정자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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