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최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상법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사의 경영 판단 책임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배임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대한상의는 19일 발표한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기업 현장에서 주주에 대한 배임죄 성립 여부나 경영판단 원칙 적용 여부 등이 모호해 혼란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한상의는 현행 배임죄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35년 전 가중처벌 기준의 적용 △쉬운 고소·고발 △민사 문제의 형사화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먼저 우리나라 배임죄는 형법, 상법, 특경법의 3가지로 나눠진다. 특경법상 배임죄에서 가중 처벌되는 이득액 기준은 1984년 제정 당시 1억원과 10억원에서 1990년 5억원과 50억원으로 한 차례 상향된 뒤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한상의는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90년의 5억원·50억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약 15억원·15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가장 무겁게 배임죄를 처벌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가 없는 대신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있고, 독일과 일본은 형법 혹은 상법으로 배임죄를 규율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법으로 가중처벌하지 않는다고 상의측은 강조했다.
상법상 특별배임죄 역시 사문화된 상황으로, 특경법상 가중처벌의 전제가 되는 기본 범죄에 상법 특별배임죄가 없어 특경법 적용 때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대신 적용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가중처벌 규정과 이미 사문화된 상법 특별배임죄는 폐지해야 한다”며 “특경법 폐지가 어렵다면 35년 전 설정된 이득액 기준을 현재 화폐가치에 맞게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고소·고발 남용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대한상의는 “배임죄 고소가 수사기관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민사소송 증거 확보 수단이나 협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2014~2023년 10년간 형사사건의 무죄율을 분석한 결과 배임·횡령죄의 무죄율이 6.7%로, 형법 전체 범죄 평균 3.2%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배임죄 사건은 최종 판결까지 가봐야 유죄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대한상의측의 설명이다.
대한상의는 배임죄의 무죄율이 높은 이유로 실제 침해를 저지른 ‘침해범’이 아닌 침해 위험을 포함한 ‘위험범’을 적용하고, 미필적 고의까지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구성 요건을 꼽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검찰 기소 단계부터 이사의 책임을 면책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례에서 인정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 형법 등에 명문화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주의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린 경우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1988년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 판례로 처음 정립돼 미국, 영국, 일본 등은 판례로 운용하고 있으며 독일은 주식법에 명문으로 도입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최근 이사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만큼 경영 판단 의사 결정을 보호하는 제도가 균형 있게 마련돼야 한다”면서 “최근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 TF’를 발족해 1년 내 전 부처의 경제 형벌 규정 30%를 정비한다는 목표를 정한 만큼 국회에서도 배임죄 개선 논의가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