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김은경 기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4개월 만에 다시 1410원을 넘어섰다. 미국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타나며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미 간 관세 협상 차질과 3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요구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환율은 달러당 1410원60전을 기록해 전날 종가(1400원60전)보다 10원 이상 급등했다. 오전 9시 27분경에는 장중 한때 1412원10전까지 오르며 지난 5월 15일 이후 약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은 달러화 강세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25일(현지시간),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를 연율 기준 3.8%로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잠정치(3.3%)보다 0.5%p 상향된 수치로, 2023년 3분기(4.7%) 이후 7분기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고용 지표 역시 뚜렷한 둔화 없이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탄탄함에 따라 Fed는 금리를 급격히 내릴 이유가 줄어들었고, 이에 따른 달러 약세 가능성도 낮아진 것이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전날보다 0.70% 오른 98.485를 기록하며 98선을 돌파했다.
여기에 한국 고유의 불안 요인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차질이 생기면서, 한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압박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간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금액이 3500억 달러(약 490조원)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이 금액을 더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한국이 실제로 3500억 달러 이상을 단기간 내 현금으로 투자해야 한다면,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서 외환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162억 달러로, 이 요구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움직임도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 대거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이 이날 오전에는 순매도로 돌아선 상황이다.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환율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환율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한국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의 절대 수준보다는 ‘변동성’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 환율은 수준뿐 아니라 변동성까지 커지고 있어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환율 불안이 확대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집값 불안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환율까지 급등할 경우 기준금리 인하는 오히려 금융 불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금통위는 이러한 복합적인 경제 지표와 시장 심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