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햇빛이 대한민국 제조업을 깨우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공장 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에서 생산된 전기가 산업 현장을 움직이고, AI를 비롯한 데이터센터, 첨단제조업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RE100, CBAM, ESG 경영과 같은 글로벌 기조는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산업 에너지 공급과 수요 체계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공급망 전체로 확장하면서 이들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제조시설이 집중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단지 내 재생에너지 기반 조달 역량은 향후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로 부상하며 기업들의 ‘기후 리스크’ 대응 전략에서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단지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장소를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거점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사진=gettyimages]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대응해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산업단지 내 6GW 규모의 태양광 보급을 목표로 하는 ‘산단 태양광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산단 태양광 산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정부는 RE100 산업단지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산업부와 국토부, 기재부, 한전, 산단공 등 관계기관 합동 ‘RE100 산업단지 추진 TF’를 구성했다. 

RE100 산업단지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입주 기업의 RE100 목표 달성을 뒷받침하고,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 모델이다. 제도 개선, PPA 활성화, 인센티브 설계 등 에너지 인프라 재편의 핵심 축으로 산업단지를 바라보는 정책 관점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이에 업계에서는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3자 PPA, 가상 PPA, ESS 연계 모델 등 새로운 전력시장 메커니즘 도입과 공공주도형 산단 태양광 참여 방안, 지자체 연계를 통한 에너지 자립 기반 구축 등 다각적인 논의되고 있다. 

전국 산업단지 현황 통계 [자료=정부 공공데이터포털]

RE100 산단 TF 출범, 제도 개선에 속도 붙나

정부가 공개한 ‘전국 산업단지 현황 통계(2025년 1분기 기준,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에 따르면, 전국 산업단지는 총 1,331개, 지정 면적은 약 1,471km2에 달한다. 이 방대한 면적을 활용하면 산업단지 태양광의 잠재 용량이 50GW 이상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전체 산업단지 면적의 15%에 500W급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다고 가정하면 약 55GW 규모의 설비를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잠재량은 이론에 가깝다. 현장에서는 노후화된 기반시설, 지붕 구조의 제약, 배전망 용량 문제, 각종 인허가 절차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설치 가능 면적은 이보다 훨씬 적다. 제도적·기술적 장벽을 넘지 못하면 산업단지 태양광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속도감 있는 재생에너지 정책 설정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이 직접 주도한 ‘RE100 산업단지 TF’ 구성과 같은 정책 드라이브는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과 제도 정비에 탄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TF 회의에선 RE100 산단에 대기업 2곳 이상 유치, 전기요금 할인, 규제완화 등 실질적 유인책을 논의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실행력을 갖춘 정부 정책이 등장했다”며, “제도적 병목만 해소된다면 산업단지는 재생에너지 확산의 실질적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산업부는 최근,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직접 PPA 참여 시 적용되던 1MW 초과 용량 요건을 폐지했다. 이로써 중소기업도 산단 내 유휴 지붕이나 소규모 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중소기업이 그간 비용·용량 기준으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웠던 직접 PPA 시장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산업단지 내 유휴부지나 지붕 면적은 개별 기업 단위로는 1MW를 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이번 요건 폐지는 재생에너지 확산의 저변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이 중소기업의 RE100 대응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REC 제도 개선, 표준계약서 보급 등 후속 제도 정비도 함께 이뤄져 더욱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를 위해선 기술보다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진=gettyimages]

기술보다 제도 개선이 시급… 업계 “통합 지원 체계 나와야”

산업단지 태양광과 관련해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기술보다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입주기업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수익성·계약 안정성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하며, 설치 이후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통합 에너지 전략이 절실하다는 데 업계는 한목소리를 냈다.

나주시 강상구 부시장은 “산단 태양광이 활성화되려면 ESS를 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는 가상PPA 구조나, 지자체-공기업-기업 간 분산 전력 연계 모델이 필요하다”며 “한전과의 송배전 협의도 병행돼야 실효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정춘옥 팀장은 “전국 산단에 걸쳐 보급률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나 유휴부지와 지붕을 중심으로 2.2GW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단지별 입주기업 특성과 법인 소유권 문제로 인해 표준화된 수익모델 개발이 어렵지만 SPC 및 수익공유형 사업모델로 이를 보완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성이엔지 김신우 상무는 “정부와 업계 간 협력은 산업단지 태양광 사업의 성공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언급하며, “특히 기업들이 투자 수익률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만큼,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붕형 태양광의 인허가 간소화, 보증보험과 세제 혜택 확대, ESS 설치에 대한 금융지원 및 RPS 가중치 상향 등이 요구된다”고 뜻을 밝혔다.

한편 본지가 진행한 산업단지 입주기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태양광 설치를 고려하고 있는 기업의 63%가 ‘설치 후 운영 불확실성’을 주요 우려로 꼽았다. 특히 ‘REC 가격의 변동성’과 ‘PPA 계약 조건의 복잡성’은 사업 지속성에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지적됐다. 또한 전체 응답 기업 중 72%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정 부분 수익을 보장해준다면 참여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산업단지 태양광 사업의 제도적 기반에는 기대를 걸고 있지만, 동시에 금융, 수익성, 운영 안정성에 대한 해소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확산은 어렵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산단 태양광, 대한민국 제조업을 움직이는 엔진으로

산업단지는 우리 경제의 엔진이자 에너지 소비의 중심지다. 이제 이 공간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장소를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거점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산업단지 태양광은 단순한 설비 보급이 아니라 제조업의 지속가능성과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자산이자 기후위기 시대 산업 생태계를 지켜낼 시스템 구축의 시작점이다.

정부는 RE100 산업단지 정책을 통해 방향성을 제시했고 제도 개선과 금융 지원, 공공주도 플랫폼 설계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넘어야 할 벽도 높다”는 데 모이고 있다. 기업들은 복잡한 계약구조, 불안정한 수익성, 금융 접근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제약 앞에 주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장애를 해소하는 세밀한 정책 설계와 실행이 절실한 상황이다.

산단 태양광의 성공은 기술이나 예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의 신뢰, 기업의 참여, 제도의 유연함이 삼박자로 맞물려야 한다. 정부가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는 민간의 동력이 뒤따르고 그 동력이 지속되도록 뒷받침하는 디테일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햇빛이 대한민국 제조업을 깨우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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