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박한구 명예회장] 스마트팩토리, 인공지능, 디지털트윈. 수년 전부터 제조 현장에서 화두로 떠오른 키워드들이지만, 실제로 이를 전사적 수준으로 확산해 수익모델로 연결한 기업은 드물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PoC(Proof of Concept)라는 ‘시범사업의 덫’에 있다. 많은 기업이 AI와 디지털트윈 기술을 일부 공정에만 시험 적용해보고, 가시적 성과가 없거나 내부 저항에 부딪혀 확산을 멈추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확산시킬 전략과 조직, 비즈니스 모델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도입됐지만, 운영되지 않고, 운영되더라도 단기 성과에 그쳐 장기적인 혁신 전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PoC의 함정’에 빠진 국내 제조 현장의 현실을 먼저 직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많은 AI 스타트업이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비전 검사, 품질 불량, 설비 고장 예측 등의 문제 해결형 솔루션을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픈소스 기반 모델은 실사용 환경에서의 2% 부족함을 극복하지 못해 KPI를 만족시키기 어렵고, 도입 후 유지와 확산이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 여기서 말하는 ‘2% 부족함’이란 정밀도와 신뢰도에서 고객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다양한 설비 환경과 데이터 조건에서 범용성과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제는 오픈소스를 단순히 조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스타트업들이 특정 공정이나 산업에 특화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된 AI 알고리즘과 SaaS형 서비스로 발전시켜야 한다. 제조업 고객이 신뢰하고 지속 사용 가능한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장 실측 데이터 기반 학습, 디지털트윈과의 연계 시뮬레이션, 성능 보장형 공급계약(Performance SLA) 등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도화를 위해 스타트업은 산업별 전문 파트너사와 협업하거나, 제조업체의 공급망 협력사와 공동 개발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오픈소스는 시작점일 뿐, 확산을 위한 관건은 결국 ‘신뢰 가능한 성과’와 ‘유지·확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는 뜻이다.
SDM 확산을 위한 3대 실행 전략
SDM(Software Defined Manufacturing)을 단일 공정의 기술 실험이 아니라, 기업 전체의 수익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한 3대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Data → Insight → Action 연결 고리 구축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Insight)해 의사결정(Action)까지 연결하는 체계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SDA(Software Defined Automation), SDS(Software Defined Service) 등으로 연결되는 통합 플랫폼이 필수다. 특히 디지털트윈 기반으로 공정 데이터를 예측 분석하고 AI가 자동으로 제어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데이터의 품질과 신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국제표준 IEC 63278에 따라 정의된 AAS(Asset Administration Shell) 기반의 고품질 데이터 모델을 적용하고,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정제해 예측 분석에 활용해야 한다. 또한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시 단순한 오픈소스 조합보다는 AWS, Azure 등 글로벌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검증된 Run-Time Library와 표준 SDK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SDA, SDS 등 SDM 프레임워크간의 상호 연결성과 보안성,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고객사가 PoC 이후 다른 공정으로 빠르게 확산 가능한 SaaS 기반 솔루션을 신속하게 구현할 수 있다. 이처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기반으로 빠르게 가시성과 ROI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제조기업들이 중국·동남아 등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SDM, 기존 공장에서도 실현 가능한가?
많은 기업이 SDM은 새로 설계되는 스마트공장에서나 가능하다고 오해하고 있다. 물론 SDM은 초기 설계 단계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고, 디지털트윈과 AI를 전제로 계획된 신공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존 공장을 전면 개조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대부분 제조기업에게는 어려운 과제다.
그렇다면 기존 공장에서는 SDM 도입이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SDM의 핵심은 전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핵심 공정부터 단계적으로 ‘디지털화 → 자동화 → 자율화’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AAS 기반 데이터 정의 및 수집부터 시작한다. 기존 설비에 센서와 게이트웨이를 연결해 국제표준 AAS(IEC 63278) 형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면, 특정 공정 단위로도 디지털트윈 기반의 예측·제어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다음으로 SDA 기반 제어 시스템을 모듈형으로 확장한다.
