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마이크를 든 채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마이크를 든 채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구금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양국 당국 간 긴급 협의를 거쳐 이번 사태가 조기 수습 단계에 접어 들었다.

이에 구금된 근로자들의 석방 절차가 곧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단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최대 규모의 불법 체류 단속으로, 한·미 경제 협력의 상징인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한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외교·산업 채널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섰고, 미국 측도 사태 수습에 협조하면서 ‘걸림돌’이 될 수 있던 상황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7일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정부 부처와 경제 단체, 기업이 신속히 대응한 결과 구금된 한국 근로자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며 “이제 행정 절차만 남아 있으며, 절차가 끝나는 대로 전세기가 우리 국민을 모시러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 여러분이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책임 있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실장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대해 “미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권익과 대미 투자 기업의 경제 활동이 부당하게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며 “재발을 막기 위해 산업부와 기업이 함께 대미 프로젝트 출장자의 비자 체계를 점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같은날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사안이 해결된 이후에도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당정대(민주당·정부·대통령실)가 함께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 전례 없는 단속…475명 중 한국인 300여명 포함

이번 단속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요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조지아주 서배나 인근의 배터리 공장 현장에 들이닥치면서 시작됐다.

투입된 연방·지방 요원은 500명에 달했으며, 현장 근로자들을 벽에 세워 합법 체류 여부를 하나씩 확인했다. 그 결과 475명이 단속됐고 이 가운데 한국인만 300여명이 포함됐다.

단속은 당일 오후 8시까지 이어졌고, 체류 자격이 인정된 일부는 귀가 조치됐으나 나머지는 포크스턴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한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비즈니스 회의나 계약을 목적으로 한 B1 비자, 또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해 입국한 인원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두 체류 자격 모두 현장에서 급여를 받으며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조건인데, 실제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한 점이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체류 목적 위반’이라는 이유로 대규모 단속의 대상이 됐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사건 발생 이후 한국 정부는 워싱턴과 애틀랜타, 서울 등지에서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미국 측과 협의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미 양국은 단속 직후부터 각급 채널을 통해 계속 소통해왔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단속 개시 64시간 만에 석방 교섭이 타결되면서 사태는 빠른 속도로 진정됐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단기 파견 인력의 합법적 체류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강훈식 실장은 “대미 프로젝트 출장자의 체류 목적과 활동이 불일치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자 체계 개선을 검토하겠다”며 “단기 파견에 맞는 비자 신설이나 기존 제도의 유연한 운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그동안 H-1B 전문직 비자 확대, 한국인 대상 별도 쿼터 신설(E-4 비자) 등을 미국 측에 꾸준히 요청해왔지만,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최근에도 영 김 의원 등 미 연방 하원의원들이 한국 전문 인력에게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E-4 비자를 발급하는 내용의 ‘한국 동반자법(PWKA)’을 발의했으나,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측에 다시 한 번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다만 미국의 비자 제도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현행 체계 내에서 한국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부터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6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사진=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사진=연합뉴스

◆ 정부 “국민 안전 최우선”…재발 방지 총력

정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민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민석 총리는 “당정대가 함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정부는 향후 대미 투자 확대 과정에서 단기 파견 인력의 체류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한편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 이민당국의 단속에 따라 구금된 한국인들의 석방 문제 협의를 마무리하고 유사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미국 당국과의 협의차 8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조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인 석방 문제의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측의 협조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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