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근 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류재근 한국교통대학교 석좌교수

[전문가칼럼-류재근 한국교통대학교 연구교수] 지난 1998년 한국환경분석학회가 창립된 지 어언 27년이 됐다. 한국환경분석학회는 관련 학자들의 헌신과 열정 덕분에 이제는 국내 환경분석 분야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학회 창립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의 환경오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1980년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아황산가스(SO₂) 농도가 0.08ppm을 넘나들었고, 연탄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매년 적잖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환경오염이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하천의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는 30을 오르내렸으며, 4대강 하류는 4~5급수로 오염돼 가뭄 때마다 대량의 물고기 폐사가 이어졌다.

이처럼 척박한 배경 속에서 1980년 환경청이 발족됐고, 대기·수질·토양 등 주요 오염 분야의 측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체계적 분석 데이터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환경오염이 일상화되다 보니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89년 수돗물 중금속 검출사건, 1990년 THM 사고,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 1994년 디클로로메탄 사고 등이 대표적 사례였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환경 문제 해결의 핵심은 '과학적 근거'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학문적 필요성을 토대로 환경분석의 질적 향상과 데이터 신뢰성 확보를 목표로 제시하며 탄생한 기관이 바로 한국환경분석학회다. 학계-연구계-산업계의 환경분석 전문가들이 1998년 KIST 국제회의실에 모여 창립식을 거행하던 때가 주마등 처럼 뇌리에 스쳐간다.

한국환경분석학회 창립총회에서는 '환경호르몬과 건강'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이 열렸다. 아울러 환경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근본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확한 분석'임을 선언하는 의미있는 시간도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학회의 설립 정신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우리 사회의 환경정책과 연구 방향을 이끄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학회는 창립 이후 다이옥신과 환경호르몬 문제를 국민에게 알리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다이옥신 문제 해결, 수계에서 발생한 남조류 독소 마이크로시스틴 연구, 1999년부터 수돗물 내 엔테로바이러스 검출 및 관리기술 개발 등은 학회 전문가들의 대표적인 연구성과로 꼽힌다.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엔테로바이러스 기준을 설정하고, 로그4(99.99%) 소독처리 관리기술과 기생충 제거기술을 확립함으로써 우리나라 수돗물이 미국에 이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학회의 과학적 분석이 큰 밑거름이 됐다.

또한 1991년부터 하천과 호수에 대한 생물모니터링 및 수질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 우리나라가 물관리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수질기준을 TOC(Total Organic Carbon)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학회 회원들의 기여가 매우 컸다.

오늘날 우리는 GC-MS, IC 등 첨단 분석장비 보유 규모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며, 국공립 연구기관과 대학을 중심으로 환경분석 역량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 또한 분석학의 성과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58년 환경분석 학자가 기후 온도와 이산화탄소의 상관성을 밝혀낸 연구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정책의 과학적 토대가 됐을뿐 아니라 오늘날의 기후위기 논의 또한 분석기술이 정책적 근거가 됐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이 결합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10월 3일을 기점으로 정부조직이 기존의 기후위기대응체계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된 것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산업정책의 범위를 넘어 환경과 기후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3%, 화석에너지 의존도는 84%,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에너지 시스템이 해외 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석탄과 석유 중심의 발전구조는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되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변화가 아니라 환경오염 저감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필수적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의 근거를 제시하는 과학적 분석이야말로 한국환경분석학회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환경분석학은 기후·에너지·환경이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다뤄지는 종합과학으로 확장돼야 한다. 아울러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할 과학적 분석과 데이터 구축이 학회의 새로운 과제로 부각될 공산이 크다.

환경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분석자료의 축적과 그 신뢰성 확보에서 출발한다. 환경오염의 측정-분석은 단순한 기술 행위가 아니라 국가 환경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과학의 실천행위다.

따라서 분석결과의 정도(Precision & Accuracy)와 불확실도(Uncertainty)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학회는 그동안 환경오염 측정의 정도관리(QC)와 정도보증(QA) 체계를 발전시켜 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환경부의 공정시험기준 제정과 개정, 측정망의 자동화, 표준물질 관리, 분석자 교육, 외부정도평가 등은 학회의 연구와 제안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제도적 성과라 할만 하다.

한국환경분석학회는 그동안 수질분석법을 CODMn에서 CODCr 및 TOC법으로 전환하고, 대기분석기술을 고도화하며, 배출기준을 신설하고 분석법을 개선하는 등 환경분석기술의 표준화를 이끌어왔다.

학회는 단순한 학문적 모임을 넘어 국가 환경관리체계의 과학적 기반을 설계하는 중심 전문단체로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환경오염의 양상은 미세플라스틱, 나노물질, 신종 유해화학물질 등 복합적 형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국환경분석학회는 첨단 분석기술을 융합하고 표준화함으로써 분석의 정밀성과 재현성을 높이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게 됐다.

인공지능(AI)과 고분해능 질량분석기(HRMS) 등 신기술을 환경분석에 적극 도입해 미량 오염물질까지 정확히 검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

또한 불확실도 평가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신뢰성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정밀분석 및 QA/QC 교육을 통해 차세대 환경분석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한국환경분석학회는 지난 25년여간 우리나라 환경정책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며, 환경보전의 최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은 기후와 에너지를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학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의 범위를 더욱 확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기후·에너지를 잇는 융합 분석 연구는 미래 환경정책의 토대가 될 것이며,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야말로 한국환경분석학회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류재근 한국교통대학교 연구교수 프로필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 석사를 거쳐 건국대에서 환경미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보건연구원 미생물부 연구관을 거쳐 국립환경연구원 원장, 한국환경기술진흥원 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6~7대), 한국물환경학회 회장, 한국환경분석학회 명예회장 등을 지내면서 수질연구 등 물환경, 바이오, 환경분석과 관련된 분야에서 주로 일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초대 원장도 역임했다. 한국교통대 연구교수로 활동중이며, 환경원로들의 모임인 일사회(서울에코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환경분야에서 '물박사'로  유명하며, '대한민국 환경 지킴이' 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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