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가 내년 2분기부터 직판제(RoF·Retail of the Future)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소비자 권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본사가 가격과 판매 정책을 직접 통제하게 되면 지금까지 소비자가 누려온 ‘가격 협상권’과 다양한 구매 혜택이 사라지고, 사실상 본사가 정한 가격만 통용되는 구조로 고착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벤츠코리아의 이번 시도가 단순한 판매 방식 변경을 넘어 한국시장을 글로벌 본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테스트베드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30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벤츠코리아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직판제를 도입해 차량 계약과 가격 결정을 본사에서 직접 관리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딜러사가 차량을 일정 금액에 인수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었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딜러사는 사실상 전시장 운영과 차량 인도, 사후 서비스만 담당하게 된다.
벤츠코리아는 이를 두고 “가격 투명성과 일관된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글로벌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미 유럽 주요 시장에서는 직판제가 안착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한국 시장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투명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본사가 가격 결정권을 독점하게 돼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 딜러사와 협상을 통해 할인이나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직판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정해진 가격 외에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담합화가 구조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소비자들이 가격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던 혜택이 사라지고, 구매 비용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소비자 권익 후퇴‧유통 생태계 왜곡 우려도
문제는 소비자 피해가 가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판제가 도입되면 서비스 품질 또한 본사 기준에 맞춰 획일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일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비자가 다양한 조건을 비교하고 선택할 권리가 축소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더 큰 우려는 시장 구조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다. 벤츠코리아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1위를 다투는 최선두 브랜드다.
벤츠가 직판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다면,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도 유사한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시장은 외국계 본사 통제 체제로 재편되고, 가격 경쟁은 사실상 사라지며 소비자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노조와 딜러사들의 반발도 거세다. 벤츠코리아 딜러사 소속 영업·정비 인력만 수천 명에 달하는데, 판매 마진이 본사로 넘어가면 딜러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직판제가 시행되면 영업직뿐 아니라 정비 인력까지 고용 불안 직격탄을 맞는다며 지난 18일 서울 중구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직판제 도입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딜러사들도 강하게 반발한다. 수천억 원을 투자해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운영해왔지만, 직판제가 시행되면 투자금 회수는커녕 경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딜러사 한 관계자는 “위험과 비용은 딜러에 떠넘기고 수익은 본사가 독점하는 구조를 강행하려 한다”며 “장기적으로 딜러사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벤츠코리아는 직판제 도입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같은 본사의 움직임을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외국계 본사가 한국 시장을 이익 극대화를 위한 ‘실험장’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기업이라면 정부·노조·정치권의 견제가 불가피하지만, 외국계 기업은 규제 사각지대를 활용해 일방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볼보, 혼다, 푸조 등 다른 수입차 브랜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혼다코리아는 지난 2023년 온라인 플랫폼을 열고 가격 정찰제를 도입했고, 볼보와 폴스타 역시 온라인 판매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요컨대 수입차 업계 전반이 ‘가격 경쟁 없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 “외국 본사가 수입차 시장 좌지우지…소비자 후생 감소 우려 커”
소비자 후생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심각한 권익 후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구매 조건 개선을 위해 발품을 팔아온 소비자로선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제도적 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벤츠코리아의 직판제 도입이 단순히 한 기업의 선택을 넘어 국내 수입차 시장의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수입차 시장을 외국계 본사가 좌지우지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노조와 딜러 등에서) 제기된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재 전국 11개 공식 딜러사와 긴밀한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협의체를 통해 모든 딜러사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조율함으로써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벤츠코리아는 고객뿐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 등 모두에게 더 나은 비즈니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공식 딜러사들과 긴밀하고 투명하게 논의를 이어왔다”며 “아울러 직판제가 소비자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