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묵은’ 533억 담배소송…공단 “흡연=폐암” vs 담배업체 “금연캠페인이 목적이냐”
  • 서영길 기자
  • 승인 2025.05.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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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공단 이사장, 최종변론 출석해 직접 변론
담배 3사 “흡연은 개인선택…손해배상 책임없어”
항소심 선고, 적어도 8월말 이후 나올 것으로 관측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소송 항소심 최종변론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서영길 기자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이른바 ‘담배 소송’ 항소심 최종 변론에서 공단 측은 흡연의 유해성에 따른 손해배상을, 담배 업체들은 흡연은 개인의 자유라는 주장을 또다시 되풀이 하며 공방을 벌였다.

22일 서울고등법원 민사6-1부(부장판사 박해빈 권순민 이경훈)는 건보공단이 담배 제조사 KT&G·한국필립모리스·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약 5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최종 변론기일을 열었다.

정확한 소송가액은 533억1955만원으로 이는 하루에 한 갑 이상씩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흡연자 중 폐암·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건보공단이 10년간(2003~2012년) 지급한 진료비다.

이날 변론에서 양측은 흡연과 폐암 발병의 인과관계, 공단 직접 청구권 및 손해액 등을 두고 2시간여에 걸쳐 공방을 벌였다.

원고인 건보공단 측은 담배회사가 소비자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중대한 기망행위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이기도 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날 재판에 직접 출석해 “1년에 국민 6만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며 “1년 사이 대형여객기 120대가 추락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정 이사장은 “재판부가 철저히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판결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길 바란다”며 “담배 회사가 흡연을 막지 않는 것은 ‘자살 방조’와 같다”고 강한 어조로 주장을 이어갔다.

정 이사장은 미국 필립모리스가 전액 재정을 대 지원한 금연 관련 재단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에서 폐암 사망의 85.6%는 담배 때문”이라고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재판에 앞서 법원 입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담배가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데 (담배 업체들이 이런 내용을) 이해 못 한다는 건 궤변에 가까운 것”이라며 장외 설전을 펴기도 했다.

그는 이어 “충분히 저희 논리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면 새로운 판결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날 최종 변론기일에서 건보공단 측은 ‘흡연으로 인해 폐암 등 비특이성 질환이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주력했다.

건보공단 측은 “담배는 흡연자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재차 부각시켰다.

건보공단 법률대리인은 “흡연자들이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며, 니코틴 중독은 강한 내적 욕구와 사용 통제력 상실 상태로 정의된다”며 “이 사건 대상자들 모두 30년 이상 흡연해 중독 상태에 있었고, 금연 성공률이 5% 미만이라는 점에서 자율적 판단으로 금연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측은 이어 질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폐암 등은 흡연과 강한 역학적 인과관계를 가지며, 개별 사례 분석에서도 대상자들이 흡연 외 별다른 환경요인이 없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대법원 기준에 따라 개연성도 충분히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한 편의점에 있는 담배 판매대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오전 서울 한 편의점에 있는 담배 판매대 모습./사진=연합뉴스

반면 담배 업체 측은 “이번 재판은 의학적 관점에 대해 다투는 것이 아니다”라며 “흡연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금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닌 만큼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없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KT&G 측 법률대리인은 “의존성 유무를 의학적으로 다투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흡연이 자유의지를 상실 시킬 정도는 아니지 않나”라며 “중단하고 재개하는 것은 흡연자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력 때문이지 약물효과 탓이 아니라는 게 그간 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필립모리스 측 법률대리인은 “폐암 환자 42.5%는 4개월 이내, 32.5%는 3개월 내 금연에 성공했다”며 “(공단 측이 언급한) 중독성으로 흡연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 담배 업체 측은 건보공단이 변론에서 제시한 의견서와 연구 결과를 두고도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KT&G 측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낸 것은 담배소송을 주제로 건보공단 이사장이 써 달라 해서 써준 거라 볼 수밖에 없다”며 “학회에서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타당하고 존중하지만,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는 식의 일방적 내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원고 측 자료를 배척했다.

특히 KT&G 측은 건보공단의 해당 소송 제기 자체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KT&G 측은 “피고 회사는 위법성이 없다는 걸 대법원에서 여러 차례 판결 받았지만, 원고는 앞선 개별 판결이 나온지 약 10일만에 이번 소송을 제기해 소송 자체보다 ‘금연운동’의 일환으로 재판을 활용하려는 듯 하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어 KT&G 측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원고 측의 일방적 주장이 반복되거나 불법 제조사로 비춰지는 것을 벗어나 정상적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원고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촉구했다.

재판부는 이날로 변론을 종결했으나 선고기일을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담배 업체 측의 추가 참고서면 제출 요청을 받아들여 건보공단 측의 반박서면 제출 기한까지 고려해 총 3개월의 기간을 부여했다.

이에 항소심 선고는 적어도 8월 말 이후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흡연의 사회적 책임을 담배 제조·수입·판매사에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20년 11월 피고인 담배 업체 측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흡연과 암 발병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건보공단측이 "담배 업체들이 흡연의 위험성을 은폐·왜곡해 소비자를 기만했다"고 주장한 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보공단은 이에 불복해 2020년 12월 항소했고 이날 재판까지 총 12차례의 변론기일을 가졌다.

한편 이번 소송은 공공기관이 원고로 참여한 국내 첫 담배 소송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이날 최종 변론기일에도 원고·피고 측 회사 관계자 및 법률대리인뿐 아니라 취재진까지 한꺼번에 몰리며 40~50명이 재판정 입구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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