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사진= 각 사
(위부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사진= 각 사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정부가 올해 말 진행하는 2차 ESS(에너지저장장치)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 ‘안전성·기술력·국내 기여도’ 등 비가격 항목의 비중을 크게 높이면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입찰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에서 국내 첫 LFP(리튬인산철) 양산 체제를 공식화하며 시장 판도를 뒤흔드는 승부수를 띄우자, 1조원 규모로 펼쳐질 이번 입찰이 사실상 ‘국산 LFP 경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1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7일 충북 오창 에너지플랜트에서 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 구축을 공식 발표하며 국내 양산 기반 확보를 공식 선언했다.

이는 중국 난징과 미국 미시간에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의 세 번째 LFP 생산기지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기업 중 국내·해외 모두에 LFP 양산 체계를 구축한 유일한 사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새로운 오창 라인을 통해 2027년부터 약 1GWh 규모의 본격 양산을 시작하고, ESS 전용 공급 체계를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내놨다.

이번 오창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배터리 셀 제작을 넘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까지 포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LFP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구조’로 전환해 협력사 생태계 강화, 지역 고용 창출, 공급망 내재화 등 다양한 효과를 동시에 거두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산화 기여도 점수에서 뒤처진 1차 입찰의 한계를 LG에너지솔루션이 전략적으로 보완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이미지=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이미지=LG에너지솔루션

1차 입찰 패배 원인, ‘국내 기여도’…LG엔솔, LFP 방향 전환 촉발

앞서 지난 5월 진행된 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는 삼성SDI가 80% 이상을 수주하며 압승한 바 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공장에서 생산한 LFP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으나, 정부가 새롭게 반영한 ‘국내 산업 기여도’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은 중국산 ESS 배터리의 공공 조달 진입을 사실상 제한하기 위한 장치였고, 중국산 LFP를 공급하려던 LG에너지솔루션에도 예외 없이 감점이 적용되는 불리한 구조였다.

반면 삼성SDI는 울산 공장을 중심으로 NCM 등 삼원계 배터리의 국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전략으로 높은 기여도 점수를 확보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다소 불리했음에도 국내 생산 기반이 입찰 평가에서 상대적 우위를 가져온 셈이다.

이같은 결과는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는 ‘국내 생산 체계 없이는 2차 입찰에서 재도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오창 LFP 라인 구축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차 입찰부터 달라진 평가 비중…기여도·안전성 대폭 강화

실제로 한국전력거래소가 지난 17일 개최한 ‘2026년 2차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자 설명회’에서는 평가 구조가 대폭 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2차 사업 규모는 1차와 유사한 총 540MW, 전체 사업 규모는 1조원대, 준공 시점은 2027년 12월로 설정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가격평가 비중이 60%에서 50%로 줄고, ‘비가격평가’가 50%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비가격평가에는 ▲계통연계 ▲산업·경제 기여도 ▲화재·설비 안전성 ▲기술능력 ▲주민수용성·사업준비도 ▲사업신뢰도 등 총 6개 항목이 포함됐다.

특히 최근 ESS 화재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화재·설비 안전성 배점이 22점에서 25점으로 상향됐다. 배터리 안전성 검증이 강화되면서 기업 간 기술적 차별화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SDI의 삼성배터리박스(SBB) 1.5./사진=삼성SDI
삼성SDI의 삼성배터리박스(SBB) 1.5./사진=삼성SDI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번 평가 구조 변화에 대응해 각자의 강점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LFP 자체의 높은 안전성을 핵심 전략 자산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LFP는 셀 열폭주 개시 온도가 약 270도, 삼원계 대비 60~90도 높아 안전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원가 변동성이 큰 니켈·코발트를 사용하지 않아 가격 경쟁력도 10~15% 우위로 평가된다.

삼성SDI는 앞선 1차 입찰에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로 80% 수주하는 압도적 성과를 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2차 입찰은 ‘가격·기술·안전·기여도’를 균형 있게 따지는 구조가 됐고, LFP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 인 NCA가 이전처럼 평가에서 우세 판정을 받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삼성SDI가 다시 가격을 크게 낮추는 전략을 선택할 경우 치열한 가격 경쟁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SK온 역시 수주 전략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1차 입찰에서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한 SK온은 올해 9월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1GWh 규모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ESS 전용 LFP 양산 능력’을 확보했다.

국내 LFP 라인을 준비 중이라는 업계 전망도 있어 2차 입찰을 앞두고 본격적인 체질 개선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온 컨테이너형 ESS 제품./사진=SK온
SK온 컨테이너형 ESS 제품./사진=SK온

LFP 양극재 국산화 여부도 변수…‘100% 국내 생산’ 기준 놓고 해석 분분

아울러 이번 2차 입찰에서 ‘LFP 양극재를 어디서 조달하느냐’의 문제도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셀을 조립하더라도 양극재를 중국에서 들여오면 기여도 점수에서 차이가 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ESS 배터리의 국내 공급망 내재화를 지속 강조해온 만큼, LFP 양극재의 국산화 여부가 실제 평가에서 의미있는 차별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 LFP 라인의 ‘소부장 국산화’를 명확히 제시한 것도 이같은 평가 기준을 선제적으로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의 LFP 양산은 ESS 시장뿐 아니라 국내 완성차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저가 라인업’ 중심으로 LFP 채택을 확대하고 있어, 현재 SK온 중심이던 완성차 공급망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오창에서 LFP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 현대차·기아 공급망에 진입할 전략적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시장 상황이 맞물릴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1GWh 이상의 추가 증설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ESS업계 한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 LFP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장 신설이 아니라 향후 10년간 ESS 사업뿐 아니라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전략까지 흔드는 대형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국내 배터리 3사가 모두 LFP 경쟁으로 이동하면서 2차 입찰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더스트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