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뉴스 이건오 기자] 2025년 1~9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단순한 ‘성장률 경쟁’을 넘어 OEM과 배터리사의 조달·제품 전략이 전면 재편되는 전환점에 진입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외국우려기관(FEOC) 규정, 유럽의 배터리 여권제도와 CO2 규제 강화 등 글로벌 규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면서, 현지 조달·소재 다변화·지속가능 설계를 병행하는 복합적 전략 역량이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2025년 1~9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총 사용량은 338.9GWh, 전년 대비 29.7%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세 이면에는 지역별 수요 편차가 뚜렷하다. 북미에서는 FEOC 강화에 따라 현지 조달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완성차 기업들은 리튬·니켈 등 핵심소재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 유럽은 BEV 중심 구조에서 PHEV와 중소형 SUV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수익성 회복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계 배터리사의 유럽 현지 진출이 가파르게 늘며 저가형 LFP 중심의 시장 잠식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변화는 배터리 산업이 ‘생산량 경쟁’에서 ‘정책 대응력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OEM들은 각국의 규제 체계에 발맞춰 조달 구조를 세분화하고 있으며, 배터리 기업들은 기술 혁신과 더불어 규제 적합성·리사이클 체계·탄소발자국 저감 설계를 아우르는 ‘지속가능 밸류체인’을 구축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CATL과 BYD 등 중국계 기업은 유럽 현지 생산 기지를 확대하며 ‘탈중국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BYD의 유럽 내 배터리 사용량은 1~9월 기준 전년 대비 246% 증가, CATL은 36.3% 성장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이러한 중국계 기업의 공격적 확장은 유럽 내 배터리 생태계 재편을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 기업들에게 정책·기술·원가 대응의 삼중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한편, 파나소닉의 반등세도 눈길을 끈다. 북미 시장 중심의 공급망 안정화 전략을 강화하며 올해 배터리 사용량 33.0GWh를 기록,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 강화된 미국 내 원자재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고 현지 조달을 확대한 결과다. 이로 인해 중위권 경쟁 구도에도 균열이 생기며 K-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점유율은 전년 대비 소폭 하락한 38%를 기록했다.
다만, K-배터리 3사는 프리미엄·보급형 이원화 전략을 정교화하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고에너지밀도 NCM 삼원계 배터리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LFP·LMFP 기반의 보급형 제품으로 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경쟁이 ‘규제 대응력’과 ‘사업 유연성’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본다. 각국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수정·강화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고성능·고효율 제품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의미다. 소재 다변화·지속가능 설계·리사이클 생태계 구축, 그리고 탄소·규제 리스크에 대한 빠른 적응력이 향후 글로벌 시장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2025년의 배터리 시장은 ‘기술’보다 ‘전략’, ‘생산’보다 ‘적응력’이 경쟁력인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프리미엄 NCM 경쟁과 LFP·LMFP 양산 전환이 병행되는 현 시점에서, K-배터리 3사가 어떤 형태로 유연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OEM과의 신뢰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느냐가 중장기 우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025년 1~9월 중국외 배터리 사용량 ‘약 338.9GWh’… 29.7% 성장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9월 판매된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EV, PHEV, HEV) 탑재 배터리 총 사용량은 약 338.9GWh로 전년 동기 대비 29.7% 성장했다.
2025년 1~9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5.4%p 하락한 38.0%를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동기 대비 13.2%(72.7GWh) 성장하며 2위를 유지했고 SK온은 23.6%(34.3GWh)의 성장률을 기록해 3위에 올랐다. 반면, 삼성SDI는 4.5%(23.0GWh)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판매에 따른 K-배터리 3사의 배터리 사용량을 살펴보면, 삼성SDI는 △BMW △아우디 △리비안 순으로 공급 비중이 높았다. BMW는 i4, i5, i7, iX 등 주요 전동화 모델에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리비안은 R1S, R1T가 미국에서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 Gotion의 LFP배터리를 적용한 스탠다드 레인지 트림이 새롭게 출시되며 삼성SDI의 공급 비중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아우디는 PPE 플랫폼 기반의 Q6 e-Tron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3.6% 증가했다.
SK온의 배터리는 주로 △현대차그룹 △메르세데스-벤츠 △포드 △폭스바겐 등의 주요 완성차에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아이오닉5와 EV6의 탑재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폭스바겐 ID.4, ID.7의 견조한 판매량도 SK온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에 기여했다.
반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포드 F-150 라이트닝의 판매량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하반기 LFP, ESS를 양산하며 가동률 회복 및 AMPC 수취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나 핵심 고객사 포드, 현대차 등의 수요 회복이 미국 공장 가동률 개선의 관건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은 주로 △테슬라 △쉐보레 △기아 △폭스바겐 등의 주요 완성차에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 모델들의 판매량 부진으로 테슬라향 배터리 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25.3% 감소했다.
반면, 기아 EV3의 글로벌 판매 호조와 얼티엄 플랫폼이 적용된 쉐보레 이쿼녹스, 블레이저, 실버라도 EV의 북미 판매 확대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 증가를 견인한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중국계 유럽 공세·미국 현지 조달 강화… 프리미엄·보급형 이원화 전략 본격화
주로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나소닉(Panasonic)은 올해 배터리 사용량 33.0GWh를 기록하며 4위에 올랐다. 파나소닉은 최근 강화된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및 원자재 규제에 대응해 북미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고, 현지 조달 확대 및 신규 소재 확보를 통해 배터리 생산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향후 북미 시장 내 사용량 회복과 점유율 유지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36.3%(96.5GWh) 성장하며 글로벌 1위 자리를 견고히 유지했다. 중국 현지 OEM 뿐 아니라 글로벌 주요 OEM들 다수가 CATL의 배터리를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BYD는 중국 외 시장에서도 145.9%(25.8GWh) 성장률을 기록하며 5위를 기록했다. 배터리와 함께 전기차(BEV+PHEV)를 자체 생산하는 BYD는 우수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차급에서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2025년 판매 목표를 460만대로 16% 하향했지만 수출 확대는 유지하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의 확장세가 두드러지며 올해 1~9월 유럽 내 BYD 배터리 사용량은 10.3GWh로 전년 동기 대비 246.2% 증가했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비(非)중국 시장은 정책 규제와 기술, 공급 전략의 변화가 동시에 심화되며 OEM과 배터리사의 조달, 제품 전략이 재편되고 있다”며, “북미에서는 IRA 강화와 FEOC 적용 확대 논의로 현지 조달 전환이 가속되고, 유럽은 PHEV 유예 기대가 부각되는 등 BEV 편중을 완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아울러 “K-배터리 3사는 유럽, 미국시장 의존도가 높다”며, “유럽은 중국의 공격적인 현지 진출과 저가 공세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고, 미국은 OBBBA 이후 IRA 조기 일몰로 3분기 선구매가 발생했지만 10월 이후 하락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배터리사는 프리미엄용 NCM 고에너지 제품 경쟁을 지속하면서 보급형 대응을 위한 LFP, LMFP 양산 전환을 서두르며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