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2025년 들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규제와 공급망이라는 두 축이 기업 전략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외국우려기관(FEOC) 조항, 유럽의 CO2 규제 강화, G7과 EU의 희토류 수출 규제 논의 등 각국의 정책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원자재 확보와 지역별 생산 체계 구축은 배터리 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배터리 기업들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규제 적합성 확보, 소재 다변화, 재활용 및 순환경제 연계 등 ‘지속가능한 밸류체인’을 동시에 완성해야 하는 복합 과제에 직면해 있다.
2025년 1~8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288.3GWh로 전년 동기 대비 27.3% 성장했다. 성장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지역별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북미 시장은 FEOC 규정 강화에 따라 현지 조달 체계 구축이 본격화되며, 완성차 기업들은 리튬·니켈 등 핵심 소재의 원산지 기준에 맞춘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은 BEV 중심에서 PHEV와 중소형 SUV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수익성 회복과 시장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 반면 인도·동남아 지역은 LFP 중심의 저가형 모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했다.
각 지역의 수요 구조가 뚜렷하게 달라지는 가운데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기술 우위뿐 아니라 ‘정책 대응력’과 ‘시장별 전략 유연성’이 중장기 경쟁의 핵심 역량으로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는 여전히 CATL과 LG에너지솔루션이 이끌고 있다. 두 기업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며 치열한 선두 경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6월 이후 5위권으로 진입한 BYD는 148%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BYD는 내수 기반의 한계를 벗어나 유럽 시장에서만 26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확장했다. 3위 SK온, 4위 파나소닉, 6위 삼성SDI를 중심으로 한 중위권 경쟁도 한층 치열하다.
K-배터리 3사는 이제 ‘프리미엄-보급형’ 이원화 전략을 중심으로 시장 대응 체계를 정교화하고 있다.
고에너지밀도 NCM 배터리를 앞세운 북미 고성능 시장 공략과 더불어 LFP·LMFP를 활용한 보급형 모델 대응을 병행함으로써 고객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조달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시에 원자재 가격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해외 합작 투자, 재활용 및 순환소재 확보 전략도 가속화되고 있다.
결국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은 생산량이 아닌 ‘규제 적응력과 공급망 독립성’, 그리고 ‘지속가능한 설계 역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025년은 기술과 품질을 넘어 각국의 정책 변화를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흡수하느냐가 K-배터리의 미래 경쟁력을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2025년 1~8월 중국외 배터리 사용량 ‘약 288.3GWh’… 27.3% 성장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8월 판매된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EV, PHEV, HEV)에 탑재 배터리 총 사용량은 약 288.3GWh로 전년 동기 대비 27.3% 성장했다.
2025년 1~8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6.5%p 하락한 38.3%를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동기 대비 11.2%(61.3GWh) 성장하며 2위를 유지했고, SK온은 19.8%(29.0GWh)의 성장률을 기록해 3위에 올랐다. 반면, 삼성SDI는 9.0%(20.0GWh)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판매에 따른 K-배터리 3사의 배터리 사용량을 살펴보면, 삼성SDI는 △BMW △아우디 △리비안 등의 순으로 공급 비중이 높았다. BMW는 i4, i5, i7, iX 등 주요 전동화 모델에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으며, 탑재 차량 모두 전반적으로 판매량 증가에 따라 배터리 탑재량 또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비안은 R1S, R1T가 미국에서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 Gotion의 LFP배터리를 적용한 스탠다드 레인지 트림이 새롭게 출시되며 삼성SDI의 공급 비중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아우디는 PPE 플랫폼 기반의 Q6 e-Tron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전년 동기 대비 15.9%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를 기록했다.
SK온의 배터리는 주로 △현대차그룹 △메르세데스-벤츠 △포드 △폭스바겐 등의 주요 완성차에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아이오닉5와 EV6의 탑재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폭스바겐 ID.4, ID.7의 견조한 판매량도 SK온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반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포드 F-150 라이트닝의 판매량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익스플로러 EV의 판매량 호조로 포드향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은 주로 △테슬라 △쉐보레 △기아 △폭스바겐 등의 주요 완성차에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 모델들의 판매량 부진으로 테슬라향 배터리 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28.0% 감소했다.
반면, 기아 EV3의 글로벌 판매 호조와 얼티엄 플랫폼이 적용된 쉐보레 이쿼녹스, 블레이저, 실버라도 EV의 북미 판매 확대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를 견인한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중장기 경쟁력 확보 필요한 시점… “조달 유연성 강화해야”
주로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나소닉(Panasonic)은 올해 배터리 사용량 25.8GWh를 기록하며 4위에 올랐다. 파나소닉은 최근 강화된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및 원자재 규제에 대응해 북미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고 현지 조달 확대 및 신규 소재 확보를 통해 배터리 생산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향후 북미 시장 내 사용량 회복과 점유율 유지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36.8%(83.8GWh) 성장하며 글로벌 1위 자리를 견고히 유지했다. 중국 현지 OEM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 OEM들 다수가 CATL의 배터리를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BYD는 중국 외 시장에서도 148.6%(22.4GWh) 성장률을 기록하며 5위를 기록했다. 배터리와 함께 전기차(BEV+PHEV)를 자체 생산하는 BYD는 우수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차급에서 판매를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 내수시장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의 확장세가 두드러지며 올해 상반기 유럽 내 BYD 배터리 사용량은 8.6GWh로 전년 동기 대비 26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비(非)중국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지역별 수요 특성과 기술·공급 전략의 변화가 동시에 심화돼 배터리 기업들의 대응 방향에도 복합적인 전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며, “북미 시장에서는 IRA 규정 강화와 FEOC(외국 우려 실체) 적용 확대 논의에 따라 공급망 리스크 회피를 위한 OEM들의 조달 전략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GM과 스텔란티스를 중심으로 LFP 기반 보급형 모델 확대와 북미 내 현지 조달 전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유럽은 하반기부터 PHEV에 대한 정책 유예 기대감이 일부 부각되면서 중장기적으로 BEV 편중 구조를 조정하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며, “배터리 기업들은 NCM 고에너지 밀도 제품 중심의 기술 경쟁과 더불어 보급형 대응을 위한 LFP 및 LMFP 양산 전환 가속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SNE리서치 관계자는 “이처럼 정책 규제, 기술 전환, 지역 전략 변화가 중첩되는 환경 속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프리미엄·보급형 이원화 전략과 함께 고객사 포트폴리오 확대 및 조달 유연성 강화를 중심으로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