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한원석 기자]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를 근절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 개시(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피해 입증을 지원하고 개발 비용도 손해로 인정하는 등 실효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을 발표했다.
◆ 기술 탈취 피해 사실 입증 지원 강화
먼저 기술탈취 대응 과정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피해 기업의 소송 부담을 덜고 법원의 신속한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가 도입된다.
기술자료·특허·영업비밀 침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가 증거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를 마련하고, 법정 밖에서 진술 녹취와 불리한 자료 파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자료보전명령 제도도 도입한다.
법원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중기부, 공정위 등 행정기관에 행정조사 자료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자료제출 명령권’을 신설하고, 요구 자료의 범위를 디지털 증거자료까지 확대한다. 조사를 거부·방해하거나 기피하거나 자료를 미제출하는 경우에는 50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가 가능토록 한다.
‘접수’ 단계에서는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익명으로도 제보할 수 있도록 한다. ‘조사’ 단계에서 중기부는 별도의 신고 없이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직권 조사를 도입하고, 공정위는 기존 직권조사를 기술탈취 빈발 업종 중심으로 강화한다. ‘조치’ 단계에서는 중기부 행정조사의 제재 수준을 시정명령이 가능하도록 개선하고, 중대한 위법행위인 경우 과징금 부과도 추진한다.
이 밖에 해킹, 불법 취득한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재유출 등 신종 수법에 의한 기술유출도 영업비밀 침해행위 처벌 대상에 포함시킨다.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에 대한 처벌 대상에 브로커행위, 미신고 수출을 포함하고, 벌금을 현행 최대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상향한다.
◆ 손해배상액 현실화 및 예방 실효성 강화
정부는 기술탈취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기 위해 침해당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투입한 비용도 소송에서 기본적인 손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손해액 산정기준을 개선한다. 또한 피해기업의 기술과 유사한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연구개발비 정보를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해 요청이 있을 경우 피해기업의 연구개발비 범위를 산출하고, 이를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손해액 산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법원이 평가 역량 있는 전문기관에 손해액 산정을 촉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손해액 산정 시 필요한 기술침해 소송판례, 기술개발비용 정보, 기술거래 정보 제공 온라인 플랫폼인 ‘기술보호 울타리’로 통합 수집·관리한다.
아울러 기술탈취 예방 실효성 강화를 위해 부처 합동 기술보호 설명회를 연 5회로 확대 개최하고, 찾아가는 기술보호 교육을 신설해 기술보호 정책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된 영업비밀 분류 및 유출방지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는 보안설비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을 대기업 수준의 기술유출 예방·사후 대응 역량을 갖춘 선도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방안과 정부출연 10억원 이상 연구과제에 대해 조기경보 모니터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1만7000여건인 기술임치 건수를 2030년까지 3만건으로 확대해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분쟁 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특허청 원본증명 서비스를 영업비밀에서 아이디어까지 확대한다.
마지막으로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 체계도 구축해 쉬운 신고를 위한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과 ‘중소기업 기술분쟁 신문고’를 신설할 예정이다.
특허청 및 경찰청의 기술 경찰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고, 사건의 기술적 쟁점에 대해서는 특허청이 기술자문을 실시해 중기부 등 유관 부처와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한편 추가 범법행위가 의심되는 경우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관해 즉시 수사가 착수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현재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제도에 1인 조정부를 신설해 당사자 간 합의가 명백하거나, 5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의 경우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다.
또 중소기업들이 기술분쟁조정 제도를 보다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비대면 원격조정 적용 대상을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공정 성장 경제 환경의 실현”이라며 “대책이 실효성 있게 현장에 안착하도록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세밀하게 정책을 관리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