기존 PLC 제어 시스템 위에 SDA 플랫폼을 탑재해, AI가 제시하는 제어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일정 조건하에 실행 가능하도록 한다. 이는 OT 현장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점진적으로 자율화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디지털트윈을 통해 실제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고 실험하고 학습한다.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트윈은 실제 공정을 복제해 테스트하는 ‘가상 시험장’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교대 근무자가 새로운 장비나 시나리오를 미리 학습하고 숙달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장의 저항감을 줄이고 안정적인 운영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요약하자면 기존 공장에서는 공정 단위로 SDM을 적용하고, 이를 반복 확장하는 ‘파일럿 확산형 전략’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이런 방식은 불필요한 설비 교체를 최소화하면서도, 미래 공장의 표준 구조로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경로가 된다.
기업간 플랫폼 모델 전환, SaaS & Subscription 기반 BM 혁신
기존의 하드웨어·설비 중심의 공급 방식은 더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SDM의 핵심은 하드웨어 계층과 소프트웨어 계층을 완전히 분리해, 공장 내 어느 벤더사의 장비와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되는 응용 소프트웨어(SaaS)를 통해 운영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시스템 운영과 데이터 보안 측면에서도 클라우드 환경이 우수한 대안을 제공한다.
또한 구독형 모델(Subscription), 성과 기반 요금제(Outcome-based Model), 플랫폼 기반 서비스(SaaS)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SDM을 통해 반복적으로 진화하는 운영 모델을 가능하게 하며, 중소기업에게도 낮은 진입장벽으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제조기업은 소프트웨어 자산을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고, 공급사는 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결국 한국 제조업의 디지털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전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나아가 SDM은 단순히 기술 인프라를 SaaS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간 데이터를 교환하고 협업하며, 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BM)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는 BM 혁신의 핵심 프레임인 “Who, What, How, Why”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Who 관점에서 SDM 기반 SaaS 모델은 중소·중견기업부터 대기업까지 모든 제조기업을 잠재 고객으로 포함하며, 공급망 참여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고객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What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설비 투자 대비 낮은 비용으로 디지털 전환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며, 데이터 기반의 공정 최적화, 품질 예측, 예지 정비 등의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포함한다.
How는 클라우드 기반 SaaS 플랫폼을 통해 구독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사는 초기 구축 부담 없이 빠르게 기술을 도입하고, 필요시 모듈 확장도 가능하다. Why는 고객은 투자 대비 즉각적인 ROI를 얻을 수 있으며, 공급사는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해져 양측 모두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글로벌 기업의 확산 전략 벤치마킹
AI와 디지털트윈을 기반으로 한 SDM 기술은 이제 단일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와 산업 전체의 디지털 전환 전략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 미국 등의 글로벌 선도 기업과 정부는 기술 자체보다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중심으로 SDM을 확산시키고 있다. 독일은 2011년부터 Industrie 4.0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다양한 Testbed와 Lighthouse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 전반에 디지털 전환 모델을 실험해 왔다. 이를 통해 실효성 있는 기술을 검증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확산 전략(Scale-Up)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Platform Industrie 4.0은 독일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해 국제 표준 기반의 기술과 구조를 공동 개발하는 대표 플랫폼으로, AAS·OPC-UA 등 현재 SDM 기술 확산의 핵심이 되는 데이터 표준을 주도해왔다. Manufacturing-X는 제조 데이터를 국가간, 기업간 신뢰를 기반으로 교환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제조 데이터 네트워크로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면서 협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Catena-X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OEM부터 부품사, 물류사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하나의 데이터 생태계로 연결해, 상호운용성 있는 데이터 포맷과 표준화된 API로 실시간 협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독일은 최근 Manufacturing-X Port Initiatives를 통해 국내 시범사업을 국제 데이터스페이스 네트워크로 확장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 산업에서 시작된 데이터 기반 전환을 가전·조선·자동차 등 주요 산업군으로 확장함으로써 산업 간 연계된 글로벌 확산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Lighthouse Projects는 기술 검증 단계를 넘어 실제 산업에서 성과를 입증한 사례들을 국제 벤치마킹 모델로 지정해 독일·일본·한국 등과 함께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단순한 기술 실증이 아닌 실효성 있는 운영 모델이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Cross-Border Implementation 전략도 중요하다. AAS, OPC UA와 같은 국제 표준을 기반으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데이터 주권과 보안을 준수하는 공동 거버넌스 모델이 설계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상에서 데이터 신뢰성과 연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기반이다.
