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좌진 롯데카드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해킹 사고로 인한 고객 정보 유출사태에 대해 대고객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해킹 사고로 인한 고객 정보 유출사태에 대해 대고객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기업 브랜드 사용료’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챙기면서도 문제만 터지면 "우리 기업과는 무관한 회사”라며 손절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판만 보고 해당 그룹 계열사로 착각하기 쉽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떠안아야 할 주체가 모호해지는 모순적 구조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롯데카드 해킹 사태는 이같은 ‘회사 이름 빌려주기’ 관행이 남긴 혼선과 허점을 여과없이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카드에 치명적인 해킹 사고가 발생하며 그 피해가 일파만파 번지자 롯데그룹은 자사의 사명을 쓰고 있는 롯데카드를 ‘손절’하고 나섰다.

앞서 롯데카드는 2019년 MBK파트너스에 매각된 이후에도 ‘롯데’ 간판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이에 대다수의 롯데카드 사용자들이 이 카드사를 자연스레 롯데그룹 계열사로 인식했고, 롯데그룹은 이번 해킹 사태와 관련해 비난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자 롯데그룹은 이례적으로 “롯데카드는 우리 계열사가 아니다”는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하며 롯데카드와 확실한 선 긋기에 나섰다.

롯데그룹은 주말이었던 지난 21일 입장자료를 통해 “롯데카드는 롯데그룹에 속한 계열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객 오인으로 인한 브랜드 가치 훼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어 “롯데카드 해킹 사고로 인해 롯데는 회복하기 어려운 유무형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롯데카드 측에 브랜드 가치 훼손과 고객 신뢰도 하락 등 중대한 피해를 입은 데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브랜드 사용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매각하고서는 고객 오인으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롯데그룹의 롯데카드 매각가 약 1조4000억원에는 브랜드 사용료가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롯데카드에 롯데 없고, SK증권에 SK 없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이름만 남은 계열사’ 사례가 드물지 않다.

SK증권은 과거 SK그룹 소속이었으나 사모펀드 J&W파트너스에 매각 된 후에도 여전히 ‘SK’를 달고 영업 중이다. SK렌터카 역시 법적으로는 SK그룹과는 거리가 멀다.

 

MG손해보험 건물 앞에 적색 신호등이 들어와 있다./사진=연합뉴스
MG손해보험 건물 앞에 적색 신호등이 들어와 있다./사진=연합뉴스

새마을금고(MG)라는 이름을 앞세운 MG손해보험도 실제 운영 주체는 새마을금고가 아니었지만, 간판만 보고서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새마을금고의 계열사로 오인하기 쉽다.

결국 MG손해보험이 파산 위기에 몰리자 새마을금고마저 이미지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대우(DAEWOO) 브랜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 기업이었던 ‘대우' 그 자체는 사라졌지만 대우라는 이름만 남아 전세계를 떠돈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다.

대우그룹은 해체 이후 상표권이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넘어갔고, 포스코는 2021년 5월 대우 상표권을 해외 기업에 라이선스로 빌려줬다.

실제로 터키 가전업체 베스텔(Vestel)은 지금도 ‘대우’ 로고를 달고 유럽 전시회에 제품을 내놓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우가 아직 살아 있네”라고 착각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 이름값만 챙기고, 책임은 ‘나몰라라’

문제의 본질은 책임의 불명확성이다. 평소에는 그룹 이미지 덕을 보면서도 사고가 터지면 “우리와는 관계없다”는 입장만 내놓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그룹 역시 롯데카드에 브랜드 사용료를 포함해서 회사를 매각했다. 결국 이름 값은 챙기면서도 위기 앞에서는 슬쩍 발을 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명의 역설(逆設)’이라고 정의했다. 매각된 기업 입장에서는 친숙한 브랜드 덕에 시장에서 유리하고, 원 소유 그룹은 사용료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위기 때는 불똥이 원 소유 그룹으로 튀면서 소비자 혼선과 이미지 손상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롯데카드 해킹 사태에서도 피해 보상은 롯데카드가 책임져야 하지만 대중의 인식은 어이없게도 롯데그룹으로 향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한 브랜드 전문가는 “결과적으로 피해는 카드사와 그룹이 나눠 떠안는 꼴이 됐다”며 “소비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요구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그룹 입장에서는 애써 쌓은 브랜드 가치가 한 순간에 흔들리게 된 상황에 곤혹스러울수 밖에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이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계약 당시부터 소비자 보호, 책임 주체 명확화, 표시 의무 강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감독하는 당국 역시 대형 금융·정보 사고가 터질 경우 실효적인 책임 소재와 보상 체계를 어떻게 마련할지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또 다른 브랜드 전문가는 “롯데카드 해킹 사태는 단순한 정보 유출 사건이 아니다”며 “이름만 빌려 쓰는 기업 관행이 얼마나 소비자 혼선을 키우고, 또 그룹 이미지에 얼마나 큰 치명적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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