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관계사 직원들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관계사 직원들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구금된 사건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충격파는 여전히 한국 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현지 공장 가동 지연은 물론 한미 간 경제·산업 협력까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8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 당국의 이번 구금 사태로 미국에 생산 시설을 건설하거나 가동을 준비 중인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은 기존의 미국 출장 관행을 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 마련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 韓 근로자 구금 사태 여파…재계, 잇단 비상조치

한국 기업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온, 삼성SDI, LS전선, CJ제일제당 등 다수의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특히 한화그룹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일환으로 미국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당국의 무리한 불법체류 단속으로 우리 기업들의 엔지니어 파견과 협력사 출장 업무가 줄줄이 중단되며, 공장 가동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구금 사태와 관련해 각 기업들의 대처를 구체적으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B-1, B-2 비자를 발급받은 직원은 자택 대기, ESTA 입국자는 즉시 귀국 조치를 내렸다.

이미 현지에 나가 있는 출장자들 역시 공장 출근을 중단하고 숙소에서 업무를 마무리하도록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고객사 미팅을 제외한 모든 미국 출장은 전면 금지됐다.

현대차 역시 “필수 출장만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현대차는 미국에 있는 주재원 등은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아 근무 중인 만큼 별도 조치 계획이 없으나, 이민법 및 고용 확인 요건을 철저히 점검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벌인 불법체류자 단속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구금된 가운데 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LG에너지솔루션 김기수 인사최고책임자(가운데)가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벌인 불법체류자 단속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구금된 가운데 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LG에너지솔루션 김기수 인사최고책임자(가운데)가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 초부터 미국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지자 일부 기업에서는 미국 출장 시 유의점을 내부적으로 공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6월 삼성전자는 “ESTA를 활용한 출장 중 취지에 맞지 않는 일정 운영으로 입국이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ESTA를 활용한 미국 출장 시 최대 체류 일수는 2주 이내로 하고, 2주 초과 시 담당자에게 문의해 달라”고 공지한 바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상징이 된 1500억달러 규모 마스가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조선업계도 바짝 긴장 중이다.

이들 업체는 당장 대규모 설비 공사가 진행 중인 건이 없지만, 기술 협력이나 현지 사업 조율을 위해 소규모 출장이나 주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지난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 측은 현재 파견자 수십 명 모두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美 정부의 미국인 고용 주장…현실성 없어”

이번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 단속을 넘어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하려면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트럼프의 무언의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는 “전기‧전자 공사나 첨단시설 설치 같은 고난도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미국인 근로자는 사실상 찾기 어렵다”며 현실성을 문제 삼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 심리에 드리운 불안감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허용되던 출장 및 근무 형태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데다, 민감한 한미 관세 협상 시점에 대규모 단속이 이뤄지면서 양국 관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태 수습 의지를 보이고 있고, 우리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기업과 공조해 출장자 비자 체계 점검 및 개선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10년 넘게 추진해 온 1만5000개 규모의 E-4 전문인력 취업비자 신설 법안이 여전히 미국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이라 제도 개선이 언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사 수주 물량을 맞추려면 공장을 제때 완공해야 하는데, 미국 정부 조치로 일정이 전반적으로 흔들릴까 우려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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