이러한 전략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Scaling Up Frameworks가 필요하다. RAMI 4.0, IDTA와 같은 참조 모델을 바탕으로 산업 전반에 확산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초기 투자에 대한 ROI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SDM은 PoC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GE는 산업용 IoT 플랫폼인 Predix를 통해 항공, 에너지, 의료 산업에서 성과 기반 서비스 모델(Outcome-based Service)을 구현했다. 이는 제품 판매가 아닌 운영 성과 향상이라는 결과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고객의 성공이 곧 공급사의 수익이 되는 구조다.
또한 BMW는 자체 생산 인프라를 외부 고객에게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Factory-as-a-Service 모델을 통해 SDM 기술을 수익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벤더와의 연결성을 높여 고객 맞춤형 제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선도국과 기업들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과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가치(Value)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확산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단기 PoC를 반복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글로벌 표준 기반 데이터 생태계, 성과 중심의 서비스 모델, 산업 연합 기반 확산 전략으로 전환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한국도 독일과 같은 국제 협력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독일은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표준을 정립하고, 다양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Manufacturing-X를 통해 실질적 데이터 교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Catena-X로 산업별 구체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공급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는 혁신 촉진자(Enabler)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를 본보기로 삼아 제조 데이터의 국제 표준화와 글로벌 교환 체계를 구축하고, 특정 산업 중심의 데이터 생태계(Pilot)를 확산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여, SDM 기반의 지속 가능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현해야 한다.
기술·조직·비즈니스 모델의 3축 통합 혁신
이제 SDM의 진짜 전환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장에서 디지털트윈을 돌리고 AI가 분석해도 실제로 공정이 바뀌지 않고, 조직이 따라주지 않으며 사업 모델이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실험으로 끝나고 만다. 따라서 진정한 확산을 위해서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첫째는 기술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디지털트윈, AI, AAS(국제 표준 데이터 모델)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실제 공정에 적용되어 운영까지 이어지도록 통합돼야 한다. 기술은 단순히 보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예측하고 판단하고 자동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조직이다. 현장의 OT(운영기술) 인력, 시스템을 관리하는 IT 인력, 데이터를 다루는 DT(데이터기술) 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의 전환, 변화관리 교육, 디지털 역량 강화를 포함한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수다. 디지털 전환은 단지 기술자가 아닌 전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다.
셋째는 비즈니스 모델(BM)이다. 한 번 구축하고 끝나는 시스템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기반 SaaS, 구독형 서비스, 성과 기반 요금제 등으로 비즈니스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기업은 데이터를 통해 수익을 얻고, 공급기업은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팔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실험에서 확산으로 개별기업에서 산업 생태계로
지금까지 수많은 기술이 ‘PoC(시범적 실험)’에 그쳤던 이유는, 기술만 보고 조직과 비즈니스 모델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술+조직+BM’의 3가지 축을 동시에 혁신해야 한다. 실험(PoC)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운영과 전사적 확산으로, 장비와 시스템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수익 모델로 가야한다.
기업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 전반을 포괄하는 산업 생태계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제조업 혁신은 한 기업의 일이 아니다. 함께 연결되고,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진짜 디지털 전환의 완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