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울산광역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이번 추석연휴 기간중 또 다시 하청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챔버(밀폐 공간) 참사로 직원 세 명이 사망한 비극이 채 잊히기도 전에, 이번에는 철거 공사 현장에서 안전장치 조차 갖추지 못한 채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원청의 책임 회피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 중대재해처벌법의 허점이 산업현장의 죽음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거센 형국이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3일 밤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하청노동자 한 명이 상부 덕트 철거 작업 중 5m60㎝ 아래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다음날인 4일 새벽 사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현장에 대한 보전 조치를 마치고, 현대차 및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안전관리 책임 여부를 조사 중이다.

고용노동부도 즉각 사태 파악에 나서 “해당 작업 구간의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원청의 관리감독 의무가 다해졌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 구간은 원청(현대차) → 하청 → 재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추락 방지망이나 안전 난간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노동계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사망 사고 후 즉각 성명을 내고 현대차의 구조적 안전 불감증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사고는 하청업체의 관리 부실이 아니라 원청의 안전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 명백한 인재”라며 “현대차는 매번 ‘유감’으로 일관하며 노동자의 죽음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기업 문화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또 “철거 공정 전체를 전면 중단하고, 원청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죽음 위에 세워진 기업의 생산라인은 결코 정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면서 "관계 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짧은 입장만을 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또다시 되풀이되는 형식적 사과일 뿐”이라는 냉소가 새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동자 추락사고 현장./사진=전북특별자치도 소방본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동자 추락사고 현장./사진=전북특별자치도 소방본부

◆ 챔버 질식사에서 추락사까지…“사람이 죽어도 달라지지 않는 기업”

이번 전주공장 사망 사고는 현대차의 안전관리 부실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드러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 차량 실험동 챔버에서 차량 테스트를 진행하던 연구원 3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참사가 발생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후 현대차 본사와 울산공장, 남양연구소 등 주요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무려 산업안전보건법 62개 조항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밀폐공간 출입금지 조치 미이행, 추락 방호조치 미비, 유해물질 자료 미게시 등 ‘기본 중의 기본’ 안전수칙이 무시된 정황이 밝혀진 셈이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3월 현대차에 과태료 5억4528만원을 부과하고 40개 항목에 대해 사법조치를 예고했지만, 정작 지금까지 실질적 처벌이나 경영진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3월까지 현대차그룹 계열사 전반에서 총 23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23명이 사망했다.

현대건설(8건), 현대제철(4건), 현대엔지니어링·현대비앤지스틸(각 3건), 현대자동차(2건), 현대모비스·기아 등 계열사 전반에서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기업 솜방망이 수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그 어느 사건에서도 현대차그룹 경영진이 기소된 적은 없는 실정이다. 특히 2022년 3월 전주공장 사망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 2년 7개월 만에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한 바 있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대기업에는 사실상 무력화된 법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재명 대통령이 '충분히 예측되는 추락사고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깝다'고 말했지만 산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단호한 조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오는 주말 전주공장 앞에서 ‘하청노동자 추락사 규탄 및 원청 책임 촉구 집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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