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오른쪽). [사진=각 사]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오른쪽). [사진=각 사]

[인더스트리뉴스 문기수 기자]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지 1년이 막 지났지만 양사간 거액이 투입되는 소모전 양상을 띠면서 '승자 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을 대규모로 매수하는 공개매수(TOB)를 선언하면서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오른지 벌써 1년이 됐다.

영풍측이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면서 75년에 걸쳐 면면히 이어온 최씨일가와 장씨일가의 협력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풍이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고려아연 역시 지분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영풍은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공개매수 가격을 83만원까지 올리며 약 2조 5000억원을 투입했다. 이에 맞선 고려아연 역시 공개매수 가격을 89만원까지 더 올리는 전략으로 3조 7000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었다.  

양측은 지난해 10월부터 소송전도 불사했다. 

양측은 24건의 다양한 소송을 주고받으면 치열한 법정 공방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들을 살펴보면 임시 주주총회를 막기위한 임시주총 의결권 무효 및 효력정지 가처분, 본안 취소소송, 이사회 장악을 위한 이사/사외이사 선임 효력 무효 소송, 이사회 결의 무효 소송 등 범위와 종류 모두 다양다양한 소송들을 주고 받았다.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 1년 타임라인./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 1년 타임라인./

◆ 영풍과 고려아연은 왜 분쟁에 휘말리게 됐을까? 

영풍과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뒤얽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영풍그룹의 사업부진 심화로 인한 자금력 부족이 고려아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킨 것이 첫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당초 영풍그룹은 고려아연 계열사는 최씨 일가가 석포제련소와 전자 계열사는 장씨일가가 각각 담당하는 분리경영 체제로 운영돼왔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과 희소금속에 대한 수요 증가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7조6582억원, 영업이익 5300억원을 기록하며 비철금속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가총액도 9월16일 기준 20조2636억원까지 늘어났다. 

반면, 장영진 영풍 고문 등 장씨일가의 영풍은 시가총액 8322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각종 사업의 악화로 인해 실적이 부진하다보니 회사 경영에 적신호가 울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영풍의 주가(9월17일 기준)는 4만3500원으로 10년전인 2015년 10월16일 최고가였던 14만639원과 비교하면 69%나 하락했다. 올해 상반기 영풍의 연결기준 영업이익도 -1504억원을 기록하는 등 다람취 쳇바퀴 돌듯 실적도 악화 일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같은 흐름속에서 영풍은 고려아연으로부터 배당금을 받아 적자를 해결해왔지만 그마저도 힘들게 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2022년 고려아연 창업주 3세 최윤범 회장 취임이후 배당금을 줄이는 대신 재투자를 시도하는 방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 변화는 영풍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려아연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배당금을 다시 늘려야겠다고 결심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고려아연이 2025년 3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완성한 순환출자 고리. 고려아연-영풍-SMH-SMC-영풍으로 이어진다./
고려아연이 2025년 3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완성한 순환출자 고리. 고려아연-영풍-SMH-SMC-영풍으로 이어진다./

영풍·MBK 연합의 공격과 고려아연이 꺼낸 회심의 방어 카드

영풍은 MBK와 함께 지분을 확보해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정공법을 택했다. 

영풍MBK 연합은 공개매수 등을 통해 지분을 확보해 올해 3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약 41%로 최현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34%를 앞질렀다. 

영풍MBK 연합은 앞서는 지분율을 앞세워 이사회를 장악하려고 했지만, 최 회장 측이 회심의 영풍이 보유한 의결권을 무력화시키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며 방어에 성공했다.

회심의 카드는 순환출자고리 생성을 통한 영풍 측 의결권 제한이었다. 고려아연은 3월 주총 직전 호주 자회사 썬메탈홀딩스(SMH)와 손자회사 썬메탈코퍼레이션(SMC)를 통해 영풍 지분 10.3%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영풍->고려아연->SMH->SMC->영풍' 이라는 순환출자 구조를 강제로 만들어냈다. 이때문에 영풍은 보유한 지분 26.28%에 해당하는 의결권이 상호주 제한에 묶이고 말았다. 

의결권이 묶인 영풍은 결국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에 실패했다. 3월 임시주총 결과 고려아연 이사진은 최윤범 회장 측 11명, 영풍MBK연합 측 4명으로 구성됐다. 결국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영풍과 MBK는 유한회사 YPC를 설립하고 고려아연 지분 26.28%를 현물출자해 상호주 관계를 해소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상법 368조에 따르면 주총 의결권 명부는 지난해 12월31일 정해져있기 때문에 올해 임시주총에서는 YPC를 통한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결국 영풍·MBK연합은 내년 주총에서 다시 한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고려아연은 의결권 제한을 통해 올해는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내년에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고려아연은 9월 현대차그룹과 공동설립한 해외법인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527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유상증자 결과 HMG글로벌은 고려아연 지분 5%를 확보했는데, 이는 최 회장 측의 우호지분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HMG글로벌 신주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6월 1심에서 고려아연이 패소했다. 해당 판결이 확정되면 5%지분의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 고려아연은 현재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법원은 고려아연이 정관을 위반해 현대차그룹의 HMG글로벌에 신주를 발행한 것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때문에 5270억원 규모 유상증자의 법적 효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저마다 불리한 상황을 안고 있는 가운데 결국 경영권 분쟁은 해를 넘겨 내년 주주총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 3월 주주총회 캐스팅보터는 '소액주주'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후임 이사 안건을 놓고 벌이는 양측의 표 대결이다.

현재 이사회 구성은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연합 측 4명이다. 하지만, 최 회장을 포함한 6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된다. 이 때문에 내년 3월 주총에서는 양측의 치열한 표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내년 주총에서의 의결권은 상호주 제한이 사라지는 영풍ㆍMBK연합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소액주주들의 표심은 유동적인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6월 기준 고려아연의 소액주주 비율은 15% 수준이다. 소액주주를 모두 포섭하는 쪽이 결국 주주총회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고려아연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와 손잡고 소액주주 설득에 나서는고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 최 회장과 박기덕 사장이 액트의 이상목 대표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11일 이들을 상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영풍측은 "최 회장과 박 사장이 회사 자금을 이용해 주주총회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고, 이 대표는 이를 수수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려아연측은 "정상적 계약을 왜곡하려고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소액주주들은 홈플러스를 위기에 몰아넣은 MBK에 대한 불신감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관련, 소액주주들의 모임인 헤이홀더는 지난 4월 논평을 내고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는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언론은 물론 여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질타를 받는 상황이어서 여러 가지로 힘든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소액주주들의 표심은 고려아연쪽에 다소 유리하다는 판세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내년 3월 주총까지는 아직도 6개월 이상 시간이 남아있어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 3월 주총에서 고려아연과 영풍ㆍMBK연합간 표 대결에서 누가 승리의 월계관을 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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