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입점해 있는 신세계면세점 모습./사진=서영길 기자
인천공항에 입점해 있는 신세계면세점 모습./사진=서영길 기자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고환율과 소비 둔화, 온라인·시내면세 중심으로 바뀐 구매 패턴, 출국객 수에 연동한 임대료 부담이 겹치면서 면세점들의 ‘건물주’ 인천국제공항의 위상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한때 면세업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인천공항이 신라면세점에 이어 신세계디에프(신세계면세점)까지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하며 공항 면세사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3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면세점의 모회사 신세계는 지난 30일 이사회를 열고 인천공항 제1·2터미널 DF2 권역(화장품·향수·주류·담배)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의결했다.

해당 구역은 총 4709㎡ 규모로, 당초 계약상 2033년까지 운영 예정이었으나 조기 반납 절차에 돌입했다.

신세계 측은 “운영을 지속할 경우 손실이 더 확대될 것으로 판단해 철수 결정을 내렸다”며 수익성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신세계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월 60억~1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지난 9월 인천공항 DF1 권역 사업권 반납을 결정한 바 있다.

결국 신라와 신세계면세점 양사는 2023년 인천공항과의 계약 이후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임대료 인하를 공항 측에 지속 요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법원에 조정신청을 냈고 인천지법은 지난 9월 객당 임대료를 신라는 25%, 신세계는 27% 인하하라는 권고(강제조정)를 인천공항 측에 내렸다. 하지만 공항 측이 즉시 이의를 제기하면서 해당 조정은 무력화됐다.

신라‧신세계 양사는 결국 ‘매장 철수’ 카드를 꺼내는 초강수로 인천공항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같은 결별 선언은 양사가 인천공항 측에 위약금을 완납하며 현실화됐다. 최근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1900억원과 1910억원의 위약금을 공항 측에 납부했다.

다만 양사는 관련 규정에 따라 6개월간 영업은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신라면세점은 내년 3월17일, 신세계면세점은 4월27일까지 영업을 이어간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 구역./사진=연합뉴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 구역./사진=연합뉴스

◆ 韓 최대 관문 인천공항 ‘황금알’이 '계륵' 취급을 받게 된 까닭은

한국의 글로벌 최대 관문인 인천공항에서 대기업 면세점 사업자가 중도에 사업권을 포기한 것은 2018년 롯데면세점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세 번째 사례다.

과거 인천공항은 고객 유입과 매출 안정성이 높아 면세업계에선 ‘사업권만 따내면 매출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황금 입지’로 통했다.

여기에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 제고, 이를 통한 명품 브랜드 유치 등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임대료 산정 방식이 ‘출국객 수 연동형’으로 바뀌면서 수익 모델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완전 종식된 2023년을 기점으로 인천공항의 임대료 책정은 출국객 수대로 임대료가 부과되는 방식인 출국객 수 연동형으로 바뀐바 있다. 하지만 출국객 수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면세 매출은 회복되지 않으며 임대료 부담이 오히려 커지는 역설이 발생했다.

낙찰 당시 업체들이 제시한 ‘객당 임대료’는 매출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일부 사업자는 ‘승자의 저주’에 빠진 상황이 됐다.

소비 측면에서 변화가 뚜렷해진 영향도 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는 회복됐지만 소비자들의 쇼핑 패턴은 공항 중심에서 온라인 채널과 시내 면세점, 브랜드 직영 채널로 재편됐다.

특히 중국·아시아 주요 국가의 개별 소비 회복이 기대에 못 미쳤고, 고환율과 국내외 경기 둔화가 소비 심리를 억제했다는 점이 면세점 매출 회복을 더디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같은 내‧외부 요인들이 겹치며 인천공항 면세점의 ‘프리미엄’이 급격히 약화됐다.

 

인천공항에 입점해 있는 신세계면세점 앞을 한 여행객이 지나치고 있다./사진=서영길 기자
인천공항에 입점해 있는 신세계면세점 앞을 한 여행객이 지나치고 있다./사진=서영길 기자

◆ 재입찰은 ‘낮은 임대료’가 관건…“누가 들어와도 위험 부담 안아야”

인천공항 측은 신라‧신세계가 반납한 구역에 대한 재입찰(재공고)을 연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올해 연말 두 면세점이 철수한 권역에 입찰공고를 내고 내년 3월 초까지는 사업자 선정을 완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면세업계의 움직임은 '신중 모드'로 바뀐듯 하다. 바로 직전인 4기 입찰 당시의 과열 경쟁과 같은 양상은 재현되기 어렵고, 향후 응찰자들은 과거보다 보수적인 입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인천공항의 상징성과 거대한 유동 인구라는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다만 출구전략(온·오프라인 포트폴리오 조정)과 임대료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전처럼 고가(高價)로 입찰에 응해 장기간 사업권을 따내는 전략은 면세 사업자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롯데·현대백화점면세점·CDFG 등 잠재적 후보들은 입찰 참여 자체는 검토하되 입찰가는 보수적으로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인천공항 면세사업의 위상 하락이 단기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공항 측의 임대료 원칙과 면세사업자의 수익성 요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공항 면세 사업은 신라‧신세계 같은 파국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재입찰 후 채워질 사업자는 과거의 ‘황금알’을 기대하기보다 단기 손실을 감내하면서 전략적 이익, 즉 브랜드 노출, 네트워크 효과 등을 노리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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