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박현우 기자]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복도, 약국에서 나온 흰색 로봇이 간호사들 사이를 스르륵 비켜가며 병동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선 로봇은 스스로 버튼을 눌러 탑승하고, 목적지 층에 도착하면 정해진 약품 보관함에 의약품을 전달한다. 간호사의 손길 없이도 하루 수십 차례 반복되는 풍경이다.

물류공장을 누비는 AMR 이미지 [사진은 AI로 생성]
물류공장을 누비는 AMR 이미지 [사진은 AI로 생성]

스스로 길 찾는 로봇, 산업 현장 주역으로

자율이동로봇(AMR, Autonomous Mobile Robot)이 물류창고를 넘어 병원, 호텔, 제조 현장 등으로 활용 영역을 급속히 넓히고 있다.

과거 정해진 경로만 따라가던 무인운반차(AGV)와 달리, AMR은 SLAM(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 기술과 Lidar 센서 등을 활용해 스스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최적 경로를 찾아 이동한다.

사람과 장애물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피해가며, 상황에 따라 경로를 변경하는 ‘진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물류를 넘어선 AMR, 의료·서비스업 진출 가속

AMR의 첫 격전지는 물류창고였다.

아마존은 2012년 키바 시스템즈를 인수한 뒤 수만 대의 AMR을 풀필먼트센터에 투입했고, 국내에서도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AMR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물류시장에서 활용성과 기술력을 입증한 AMR은 이제 활약 무대를 넓히고 있다.

의료 현장이 대표적이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들은 의약품·검체·린넨 등을 운반하는 AMR을 운영 중이다.

부족한 간호 인력을 대체하는 모양새다. 단순 운반 업무를 AMR이 담당하면서, 간호사들은 환자 케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호텔과 외식업계도 AMR 도입에 적극적이다.

서빙 로봇은 이미 전국 식당과 카페에서 흔한 풍경이 됐고, 특급호텔들은 객실 서비스와 린넨 배송에 AMR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서비스 선호도가 높아진 데다 서비스업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AMR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술적 난이도가 가장 높은 제조 현장에서도 AMR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공정 간 부품 이송에 AMR을 투입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생산 트렌드 변화로 다품종 소량생산이 늘어나면서 유연하게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AMR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기존 AGV는 생산라인 변경 시 바닥의 자기테이프나 반사판을 다시 설치해야 했지만, AMR은 소프트웨어 설정만 바꾸면 된다.

기술 진화와 RaaS 모델이 확산 이끌어

AMR 활용 확대의 배경에는 기술 발전이 있다.

초기 AMR은 주로 Lidar 센서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AI 카메라, 초음파 센서 등을 함께 활용하는 '멀티센서 퓨전' 방식이 보편화됐다.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까지 인식해 더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대의 AMR을 동시에 운영하는 ‘플릿 매니지먼트(Fleet Management)’ 기술도 성숙했다.

중앙 관제 시스템이 각 로봇의 위치와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업무를 할당하고 충돌을 방지한다.

물류공장을 누비는 AMR 이미지 [사진은 AI로 생성]<br>
물류공장을 누비는 AMR 이미지 [사진은 AI로 생성]

서로 다른 제조사 로봇들도 ROS(Robot Operating System) 어댑터를 통해 협업할 수 있는 이기종 통합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도 AMR 확산을 돕고 있다.

과거에는 로봇을 구매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RaaS(Robot as a Service)’ 모델이 확산되면서 구독 방식으로 AMR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초기 투자 부담이 줄어들면서 중소제조업체와 중소형 병원, 호텔들도 AMR 도입 검토에 적극적이다.

활용 영역이 넓어지면서 AMR 시장은 급성장세가 뚜렷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세계 AMR 시장은 2025년 22억5000만 달러에서 2030년 45억6000만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며, 연평균 성장률(CAGR) 15.1%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Grand View Research와 Mordor Intelligence 등 다른 주요 시장조사기관들도 15~20% 수준의 높은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표준화와 안전 규제, 넘어야 할 과제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표준화다.

제조사마다 통신 프로토콜과 인터페이스가 달라 서로 다른 AMR을 함께 운영하기 어렵다.

유럽에서는 VDA 5050 같은 표준 프로토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업계 차원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전 규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AMR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충돌이나 사고 위험이 있다. 센서와 안전 장치가 발전했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edge case)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병원이나 호텔처럼 고객 접점이 많은 곳에서는 아직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한 AMR 제조사 관계자는 “물류창고에서 검증된 기술이 다양한 산업으로 퍼지고 있다”며, “5G 통신, AI 기술 발전과 맞물려 AMR 활용 범위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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